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賢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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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놀이터에서 춤을 추다
연구원 놀이터에서 춤추며 뛰어논지도 6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변화샘은 스스로 연구원 과정을 ‘놀이’라 표현하셨다. 그렇기에 이번 책을 읽으며 연구원 놀이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놀이는 규칙의 체계이다.” 라는 전제 아래에서, 연구원의 규칙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며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무엇이 놀이이며 무엇이 놀이가 아닌가를, 혹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규정하는 정리의 시간이었다.
연구원은 매주 한권의 책을 읽고 북리뷰와 칼럼을 월요일 오전 12시까지 올린다. 1년에 5번의 휴직의 기회도 주어진다. 물론 그 선택은 유료이다. 이 규칙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시작하지 못한 나는, 어쩌면 놀이의 주체로서, 놀이를 즐기지 못한 사람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약속은 자의적인 동시에 강제적이며 결정적인 것이라는 것, 그것은 어떠한 구실로도 깨져서는 안 되며, 만일 그 약속이 깨지면, 놀이는 즉석에서 끝난다는 것을 ‘호모 루덴스’를 읽고 서야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놀이의 파괴자로 규칙의 위반을 꿈꾸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놀이는 ‘위반’이라는 사실 자체에 의해 파괴된다. 놀이하고 싶은 욕망, 즉 놀이의 규칙을 지키겠다는 의지에 의해서만 규칙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놀이를 하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하지 않든가, 둘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연구원 활동의 반을 넘기는 시점에서, 이제야 변화샘의 의도를 이해한다고, 이미 존재했던 놀이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챙피한 일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과정인 것을.^^
연구원 놀이는 원칙을 준수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써 자신을 이기려고 하는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더욱 요구되는 것은 원칙을 지키면서 자신을 능가하며, 원칙에 따라서 자신을 신뢰하고, 증오심을 품지 않고 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실패도 찾아오며,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외부의 힘든 자극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때에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면서 패배를 감수할 수 있느냐는 연구원 과정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정이다. 나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계속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끊임없이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 고민 이전에 연구원 놀이의 가장 매력 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모든 게임은 1주일 간격으로 새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1주일을 실패하더라도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다시 제로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다. 놀이하는 나는 누군가를 혹은 나를 비판하거나 낙담하기보다, 내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데 에너지를 쓰면 된다.
연구원 놀이는 이러한 자기 조절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또한 그러한 일상의 습관을 나의 삶 전체에까지 확대하게 한다. 물론 현실의 경쟁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이야기를 하지만,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독자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반응을 조회 수나 댓글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외부의 자극도 한정된 것이 아니다. 나 또한 회사의 문제와 엄마의 병, 관계의 문제가 한꺼번에 찾아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연구원놀이는 일상의 습관 훈련을 통해, 어떤 행동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 초연한 태도를 취하는 연습을 한다. 가령 그 태도가 겉보기에만 그러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이라 해도. 연구원 놀이에서는 그러한 태도가 필요하다.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표현한 것은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만을 의지하면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연구원 놀이도 이것에 못지않게 엄격한 훈련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와 당당함을 가지고 너그러운 태도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면서 자신에 대한 인색함, 탐욕, 증오를 물러서게 하는 것, 이것이 연구원 놀이의 태도이다.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운명적으로 찾아오는 외부의 힘든 자극들을 리뷰나 칼럼의 유리한 조건들로 활용하는 것도 놀이이며, 울림을 주는 책이나 작가에게 최고의 열성을 집중시키는 것도 신나는 놀이이다.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한 시공간에서도 우연의 글쓰기를 해내는것도 놀이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넘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대담함을 발휘하는 것도 짜릿한 놀이다. 싸이트를 찾는 이들을 위하여 빈틈없이 계산하는 신중함을 발휘하는 것도 놀이이며, 이러한 여러 두뇌활동을 조합하는 능력을 동원하는 것도 놀이이다. 내가 경험한 놀이중에서 연구원 놀이만큼 주의력과 재능, 지구력을 요구하는 놀이도 없다.
나는 매주 연구원 놀이를 통해 정신을 보다 체계적이고 창의성이 있게 한다. 마음을 보다 강인하고 유연하게 한다. 시각을 보다 날카롭고 다양하게 한다. 손놀림을 보다 섬세하고 부지런하게 한다. 연구원 수업의 모든 놀이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강화하고 날카롭게 하고 있다. 즐거움과 끈질김을 통해 매주 새로운 나를 만나고, 이별하며, 나를 넘어서는 놀이를 하는 놀이터. 그곳에서 오늘도 나는 변화의 춤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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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놀이터에서 춤추며 뛰어논지도 6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그동안 변화샘은 스스로 연구원 과정을 ‘놀이’라 표현하셨다. 그렇기에 이번 책을 읽으며 연구원 놀이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놀이는 규칙의 체계이다.” 라는 전제 아래에서, 연구원의 규칙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며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어쩌면 무엇이 놀이이며 무엇이 놀이가 아닌가를, 혹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규정하는 정리의 시간이었다.
연구원은 매주 한권의 책을 읽고 북리뷰와 칼럼을 월요일 오전 12시까지 올린다. 1년에 5번의 휴직의 기회도 주어진다. 물론 그 선택은 유료이다. 이 규칙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시작하지 못한 나는, 어쩌면 놀이의 주체로서, 놀이를 즐기지 못한 사람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약속은 자의적인 동시에 강제적이며 결정적인 것이라는 것, 그것은 어떠한 구실로도 깨져서는 안 되며, 만일 그 약속이 깨지면, 놀이는 즉석에서 끝난다는 것을 ‘호모 루덴스’를 읽고 서야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놀이의 파괴자로 규칙의 위반을 꿈꾸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놀이는 ‘위반’이라는 사실 자체에 의해 파괴된다. 놀이하고 싶은 욕망, 즉 놀이의 규칙을 지키겠다는 의지에 의해서만 규칙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놀이를 하든가 아니면 처음부터 하지 않든가, 둘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연구원 활동의 반을 넘기는 시점에서, 이제야 변화샘의 의도를 이해한다고, 이미 존재했던 놀이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챙피한 일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과정인 것을.^^
연구원 놀이는 원칙을 준수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써 자신을 이기려고 하는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더욱 요구되는 것은 원칙을 지키면서 자신을 능가하며, 원칙에 따라서 자신을 신뢰하고, 증오심을 품지 않고 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실패도 찾아오며,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외부의 힘든 자극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때에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면서 패배를 감수할 수 있느냐는 연구원 과정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정이다. 나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계속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끊임없이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그 고민 이전에 연구원 놀이의 가장 매력 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모든 게임은 1주일 간격으로 새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1주일을 실패하더라도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 다시 제로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다. 놀이하는 나는 누군가를 혹은 나를 비판하거나 낙담하기보다, 내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데 에너지를 쓰면 된다.
연구원 놀이는 이러한 자기 조절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또한 그러한 일상의 습관을 나의 삶 전체에까지 확대하게 한다. 물론 현실의 경쟁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이야기를 하지만,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독자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반응을 조회 수나 댓글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외부의 자극도 한정된 것이 아니다. 나 또한 회사의 문제와 엄마의 병, 관계의 문제가 한꺼번에 찾아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연구원놀이는 일상의 습관 훈련을 통해, 어떤 행동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 초연한 태도를 취하는 연습을 한다. 가령 그 태도가 겉보기에만 그러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이라 해도. 연구원 놀이에서는 그러한 태도가 필요하다.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표현한 것은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만을 의지하면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연구원 놀이도 이것에 못지않게 엄격한 훈련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와 당당함을 가지고 너그러운 태도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면서 자신에 대한 인색함, 탐욕, 증오를 물러서게 하는 것, 이것이 연구원 놀이의 태도이다.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운명적으로 찾아오는 외부의 힘든 자극들을 리뷰나 칼럼의 유리한 조건들로 활용하는 것도 놀이이며, 울림을 주는 책이나 작가에게 최고의 열성을 집중시키는 것도 신나는 놀이이다.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한 시공간에서도 우연의 글쓰기를 해내는것도 놀이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넘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대담함을 발휘하는 것도 짜릿한 놀이다. 싸이트를 찾는 이들을 위하여 빈틈없이 계산하는 신중함을 발휘하는 것도 놀이이며, 이러한 여러 두뇌활동을 조합하는 능력을 동원하는 것도 놀이이다. 내가 경험한 놀이중에서 연구원 놀이만큼 주의력과 재능, 지구력을 요구하는 놀이도 없다.
나는 매주 연구원 놀이를 통해 정신을 보다 체계적이고 창의성이 있게 한다. 마음을 보다 강인하고 유연하게 한다. 시각을 보다 날카롭고 다양하게 한다. 손놀림을 보다 섬세하고 부지런하게 한다. 연구원 수업의 모든 놀이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강화하고 날카롭게 하고 있다. 즐거움과 끈질김을 통해 매주 새로운 나를 만나고, 이별하며, 나를 넘어서는 놀이를 하는 놀이터. 그곳에서 오늘도 나는 변화의 춤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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