- 정재엽
- 조회 수 118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일상에 스민 문학] 광안리에서 다가온 감사의 인사
지난 주 아이들과 함께 성당에 갔더니 한 교우께서 저에게 다가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님. 핸드폰 번호를 좀 주세요. 제가 입력을 좀 해놔야겠어요.”
하시더니 “제 번호를 찍어드릴테니 한번 전화 걸어보세요. 입력하게요.”
다짜고짜 다가오셔서 하시는 말씀에 저는 어안이 벙벙. 그리고 재빠르게 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눌러 제 전화번호를 입력하셨습니다.
“레오나르도 형제님 맞으시죠?”
그 주에 저는 이메일과 몇몇의 불쾌한 통화로 심신이 위축되어있던 터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으로 향하는 길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막상 저에게 다가오시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 ‘띠르르~’하는 카톡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문자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얼마 전에 다녀가셨던 이해인 수녀님께서 저희 본당에 편지를 보내셨대요. 제가 문자로 복사해서 보내드립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하더니, 바로 전달받은 편지가 이어졌습니다.
경애하올 서초동성당의 신부님들과 교우 여러분께.
해인수녀가 부산에서 감사인사를 올리고 싶어 몇 자 적습니다. 늦은 저녁시간에 강의, 사인회마치고 분원에오니 자정이 지났지만 그리 피곤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분께서 이 작은 수녀에게 보여주신 진심어린 응원의 마음과 따듯한 사랑의 눈길 덕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전을 가득 채운 여러분의 모습을 본 순간 항암, 방사선치료 등으로 어느새 씩씩한 명랑투병의 강심장이 된 수녀가 아니었음 너무 놀라 기절했을지도 몰라요. 제한된 시간 속에 제가 준비해 간 내용들을 다는 펼쳐내진 못했으나, 여러분의 음성으로 시를 듣는 것 또한 강의 못지않은 이심전심의 공감으로 내적인 작은 기쁨을 충전시켜 주었을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그날 서초동 본당 아닌 곳의 독자 분들이 문자를 보내 신자들의 태도가 너무도 조용하고 품격있어 맘에 든다고 했어요. 정성스런 경청의 태도는 물론 길게 줄을 서서 사인 받으며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도 감동이었어요.
도서 보급 나온 ‘샘터사’에서도 여러분의 적극적 책사랑에 엄청 기뻐했답니다
저도 다시 고맙습니다. 부드러운 생일 케익도 로즈마리수녀가 사는 서울분원의 수녀들과 나누고 고운 꽃은 성당에 두었어요. 그날 제가 한 번 인용하기도 했던 '하느님을 찾았으나 뵈올 길 없고 영혼을 찾았으나 만날 길 없어 형제를 찾았더니 셋 다 만났네'하는 고백을 오늘도 새롭게 하면서 평범한 일상의 날들을 비범한 사랑의 지향으로 봉헌하고 물들이는 고운 말 학교의 실습생이 되도록 우리함께 노력해요.
부산오실 기회 있음 미리 연락하고 살짝 만물상인 선물의 방처럼 꾸민 '해인글방'을 방문하셔도 좋아요. 제가 여러분을 기억하듯이 여러분도 기도 안에 종종 저를 기억해주시는 한 송이 장미가 되시길 비오며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마음엔 평화. 얼굴엔 미소!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날들이되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이번에 서울 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이 <평창동의 봄> 이라는 곳에서 금경 축하 밥을 사주어먹었는데 그 집 화장실안에 붙여놓은 글귀가 맘에 들어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2018.6.17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이해인 수녀 올림
이 편지는 지난번 마음편지에서 소개해드렸던 저희 성당에서 있었던 특별강연을 하시고 특별히 저희에게 보내주신 편지였습니다. 갑자기 제 이름을 호명하셔서 당황했던 기억, 그리고 수녀님의 시 <슬픈 사람들에겐>을 낭독했던 기억이 다시 그려졌습니다. 이 편지는 제가 앉아있던 성당 의자 주위를 향긋한 치자꽃 향기로 일렁이게 했습니다. 언어가 주는 힘은 소리 없이 강렬하다는 것을 핸드폰을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화와 이메일로 인해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나간 기관과 만난 분들에게 과연 몇 번이나 감사의 편지를 남겼나 싶었습니다. 제가 그간 스쳐지나간 강연장, 만났던 소중한 만남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 지금 핸드폰을 드시고 주위의 분들에게 감사의 문자 한통, 남기시는 것, 어떠신지요?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