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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9일 10시 41분 등록
함께 공부하는 대학생들 중에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제2회 대학생 독서토론대회에 참가하였다. 1차 테스트는 독서력 검사였다. 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그들은 다시 2차 테스트를 준비해야 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읽고 논설문을 제출해야 했고, 이것으로 32강 진출팀을 선발한다. 32강부터는 토너먼트 식으로 토론대회를 펼치는 것이다. 그들은 책 을 읽고 논설문을 작성했고, 작성된 논설문으로 함께 토론을 하였다. 많은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내 의견을 수줍게 제안하였다. 그들은 고민을 하고 수정을 거듭하여 논설문을 완성했다. 다행히도 2차 테스트에도 합격하였다.

그들은 이제 4권의 책을 읽어 토론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이청준, 하이에크의 책과 함께 장하준 교수의 『국가의 역할』, 존 롤즈의 『정의론』을 읽어야 한다. 『정의론』은 세기의 저작이긴 하지만 그 내용의 깊이와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서 대학생들을 압도할 만하다. 토론대회 32강 본선은 11월 초에 실시된다.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 그들은 3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노예의 길』, 『국가의 역할』, 『정의론』을 한 달 만에 읽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10월엔 중간고사가 있다. 우리에겐 전략이 필요했다. 아니, 그것보다 10월 한 달 동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야 했고, 또한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내가 물었다. “이번 토론대회에 중간고사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있니?”
한 사람은 토론대회와 중간고사 둘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한 사람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말한 학생은 기말고사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고, 중간고사는 당일치기를 해 왔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두 가지 모두를 잘 할 수는 있지만, 한 달이라는 제한된 기간에 선택하여 집중하는 것에 비할 때 좋은 전략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누었고, 우리는 토론대회에 2차 테스트를 준비했던 태도보다는 훨씬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결과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순위에 대하여 마음을 같이한 우리는 전략과 그 전략의 달성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웠다.

“이번 대회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뭐니?” 다시 내가 물었다.
한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얻고 싶다고 했다. 그 느낌을 통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 한 사람은 동상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라 했다. 두 사람의 기대성과가 잘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기준을 둔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외부의 성과에 기준을 둔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노력하면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견을 나눴다. 여러 의견이 오고 가는 사이에, 토론대회를 위한 순수 준비시간을 매일 4시간 이상 가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책 읽다가 가지는 티 타임 등은 제외하자는 의미로 ‘순수’라는 형용사로 한정하였다. 순수한 업무 시간을 하루에 4~5시간씩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은 결국 이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프로페셔널로 성장하지 못한다. 하루 4시간, 한 달 120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은 이렇게 ‘미래를 회고’하였다. 말하자면 그의 10대 풍광 중 하나였다.
“와우 모임이 시작되고 몇 달 후 팀원 중 한 명과 함께 독서토론대회를 참가하게 되었다. 이 대회는 나에게 있어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기억된다. 24살이었던 당시의 나는 그 대회준비를 통해 많은 지적 성장을 하였고, 게으름도 떨쳐 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여 남들로 부터 인정받은 첫 경험이기도 했다. 나는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번번히 실패했던 새벽시간 활용도 어느새 익숙해 졌고, 조용한 그 시간을 십분 활용하여 토론회에 필요한 독서와 생각정리도 여유있게 해 나갈 수 있었다. 그 당시의 경험을 통해 많은 지적 성장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게으름을 이겨낼 수 있는 근성을 키웠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계속해서 꿈꾸고 성장하고 있게 되었다.

매일같이 5시에 일어나 독서를 하고 생각의 조각들을 정리했다. 낮에는 전공수업 밤에는 와우 과제, 새벽에는 토론회 준비에 온 노력을 쏟았다. 나와 같이 준비했던 팀원도 이런 변화에 동참하여 서로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제법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자리를 잡았고,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생각들이 정립되어 있어서 토론회가 진행되는 내내 열띤 논쟁의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었다. 결국 그 날 우리 팀은 작년도 우승자인 서울대 남녀 혼성팀을 당당히 제치고 영예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중략) 가슴은 왜이리 벅차고 뿌듯한지... 눈물이 울컥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그들에게 감사한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뛴다.“

선생님의 ‘미래 회고’ 개념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금새 이렇게 스스로에게 적용하였다. 대상을 위하여 나 역시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제 남은 것은 다른 한 명의 기대성과였다. 그는 수상하는 것이었고, 동상 그 이상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열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성과는 지식, 열정, 노력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성과는 오직 성과를 달성하는 능력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저 과정의 몰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성과에 연계되는 과정의 몰입이 필요하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역할이 바뀐 후에 실패한다. 역할이 바뀌면 과업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이전에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과업은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이 아닐 수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역량 뿐만 아니라, 역할 인식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토론대회에서 요구하는 자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독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논제를 설정하는 방법, 토론의 목적과 방법 등이 제시된 대회 설명문의 내용들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명문이 이해가 잘 안 되면 이것부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과정에서의 모든 노력이 수상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한다. 하지만, 수상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좋은 성과를 원한다면 과정을 즐겨야 한다. 그 과정은 성과와 연결된 과정이어야 하다.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

대회 설명문 이해하는 작업은 나도 돕기로 했다. 공부의 방향이 될 수 있는 중대한 일이다. 논제를 결정하는 것 등은 훌륭한 토론을 위한 핵심 과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들이 설명문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10월 11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중간 점검은 서로에게 도전을 주고 방향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피드백 과정이 된다. 지금 적고 있는 이 글은 2차 테스트 합격 소식을 듣고 학생들을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던 내용들이다. 그 생각들이 선생님의 『월드클래스를 향하여』를 읽으며 잘 정리가 되었다. 또한, 선생님이 주신 필독서를 읽으며 배웠던 내용들이다. 새삼, 연구원 활동을 통해 자라나고 있는 자신이 느껴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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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0.09 11:16:32 *.75.15.205
그래. 완전히 네것이 되는 것 보기에도 좋구나.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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