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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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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2일 00시 42분 등록
너는 솔직함이란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 누구를 속이지 않는 것만인 줄 알았어. 그런 면에서 넌 솔직했지. 연극할 줄 몰랐으니까. 그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누구에게든 거짓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넌 솔직함의 한 단면만을 보고 있었던 거야.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것. 그것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이것도 솔직하지 못한 거였어.

넌 벌써 오래전부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런 당위성을 가진 스스로의 규범이 많았어. 그러다 보니 그거에 눌려서 그랬나봐. 자기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을 잘 나타내지 못했어. 아니, 그게 뭔지도 잘 몰랐어. 그러다보니 결론을 내리고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방황하고 갈피를 잘 못 잡고 머뭇거리곤 했지. 그러다가 그 분위기에 휩쓸려버리고 상황 가는대로 따라가 버리고 말았어. 아니면 타인의 의견이 자기 의견인 양 착각하고 그런 줄 알았지. 응당 본인이 해야 할 결정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기대어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괜한 눈치까지 보게 되고. 그리고 나중이 되면 불편해 하는 거야. 그건 결국 자기가 아니었거든.

그런데 상황은 이미 벌어지고 종결된 터라 그 때는 어찌할 수 가 없는 거야.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 그럼 그 때부터 자신을 그 상황에 끼워 맞추는 거야.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변명하고 마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양 스스로를 위로했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는 편편치가 않았어. 그럴 테지. 본래 자기가 아니었으므로. 넌 자신이 그랬다는 걸 전혀 몰랐을까. 아니었을 거야. 어렴풋이라도 느끼기도 했었을 거야. 하지만 부인하려 했어. 그렇지 않으면 이미 일어난 상황과 본래 마음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괴로우니까. 그 상황이 흘러가 끝을 보게 될 때, 정작 아무 판단도 하지 못하고 내 일인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로우니까.

그리고, 그러면서 점점 정말로 뭘 바라고 뭘 원했던지는 더 묻혀져 버리게 되는 거야. 그리고 상황이 끝나버린 후 새롭게 얻을 수 있는 생각과 감정들조차 순수하지 못하고 왜곡되어져 버리는 거야. 당연할 거야. 그 전부터 자신을 속이고 있었거든.

적당히 자신에게 속는 것도 자신에게는 이로울 지도 몰라. 세상을 사는 한 방법일 수도 있고. 하지만 알고 그러는 것과 모르고 그러는 것은 차이가 있겠지.

넌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그 당위성의 틀 안에서 놀았던 건지 몰라. 그 틀은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넓어져 갔지만,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그 틀의 경계 밖으로 넘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넌 여전히 엄격한 거 같아.

이 세상은 녹녹치 않아. 착한 사람들 많지만 못된 사람들도 많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고. 진실한 사람들도 많지만 사기꾼들도 많고. 상식 밖의 일도 많고. 기가 막힌 일도 많고. 생각과 전혀 다른 일들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곳이지. 그런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만은 없겠지. 그렇게 돌아가지도 않고 자기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겠지.

그런데 원하고 바라는 것도 잘 모르고 있던 넌, 이것들을 밖으로 표출하고 외부와 조율하는 과정들이 그동안 많이 결여되어 있었어.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말이야. 사람이던 일이던 자기를 던지고 부딪히고 겪고 하면서, 타협하고 반박하고 조율하는 그런 과정. 그러면서 자신만의 생각과 견해도 몸으로 얻고 보눈 눈도 길러질 테지. 이것도 성장하는 한 과정인데 말이야. 그런 값진 과정들이 부족했던 게 참 아쉬워.


이런 상황은 또 올 수 있어. 자기 생각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또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어. 그 때는 어째야 하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자 호기심에 따라 결정할 수 있고, 그냥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막연한 느낌을 따라갈 수도 있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느라 시간을 더 벌고 결정할 수도 있을 거고, 근거 없는 직관에 따라 움직일 수도 있겠지.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뭔가 편치 않은데도 끌려가 버리고 마는 건, 이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그런데 이런 상황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시 쉽지 않을 거야. 상황이 항상 나를 기다려 주지 않거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수 있거든. 나도 사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어. 물론 최선의 결정을 해야겠지만.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 자체로 소중한 과정일 수 있잖아.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거잖아.

갑자기 니체가 말한 구절 중 하나가 떠올라.
“우리는 잘못 간주되어진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계속 자라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벗고 매년 봄마다 새 껍질을 입으며 계속해서 젊어지고 미래로 채워지며 더 커지고 강해진다.”

훗날 너는 허물을 벗고 유연해지느라 아팠던 이 순간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고, 달라진 너를 볼 수 있을 거야.



힘드니.

하늘을 봐. 가을이라 참 파랗고 높다. 시원하다. 이 하늘을 보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어봐.

자신을 놓아주어. 편안하게 해줘. 네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게. 길을 터줘. 경계를 풀어줘. 훨훨 날 수 있게.

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꺼내어 봐. 마음을 확 열어봐.

그리고 세상으로 나와. 어렵고 힘든 때라도 숨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 그리고 부딪히고 겪어봐.

솔직해 봐. 단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솔직함이 아닌, 진정한 나를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솔직함. 그럼 더 자유로울 수 있어. 네가 그렇게 좋아하고 갈망하는 자유. 솔직하면 더 자유로울 수 있어. 그럼 네 안의 너와 편하게 놀 수 있을 거야.

---
'놀다'과 억지로 연결시켰죠?
IP *.120.6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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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22 05:59:24 *.72.153.12
솔직함.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솔직하는 것은 힘들고, 외롭고, 즐겁고,웃게하고 울게하는 것 수많은 모순들을 끌어안게 하는 것. 자신이 선택하게 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 그래서 두려우면서도 흥분되며 신나는 것.

그래도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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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10.22 08:06:20 *.244.218.10
그럼. 하지.

솔직함 하면 느껴지는 건, 언니랑 나랑은 아마 다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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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10.22 10:07:35 *.231.50.64
호정아.. 글이 참 편안하고 좋다..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적극적인 솔직함. 쉽지는 않을꺼야. 그지?
그래도 너가 그 길을 알고 있으니..
곧 훨훨 날아오를꺼라 믿어..

요즘 너의 걸음걸이가 조금은 달라진걸 알고 있니?
가끔씩.. 땅위에 떠서 날곤 하더라..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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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10.24 08:07:46 *.244.218.10
ㅋㅋ 가끔 난다고....?
앞으로 더 많이 날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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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10.25 17:20:16 *.232.147.103
붸리 굿.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데.
자신에게 나지막이 속삭이는 누나의 진솔한 목소리가 들린다. 조용하지만 무게있는 목소리구나.
경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만, 그것에 또한 집착하지 않길 바래. 또다른 경계를 만들어내지 않게 말이야.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중에 '인생 뭐있어?' 라는 말이 있어. 그런데 요즘 그 말이 조금 마음에 든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 너무 진지해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약간 미친 것은 아주 재미있지. 약간 미쳐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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