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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7일 06시 56분 등록
(이 글을 연구원 송창용님을 위한 단편소설입니다. 그가 조만간 세우고자 하는 프로젝트경영연구소의 어느 오후를 묘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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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5시
모레 있을 연구발표 리허실에서 막 프리젠테이션을 마쳤다. 2개월 동안 추진해온 국제강철 회사의 생산공정 시스템전환을 위한 연구에 대한 것이었다. 팀원 간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과부하 시스템 조사를 맡았던 김OO 군이 먼저 말을 꺼낸다.
“저희가 한 2개월간의 연구가 3시간의 발표로 마쳐진 것에 대한 아쉬움은 많지만, 발표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네요. 조금 짧게 전달할 방법을 한번 찾아봤으면 하는 데요.”
“저도 솔직히 3시간은 길다고 봅니다. 우리 팀원들이야 매일 이것만 생각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알고, 뭐가 핵심인지 알지만, 우리에게 이 건을 의뢰한 쪽에서는 장시간 보고를 듣다가 우리 연구의 핵심을 놓칠 우려가 있습니다. 좀 줄였으면 합니다. 어느 부분을 줄이고, 어느 부분을 강조할지 얘기를 해봤으면 하는 데요.”
“준비에서 완제품이 나오기 까지 시간을 단축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이 국제강철의 요구인 만큼 기존 시스템 분석에 대한 부분은 빼고, 개선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요? 그럼 짧아질 것 같은데요.”
대학원 6년차 학생이면서, 연구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한 경험이 많은 박OO군의 의견을 낸다.
“우리는 기존의 시스템을 A지점이라고 하고 우리가 제시한 새로운 시스템을 G지점이라고 합시다. 우리는 A지점에서 G지점으로 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A지점에 대한 명확한 규정 없이는 왜 목표점이 G지점인지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중간에 거치게 될 C지점이나 D지점도 좋아 보이거든요. A지점을 벗어나는 것만이 우리 연구의 목적이 아닙니다. 최적의 시스템인 G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시스템 설명이 길어졌던 겁니다.”
“그럼 A지점과 G지점에 대한 부분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빼도록 하지.”
“하나의 맵으로 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제시한 것은 통합 시스템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국제강철의 현재공정을 조사할 때도 제품이 거치는 공정을 순차도로 표현해 한눈에 쉽게 이해했듯이, 우리의 프로젝트도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개념을 표현한 전체 지도, 그리고,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지점인 A지점과 G지점 그리고 몇몇 지점은 세부지도로 나타나는 거죠.”

나는 연구원들의 의견을 조용히 듣고 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누군가 말한다. 연구원 중 몇 명은 우리 연구소의 컨셉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활용하고 있다. 복잡함 속에서 핵심이 되는 기술을 주기능으로 하는 시스템을 구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느새 우리 팀원들은 우리가 하는 연구, 디자인하는 그것과 닮아가고 있다.

우리는 수차례의 연구를 통해,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하고, 서로 팀원으로서 의견을 교환하는 법을 터득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핵심을 찔러가며 말하고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듣는다. 나는 연구원들의 의견 조율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오페라의 두 주인공이 노래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뭔가 허전한 게 있어요.”
“허전하다니 그게 뭔가요?”
“시스템 분석을 통해서 얻은 결론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개념이 명확이 들어오지 않는군요. 제어상황을 만들어 내는 요소들을 고려한 것들이 G시스템에 다 들어갔지만, 특징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 연구 결과는 그런 게 아닌데 말이예요.”
“그런 것 같네. 여기엔 뭔가가 필요하군.”

여지껏 침묵하고 있던 내가 침묵을 깨고 나설 차례다.
연구를 거의 완료해 놓고는 생기는 이 허전함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연구 만큼이나 프로젝트의 주요 부분이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늘 가지고 다니던 종이를 한 장 꺼내어서 팀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나야.”

OO학교의 K교수와 프로젝트를 같이 추진할 때의 일이다. 그 때, 팀원으로써 뭔가 선물을 주고 싶다며 자기가 얼마 전부터 그림을 배우고 있다고 그 친구가 나를 그려주겠다고 하며 그려준 것이다. 그러더니 단숨에 그렸다.

나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나가 종이의 그림을 화이트보드에 옮기며 설명을 했다.
“이걸 그려준 사람이 중얼중얼 이렇게 말하면서 그렸다네. ‘자넨 얼굴이 둥그스름하게 생겼군.’ 그리곤 동그라미를 그렸지.”
나는 칠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몸통, 얼굴에 살이 많은 듯 하면서도 적고 적당하네. 팔과 다리는 이렇게, 이렇게. 눈, 코, 입을 그려 넣어야지. 음 눈은 조금 작고 순하고. 뚜렷한 코, 크게 웃고 있는 입.’”
“교수님 그게 뭐예요. 교수님과 뭐가 닮았다는 거예요?”
“맞아요. 교수님, 그건 그냥 졸라맨이잖아요?”
“그렇지.”
"이렇게 그리면 앞에 앉아 있는 박OO 선배라고 해도 되겠네."
“특징이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교수님, 지금 우리의 프로젝트가 그런가요? 아님 우리가 보고가 그런가요?”
말 수가 적어 있는 듯 없는 듯 있던 최OO 군의 질문이다.
“호오~”
“그래 자네는 뭐라고 생각하나?”
“둘은 결합되어 있겠죠.”
“뒷면에 다른 그림이 있네요. 이 그림이 딱 교수님이네요.”
“음. 어때? 생기있고 잘 생겼지?”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단순화 한 것은 그것을 현장에서 실행에 옮길 때 힘이 세지. 그리고, 모두들의 마음 속에 각인 시키는 데도 유용하지. 간단하니까 잘 기억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들잖아. 그러나 자칫 여기 그려진 그림처럼 매력이 없어질 수도 있을 거야. 그것을 다른 것들과 구분하는 특징이 있어야지. 나는 그 요소 또한 결국에는 실행에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는데.”

PM 10시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자료를 정리하다가 그만 저녁 먹을 시간을 놓친 것이다. 아마도 연구실엔 팀원들이 아직 퇴근을 하지 않고 남아 있으리라. 연구 마무리를 짓고 있을 연구원들을 불렀다. 그리곤 피자를 시켰다.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이윽고 피자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는 드디어 노크 소리가 났다. 수많은 피자 종류로부터 다른 것들과 구별하여 포테이토 피자라는 것을 구별하게 하는 이 냄새. 익은 감자의 구수한 냄새와 갖가지 양념 냄새가 순식간에 허기를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자는 나와 동료들에게서 모레 있을 발표 건을 머리 속에서 싹 지웠다. 우리는 서둘러 피자 조각을 집어 들고 베어 물었다.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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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10.17 06:38:38 *.48.38.252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다는 생각.
독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생하다는 의미겠지요. 뒷부분이 더 잘 읽혀요. 특히 10시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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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17 08:03:07 *.72.153.12
"열심히 공부한 당신, 먹어라!!!"
밤새고 나서의 허기짐이신가요?

오후 5시 연구원들간의 대화와 교수의 대화는 제가 여해님께 드리는 화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눈에 보이는 느낌은 없네요.
다른 피자와 구분되는, 그냥 포테이토 피자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건데.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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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10.20 12:40:54 *.212.167.184
다시 읽어보니 많이 힘들었던 모습이 보이네.

나의 모습을 잘 묘사해 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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