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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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장국장님께.
안녕하세요. 사모님.
저는 H 주식회사에서 근무했던 정재엽 실장이라고 합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따님을 통해서 장국장님의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매번 연락을 드려야지, 드려야지 하면서도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의 게으름이 끝내 장국장님의 가시는 길까지 뵙지 못했다는 자책을 합니다.
지난주에 저희 회사가 바로 국장님 댁 건너편 국민은행 건물로 이사왔습니다. 어제 점심 식사 후에 산책을 나왔다가 이 근처가 바로, 몇 년 전에 국장님께서 맛있는 식사와 함께 커피를 사주셨던 장소라는 것을 깨닫고 연락을 드려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전화 올릴 때 마다, '잘 지내냐?'며 반겨주셔서 오늘 전화를 드릴때도 그 음성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따님께서 전한 비보에 주책맞게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전화가 끊어진 뒤에 바로 전화를 드리지 못했던 것은 눈물을 거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장국장님께서는 저희 H 주식회사가 타이타닉 호처럼 침몰하는 가운데, 끝까지 도와주셨던 은인이십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다들 피하기만 바빴을 때, '그래, 많이 힘들지', 하면서 힘 내라며 저에게 근처 <강강술래> 음식점에서 커다란 고기가 듬뿍 담긴 갈비탕을 사주셨지요. 제 등을 토닥토닥 해 주시면서, '잘 견뎌낼 수 있어',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회사 명찰을 단 직장인들이 많은 광활한 길거리였습니다. 장국장님과 헤어지고 돌아서는 길에, 갈비탕의 감사함에 그 음식점 옆에서 엉엉 울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커피 한잔을 들고 회사로 들어가던 직장인들이 담배를 뻐끔 피우던 벌건 대낮이었습니다.
회사는 장국장님 덕택에 잘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힘에 부치거나 외로울 때, 국장님께서 사주셨던 맛난 갈비탕을 기억했습니다. 3년간의 처절한 싸움 끝에 무사히 회사는 정리를 할 수 있었고, 그런 저의 기록을 동봉한 이 책 <파산수업>에 담았습니다. 장국장님 손을 꼭 잡고 직접 전달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뒤늦게 전달하게 되어 몹시 송구스럽습니다.
미국에 출장을 다녀오시면, 늘 아느님, 따님과 손자, 손녀들의 재롱 자랑에 끝이 없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허망함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장국장님의 가시는 길을 비록 모셔다드리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국장님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 바칩니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 주시면 달려오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010-****-$$$$입니다.
2018년 6월 27일
정재엽 드림.
귀천 (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정재엽 올림 (j.ch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