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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2일 06시 52분 등록

요즈음 초등학교 1학년들에게는 딱지치기가 유행인 모양이다. 지금 태규가 딱지치기를 하자고 한다. 딱지치기는 내가 어렸을 때도 좋아했던 놀이 중에 하나이다. 딱지치기처럼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고 꾸준히 유행하는 놀이가 있어 다행이다. 딱지치기를 하는 방법은 우리 때와 비슷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딱지를 직접 만들었지만 지금은 딱딱한 종이나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뿐인 것 같다.

딱지를 쳐서 뒤집으면 딱지를 가져가는 게임을 하기로 하였다. 일명 ‘딱지 따먹기’이다. 일단 딱지를 반반씩 나누어 갖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순서를 정하였다. 내가 먼저 태규의 딱지를 쳤다. 딱지가 넘어갔다. 다른 딱지를 쳤다. 또 넘어간다. 옛날 실력이 녹슬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해진다. 태규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딱지를 쳤다. 다행히 딱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태규가 딱지를 쳤다. 딱지를 치는 모습이 제법 힘이 있고 요령도 생긴 모양이다. 이렇게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아뿔싸 내가 이겨 버렸다. 예전 같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텐데 지금은 생글 생글 웃으면서 다시 게임을 하자고 한다. 이제는 놀이를 즐길 줄 아는 것 같다.


<딱지 따먹기>

딱지 따먹기 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내 마음이 조마조마 한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최신 동요 중에 <딱지 따먹기>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이 가사를 보면 딱지치기를 할 때의 마음을 그대로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직접 쓴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어서 더욱 실감이 난다. 태규도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몇 번 딱지치기 게임을 했더니 벌써 식상해져 재미가 없어졌다. 처음 두 세 번은 재미로 하였지만 그 다음부터는 태규가 졸라대는 통에 의무감으로 하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놀이를 하지만 아이는 아직도 재미로 계속하고 있다. 이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게임을 더 재미있게 하려고 내기를 걸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안마를 해주기로 하였다. 내가 세 번의 안마를 받았고, 태규는 두 번의 안마를 받았다. 이것도 재미가 없어 그만 하자고 하지만, 태규는 새로운 내기를 걸며 다시 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제 딱지치기 자체의 재미는 없어지고 내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호이징하의 말이 생각난다. “놀이는 절대적이며 최고인 질서를 요구한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경기를 망치게 된다. 그리고 놀이의 특성은 사라지고 놀이는 무가치 해진다.”

실러의 말도 생각난다. “부족함이 활동의 본능 동기일 때는 동물은 일을 하고, 힘의 풍족함이 본능 동기일 때는 놀이를 한다.”

놀이에서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그 놀이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 그러면 그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일이 되어 버린다. 새로운 목적을 찾게 되고, 그 목적으로 인해 의무감으로 놀이를 대하게 된다. 그때부터 놀이는 일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방법은 없을까. 아니 놀이였던 일로 다시 되돌아갈 방법은 없을까. 이것은 나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인생이 두 번째 여행이자 놀이가 되기 위해선 꼭 해답을 찾아야 할 문제가 되었다. 일이 곧 놀이이고, 놀이가 곧 일이 되는 그런 날이 나한테도 오겠지. 버나드 수츠가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버나드 수츠는 <베짱이의 놀이, 삶, 유토피아>에서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일할 필요가 없는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결국 일과 유사한 놀이를 발명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목수는 ‘집짓기 놀이’를 발명했을 것이고, 과학자는 ‘발견 놀이’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집을 지을 필요가 없고, 모든 발견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라 해도 말이다. 수츠는 그들의 유토피아에서는 일하는 활동이 놀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외부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할 일’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놀면서 일하는 대신, 일하면서 놀 것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거나 일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이 ‘놀이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놀면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수츠의 주장에 따르면, 당신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일하면서 놀 수가 아니다. 첫째, 당신은 일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둘째,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태규는 아직 어려서 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오직 놀이의 재미만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방식의 놀이를 만들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아이다. 그 점에서 아이는 내게 놀이의 스승인 듯싶다.
IP *.212.16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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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10.22 08:44:41 *.152.82.31
좋은 말이야.
“부족함이 활동의 본능 동기일 때는 동물은 일을 하고, 힘의 풍족함이 본능 동기일 때는 놀이를 한다.”
우리 다시 놀이를 시작해야지?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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