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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6일 14시 21분 등록
‘머무름이 있는 곳’
멀리 간판이 보인다. 저 가게를 안고 우측으로 돌면 그녀의 작업실이 있는 2층 양옥집이 나타날 것이다.
아마 지금쯤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담장 밖으로 진한 향기를 내 뿜고 있을 것이다. 배꽃 나무 그늘아래 누워 있던 그 점박이 강아지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십자수 가게 간판이 점점 가까이 다가서자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발걸음은 더 느려진다. 아니, 약간 떨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나는 떨고 있다.

2년 전 내가 그녀의 작업실을 처음 찾았을 때도 4월 이맘때였다. 서초역 2번 출구를 나와 10분 정도를 걸었을 것이다. 그녀가 일러준 티아오길 914번지 2층집 문 앞에 서자 나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늘어선 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은 작고 아담한 양옥집의 절반은 하얀 배꽃에 싸여 있었다. 그 진한 향기는 집안 전체를 감싸고 남아 담을 훌쩍 넘어 대문 앞에 소롯이 모여 살아있는 모든 것을 취하게 만들고 있었다. 서너 평 남짓한 앞뜰 가장자리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배나무는 대문을 시작으로 ‘몽환으로의 세계’로 이끌었다. 집안 전체는 ‘잠자는 성’ 그 자체였다.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목련잎 사이로 점박이 강아지 한 마리가 고개를 꼬리털에 박고 잠들고 있었다. 뜰과 담장사이에 처진 빨랫줄의 옥양목 홑이불도 침묵의 늪에 빠졌었다. 오직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진한 배꽃 향뿐이었다.

그날, 그녀와 나는 탁주 사발을 사이에 두고 몽환의 밤을 새웠다. 그것은 초탈과 같은 것이었다.

1층 앞뜰을 지나 2층 현관 앞에 섰을 때, 지난 번 그 현기증과 같은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배꽃나무의 승천에 있었다. 내 의식의 세계에서 끝없이 유영하던 그 배꽃은 이미 이승을 떠난 후였다. 동시에 그 아담한 양옥집 2층은 또다시 긴 침묵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떠남에 대한 공허에서 비롯된 것이다.

잠시 잠이 들었었나 보다.
심한 갈증으로 눈을 떴을 때, 추위와 함께 아득한 그리움을 동반한 슬픔이 밀려왔다. 문득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젯밤 그녀도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내가 그녀의 전화를 받은 시각은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공감’ 멤버들과 저녁 연주를 마치고 귀가한 것이 11시 30분이었다. 그로부터 20분정도 후, 우리 연주회 단원으로 클라리넷 파트를 맡고 있는 남편과 1시간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 전화벨이 울렸으니 오늘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언니 너무 늦은 시각이지?”
“아니, 너무 이른 시각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항상 내 마음 한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거부하는 몸짓, 배꽃향기, 야성적 감각을 지닌 그녀 특유의 스케치.
그러나 정작 그녀가 내 가슴 한 곳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은 그 날, 그 몽환적 밤을 함께했음일 것이다.
그녀는 로마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전화를 했다. 3주 정도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단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 보다는 2-3도 정도 높은 목소리였다.
“언니, 알고 있지 내 작업실, 부탁해 꼭”
그것은 부탁이 아니라 통보였다. 아니, 명령 같았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3주 후에 돌아올 계획으로 떠난 여행자의 냉장고라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씻은 과일하며 오이, 상추, 심지어 두부까지다. 그녀는 집을 떠나기 전에 저녁 찬거리 까지 준비를 해두고 떠났던 것이다. 왜일까?

‘언니, 탁주한잔 마셔‘
80ml정도 되는 1200원 짜리 쌀 막걸리 병에 붙여놓은 메모지를 발견하는 순간 난 그녀의 모든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 그녀도 그리워했구나. 내가 그녀를, 아니 2년 전의 그 밤을 잊지 못했던 것처럼 그녀도 그리웠구나.
나는 그녀가 탁주안주거리로 마련해 놓은 오이와 두부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 날, 그녀와 내가 마주보고 앉았던 앉은뱅이 탁자 앞에 술잔을 놓았다. 넘치도록 부었다.
내가 술잔을 든 것은 그로부터 3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그녀의 편지는 단 몇 줄이었다.

언니.
다음달 11월에 상영될 영화야. 언니가 제일 먼저 보아 주었으면 해서. 대단하지는 않고, 그 있잖아 독립영화라는 것. 나와 영호 씨, 그리고 우리 연구원3기 옹박이와 공동작이야.
다 본 후 간단한 영화평도 부탁해. 탁주는 다 마시지 않기다.

-------- 니체를 사랑하는 사람들 -----------
출연 : 한 정 화, 박 옹 박. 양 영 호

영화의 시작은 강진의 청산도에서 시작되었다. 원시적 내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바닷가를 세 사람이 거닌다. 주인공 명진(한정화 분)은 예술의 전당 미술부분 전문 강사다. 카메라를메고 명진의 뒤를 줄곶 따라다니는 명호는 ( 양영호 분) 명진의 벗이요, 약혼자 그리고 여행 칼럼니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즐박은( 박옹박 ) 두 연인의 친구이며 시인이자 여행 작가다.
세 사람은 여름휴가를 명진의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에서 보내기로 한다. 옴천면은 오지 중의 오지다. 가까이는 월출산이 있고 다산초당이 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화는 그들의 여행 중의 일상을 그대로 담았다. 세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었지만 카메라 앵글은 명진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한 낮에는 밀짚모자에 반바지 차림으로 걷고 뛰고 때로는 논두렁위에 벌렁 눕기도 한다. 밥 때가 되면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가끔은 구성진 남도가락을 뽑아 올리기도 한다. 걷는 것이 이동의 주된 방법이지만 덜커덩거리는 시골버스를 타기도 하고 지나가는 경우기를 얻어 타기도 한다.
밤이면 세 사람은 새로운 그들의 세계를 연다. 명화가 그날의 여행을 스케치로 담아내면 명진과 즐박은 그림아래에 글로 표현해 낸다. 글은 시로 표현되기도 하고 명상의 언어로 나타내기도 한다. 메타세카이어가 도로 양옆에 끝없이 서 있는 관방제림을 지나는 부분에서는 글이 없다. 명화가 그린 그림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15박 16일에 걸쳐 강진군 곳곳을 떠돌았고 순수함으로 and친 세 예술가들의 아름다운동행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것은 영화라기보다는 하나의 연작시였다. 인생의 노래였다. 영화는 80분 동안 이어졌고
나는 2시간 30분 동안을 그 영화 속에서 부유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세 사람이 책을 출판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출판사 편집장은 그들의 책 뒤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였다.

여기.
삶을 지극히 사랑하는 3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끔 힘든 일상이 찾아들지라도 그들은 두 팔 벌려 그것들을 끌어안아줍니다. 세 사람은 삶을 농도 짙게 즐깁니다. 쓰고, 짓고 그리고 할 것은 모두 다합니다.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강남 코엑스 몰을 비롯한 몇몇 상영관에서 ‘니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여와가 상영되었다. 그것은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고 삶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게 했다. 책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을 때는 87만부가 팔려 나갔다.

사족인지는 모르지만 내 솔직한 표현을 적자면
책의 내용을 보자면 58만부 가치다.
나머지는 서문 값이다.

서문
정화, 옹박, 그리고 명호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 연구원의 이야기다.
꿈 벗의 이야기고 살아있는 것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위한 노래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나에게 하나의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정화가 세 아이를 낳았다. 한 달 간격과 2주 간격의 출산이다.
첫째 아이는 책이다. 둘째는 영화, 셋 째는 다음 달 11월 21로 잡혀있는 명호와의 결혼식이다. 3쌍둥이를 낳았을 때는 어찌하겠다는 조항이 없다.
단지 내 연구소 조례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3조 3항에 있다.

3조
3항 : 내 연구소의 정회원 자격은 연구원과정을 거치고 한 권의 책을 내거나 결혼을 했을 때 인정된다.

* 니체는 삶을 환한 미소로 껴안았다. 사랑하고 찬미했다.












IP *.114.5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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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16 14:59:23 *.132.7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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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10.16 17:06:10 *.114.56.245
정화의 비상을 바란다. 날개를 달기를 바란다. 그리고 온전한,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련다.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10.17 07:55:59 *.72.153.12
이 글은 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변화된 저의 모습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충분히 저에게 좋은 선물이 된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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