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써니
  • 조회 수 277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7년 10월 21일 19시 16분 등록
노모는 오늘도 일상의 고단함에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자그마한 암자를 찾아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태평양을 건너 삶의 보따리를 풀은 자식에게서 이것 좀 해결해 주십사하는 부탁과 숨 가쁜 요청이 있건마는, 요즈음 시절이 하수상하여 그러한지 일은 풀리지 아니하고 날짜는 속절없이 넘어가매 늙은 어미의 애를 달구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휜 허리를 이끌고 멀리 이사 간 땡초영감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기다림에 지치고 초조함이 마음을 재촉하여 연일 가슴 한 구석을 을씨년스럽게 헤집어 옴을 달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오가는 길목 한 귀퉁이에서나마 시름을 잊어가며, 행여나 잠시잠깐이라도 “잘 될 터이니 안심하라”는 위안이라도 들어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음이리라.

오전중의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끝내고 막 일어서려는 순간, 휴대폰의 벨이 울린다. “뭐하십니까? 요즘 어찌 지내시누?” 아는 목소리가 아닌가. 철학관을 차려놓고 소위 인생살이에 답답해하는 사람들에게 점도 보아주고 상담을 해주는 양반이 있었는데, 언제 보니 그간에 머리를 깎고 땡중이 되었다고 하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알게 된 지만해도 그럭저럭 10여년이 넘었으니 그로 보아서는 절간을 짓고 법당을 차려놓은 것이 필생의 숙원사업으로 발전을 이룩할 만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너무 멀리 이사를 간데다 몇 번씩이나 차를 갈아타고 가야해서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걱정만 하시더니, 오늘은 어찌 기운을 억지로라도 내시고는 두 팔을 걷어붙여 땡초영감이 있는 곳엘 찾아가신 모양이다. 나도 오랜만이라 반갑기는 마찬가지이다.

아, 네. 스님! 안녕하세요? 나는 마치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어찌 전화를 다 주셨느냐는 듯이 안부를 건넸다. 어쩐 일이세요? 혹시 저희 어머니 그곳에 가셨어요? “그래, 그렇다네. 그나저나 자네는 요즘 무얼 하나?” 앉아서 천리 밖을 꿰뚫고 계실 법 한데 도리어 내 안부를 물어 오시니 낯설다고 해야 하나, 난감하다고 해야 하나 순간 묘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순간 말을 할까 말까를 망설이는 듯이 대구를 건넨다.

자신 없는 듯 기어드는 목소리로 ‘그냥 뭐, 놀아요.’ 한다. ‘저는 왜요? 어머니가 무엇을 물어보셨어요?’ “그래, 어머니께서 그대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더러 물어봐달라고 하시는구먼.” ‘아, 네... 저 말예요... . 스님, 제가 하는 일이 잘 될까요?’ “무얼 하는데? 되기는 뭐가 돼. 요즘 앉아서 돈만 까먹고 있으면서... ” 어라? 이쯤 되면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아니 물어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번쩍 드는 것이렷다. (글쎄 그렇다니까요. 이게 길어지면 안 되걸랑요. 저가 내심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요? 그러니 제발! 스님, 저가 앞으로 어찌 될지를 그 도통한 혜안과 신통한 통찰력으로다가 얼른 보아주시지요. 설마 별 일이야 있을 라고요. 그죠? 딴엔 해본다고 하는 것인데, 부족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행여나 잘 되겠지요? 하고 묻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한 것이겠다.) 그렇지 않으면 수화기를 내려놓은 즉시 궁금증에 공연히 미련을 떨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실은 제가 책을 하나 써보려고 하는 데... .’ “책? 자네가 계미일주지?” ‘네... .’ “그런 건 왜 하려고 그러나. 이 사람아, 편하게 좀 살지 않고... . 글쎄, 뭐... . 하여튼 알았네. 시간나면 한 번 놀러 오시게. 어머니 바꿔드림세.” ‘네? 네에... .’

“그래, 전화 바꿨다.” ‘거긴 언제 가셨어요?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어도 어떻게 하니. 날짜는 다가오고 신경이 쓰여서... .” ‘알았어요. 천천히 조심해서 오셔요.’ 하고는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괜시리 나까지도 이래저래 더한층 심난해 지기는 마찬가지다. 화급을 다투는 집안일이야 재껴두고, 우선 나를 걱정하는 꼴이라니. 사람이 어찌 이리 가벼울 수가 있단 말인가. 쌀쌀해져가는 가을바람이 내 마음의 황량함을 더하는 것 같아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며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심사를 추슬러본다.

이렇게 발에 채이듯 굴러가는 마른가랑잎으로 나부끼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건만, 호시탐탐 어찌 이리도 간사하게 마음의 끝자락이 쉼 없이 일렁이는가. 마치 스산한 창밖의 풍경 때문 이기라도 하듯이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다 ‘흠’하는 들숨소리와 함께 커피포트에 물을 담아 플러그를 꽂는다. 따스한 찻잔에라도 마음을 비비적거리며 온기를 나누고 나면 기분전환이 될까 해서일 것이다.

따끈한 찻잔에 무심히 기대어 잔잔한 음악을 듣는 사이 이런 생각 하나가 커피향과 함께 스멀스멀 피어나 마음자락 한 구석을 파고들며 속삭인다. 놀이에도 사랑이 필요한 것이지. 내가 선택한 놀이를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 마음껏 쓰다듬고 지우고 버렸다가, 주어 담고 깎아내고 고르면서 신뢰하고 아껴가는 것이겠지.

노모와 땡중이 마주하여 번민煩悶을 털어놓으며 나누는 일상의 한 긴박한 사건놀이가 삶의 놀이들의 다난함을 대변한다. 땡중의 의연한 처방겸 진지한 상담 또한 한 벗의 일이 잘 해결되길 바라는 지혜와, 도움의 염원念願을 담은 즐거운 놀이(일)가 아니던가. 나의 글쓰기놀이도 이런 저런 이유로 갈등하며 애태우기보다 순리를 따르며 마음껏 즐겨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책읽기놀이와 함께 희비애락과 삶의 정수와도 같은 참 나와 어우러지며, 일상적 취향의 한사람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노라면 그 아니 족할 일인가.

IP *.70.72.121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10.25 17:31:54 *.232.147.103
누나 나이가 되어도 부모님께서 걱정하시기는 마찬가지구나. 잘 해야겠다. ㅎㅎㅎ 그나저나, 연구원들 모두 알게모르게 핍박(?)받고 사는구료. 힘 내시오 누이. 누이는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나가고 있으니. 언젠가 술 한잔 할 때가 오면 그 때 내가 느낀 누이의 변화를 모두 털어놓으리다.
프로필 이미지
누이
2007.10.26 00:31:20 *.70.72.121
야가 야가, 그라믄 빨랑 봐야하는 거 아닌가비여? ㅋㅋ

근데 여태 놀았어. 낼부터 허벌나게 과제혀야 하닝게 다음 주에 만나덩가 시간 잡아봐야제... 있잖여, 유감일랑 잽싸게 풀고 좋은 일은 얼렁 만나 서로 웃고 떠들면성 격려하고 뭣이냐 심난한 일일랑은 속 시원이 뱉어 뻔지는 겨. 그랴... 누이가 전화할 때 까정 잘 지내시구랴.

우리 키다리 자매 호정이는 사부님께 오마님 윤이와 자네처럼 인사 나누시게 하고 프디아. 사부님은 인기가 너무너무 좋으셩.

나는 초아선생님께 인사시켜 드릴까나? ㅋㅋㅋ
(왜냐하면 내가 어머니 다녀오신 후 며칠 지나서 슬쩍 여쭤봤더니 스님께서 그러셨다누만. "되기는 뭐가 되요?" 당장에 오마니 왈, "너는 맨날 밥도 제때 안 먹고 잠도 제 때 안 자면서 도대체 뭘하는 거냐? 나는 니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합격할 줄 알았는디?" 끄악~ 오마님도 불안 하신 겨. 어쩌면 나보다 더 내 걱정 하시지... )

그러면 아마 이렇게 말씀 하실껴. 열심히(작게) 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크~으게) 큰 꿈은 아니더라도(작게) 작은 꿈은 노력하면 "됩니다." (크게) 그래서 우리도 덕택에 맨날 꿈을 향해 즐겁게 가잖아. <군자 종일 건건하면... > 궁둥살! 궁둥살!하며... 호호호.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2 [29] 놀이로 이끄는 사람 vs. 놀이의 파괴자 교정 한정화 2007.10.22 2590
411 [칼럼 29] 그녀, 연애를 시작하다 [6] 海瀞 오윤 2007.10.22 2645
410 [칼럼026] 가는 곳마다 모임이 생기는 남자 [2] 香山 신종윤 2007.10.22 2835
409 (29) 놀고들 있네! [3] 時田 김도윤 2007.10.22 2446
408 [칼럼 29] 딱지 따먹기 [1] 余海 송창용 2007.10.22 4088
407 [칼럼29]거위의 꿈. [5] 素田최영훈 2007.10.22 2394
406 의식주 문제를 놀이로 만드는 법 [2] 현운 이희석 2007.10.22 2660
405 네 안의 너와 놀아봐. [5] 호정 2007.10.22 2237
404 연구원 놀이터에서 춤을 추다 [4] 素賢소현 2007.10.22 2126
403 혼자놀기-신이 숨겨둔 장난감 찾기놀이 우제 2007.10.21 3031
» [29] 노모와 땡중 사이, 그녀의 놀이감 [2] 써니 2007.10.21 2775
401 (28) 글 쓰기 &quot;놀이&quot;의 딜레마 香仁 이은남 2007.10.21 2318
400 (28) 이상한 나라의 소라 (Sora in Wonderland) file [6] 時田 김도윤 2007.10.16 3056
399 니체를 사랑하는 사람들 [3] 우제 2007.10.16 2431
398 [28-2] 꿈꾸는 초록나무의 운명애Amor fati [2] 써니 2007.10.16 2384
397 [28-1] 꿈꾸는 초록나무의 성장기 [3] 써니 2007.10.16 2340
396 [칼럼28]향기로운 결혼식 [4] 素田최영훈 2007.10.16 2124
395 윤, 파리에서 어느 날. [8] 호정 2007.10.16 2450
394 [칼럼 28] 오늘도 흐르는 마그마 [5] 여해 송창용 2007.10.15 2149
393 [칼럼025] 선생님, 가지 마세요. [5] 香山 신종윤 2007.10.15 2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