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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6일 10시 18분 등록

“엄마, PC방 가도 돼요?”


큰아이가 카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는 여태 PC방에 간 적이 없습니다. 마침 수업을 하고 있던 터라 통화는 못하고 “응.” 이라는 짧은 메시지만 얼른 보냈습니다. 엄마의 허락을 받은 아이는 난생 처음 PC방에 갔고 저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PC방에서 애들이 여럿이 모여 담배 핀다더라, 야동을 본다더라, 게임에 빠져서 아예 PC방으로 등교한다더라… 동네 엄마들로부터 PC방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터였습니다.


이런저런 걱정에 어두워진 제 얼굴색과는 달리, 저녁 먹을 무렵 마주한 아이의 표정은 무척 밝았습니다. 곧 PC방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PC방 어땠어?”
“좋던데요.”
“담배 냄새 안 났어?”
“글쎄, 난 잘 모르겠네.”
“야동 보는 사람 없었어?”
“친구들이랑 게임하느라 다른 사람 볼 새가 없었어요.”
“근데, 엄마, PC방 완전 내 스타일이야. PC 속도가 얼마나 빠른 지 게임할 맛이 나더라고요. 키보드랑 마우스가 그립감이 끝내주더라고요. 우리집 노트북하고는 비교가 안돼, 안돼…”


엄마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지도 모르고, 아이는 주절주절 PC방 예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엄마, 저 PC방 계속 가도 돼요?”
“……”
대답이 없자, 그제야 엄마 표정을 알아채고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중학생이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한창 만화에 꽂혀 지내던 저는 중학교 1, 2학년 내내 밤새 만화책을 읽곤 했습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만화에 대해 논했습니다. 그런 재미가 없었다면 지루한 학창 시절에 무슨 낙이 있었을까요? 입시 준비로 바빴던 고등학교 2, 3학년 때는 소소한 일탈 행위를 벌이는 재미에 꽂혀 지내기도 했습니다. 가끔 빈 물병에 소주를 담아갔습니다. 학교 화단 아래 물병을 두면 야간 자율학습 시간 무렵 물병 속 소주는 시원해져 있었습니다. 저녁 도시락을 먹을 때, 친한 친구들 몇 명이서 한 모금씩 나눠 마셨던 소주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지금 돌아보면, 아이들이 따라할까 봐 두려움이 앞서지만, 평생 잊지 못할 학창시절의 추억임은 분명합니다. 저를 닮아, 무언가 한 가지에 꽂히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큰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계속 PC 방 가도 돼요?” 라는 아이의 질문에 편지를 썼습니다.


수민아,
PC방 얘기했을 때 엄마가 인상 써서 불편했지? PC방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어서 그랬어. 인상 쓴 게 맘에 걸리네.
친구를 사귈 때, 그 친구가 좋은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 가리지 말고 누구든 사귀어 보라고 했잖아. 어떤 친구를 사귀든 그 친구에게서 좋은 점과 매력적인 점을 찾아보라고 말이야.
PC방, 노래방, 만화방… 등 장소도 마찬가지겠지. 나쁘게 활용하면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잘 활용하면 내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장소가 되겠지. 수민이가 잘 알고 있고 알아서 잘 할 텐데 엄마가 괜히 인상을 썼구나. 
PC방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 야동보는 사람들, 심지어 채팅으로 만나 원조교재하는 이들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알게 되니까 엄마 맘이 불편하긴 해. 하지만 수민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방과 후 낮 시간 한 시간 정도 게임을 즐기는 건 엄마 맘이 불편하진 않을 것 같아.
방과 후 낮 시간 한 시간 정도 PC방 이용 약속 지킬 수 있겠어? 그렇다면 엄마도 좋아.
인생의 새로운 재미를 알아가는 수민이를 응원할게. 수민이의 중학교 생활이 즐겁길 바라.

엄마가


앞으로 수도 없이 들을 “엄마, OO해도 돼요?”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디까지 아이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며, 어디까지 엄마가 관여할 것인가… 아이가 성장할수록 엄마의 관여를 줄이고 아이의 자율성을 늘여가야 할 거라는 큰 그림만 그릴 뿐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밤새 만화책을 읽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물병 소주를 돌려 마셔도 믿고 모른 척해 주셨던 부모님과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새삼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아이의 PC방 출입은 어떻게 됐을까요? “엄마, OO해도 돼요?” 라는 질문에 대하여, 두번째 이야기는 2주 후에 이어집니다.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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