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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30일 10시 35분 등록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06] 삼국유사 (2)

 

올 해 저희 가족의 프로젝트는 자유학년제를 맞이한 중학교 1학년 큰 딸과 아빠와 엄마가 함께 인문고전을 읽고 가족토론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번 가족토론으로 선정한 책은 <삼국유사> 입니다. 큰 딸은 인문고전 학습만화 <삼국유사> (한지영 글, 이진영 그림, 주니어김영사)로 읽었고, 아내와 저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로 읽었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마음편지에서 이어집니다.

 

아빠) 원효와 해골 바가지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는 없고 다른 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의상과 원효이야기가 낙산사를 중심으로 아주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먼저 의상 이야기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펼쳐 읽는다)

옛날 의상 법사가 처음으로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부처님의 진신이 이곳 동해안 해변 굴 안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때문에 낙산(洛山)이라 불렀다. (중략)

의상은 7일 동안 재계하였다. 좌구가 새벽녘 물 위로 떠올라와 용천팔부의 시종이 굴 안으로 이끌어져 공중에 예를 갖추고 수정으로 된 염주 한 관을 내어 주었다. 의상이 머리 숙여 받고 물러나는데, 동해 용이 또한 여의보주 한 과를 바치자 법사가 나가 받들었다.

다시 7일 동안 더 재를 올렸다. 이에 진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앉아 있는 곳 위의 산 정상에 대나무 두 그루가 솟아 있을 것인즉, 그 곳에 절을 지어야 좋겠다.”

법사가 그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자,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와 있어, 금당을 짓고 불상을 만들어 모셨다 불상은 둥싯한 얼굴과 미려한 바탕이었으며, 위엄이 하늘에서 낸 듯 하였다. 그러자 대나무가 없어졌으니, 바로 이곳이 진신이 계시던 곳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 절의 이름을 낙산사라 지었다. 법사는 받아온 두 보물을 성전에 잘 모셔두고 갔다.’ (492-494)

의상은 중국에서 불교를 배우고 돌아와 한반도에 퍼뜨렸습니다. 비록 의상은 중국에서 불교를 배웠지만 낙산사 이야기를 통해 더 이상 의상이 보여주려는 부처님은 중국산 수입품이 아니라 한반도에 이미 계셨던 부처님이 되는 겁니다.

이번에는 원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남쪽 교외에 이르렀는데, 흰 옷을 입은 한 여인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는 것을 보고, 원효법사는 희롱조로 그 벼를 좀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여인은 말라붙은 벼를 희롱조로 주었다. 또 가다가 다리 아래 이르렀는데, 한 여인이 서답 빨래를 하고 있었다. 법사는 물을 좀 달라고 하였다. 여인은 더러운 물을 길러 주었다. 법사는 엎어버리고 다시 개울물을 떠서 마셨다.

그 때 들 가운데 소나무 위의 파랑새 한 마리가 이렇게 울었다. (중략)

그러더니 그 소나무 아래에는 갖신 한 짝만이 놓여져 있었다. 절에 도착하여 법사는 관음상이 앉은 자리 아래 다른 갖신 한 짝이 있음을 보았다. 그때서야 알 만했다. 앞서 만난 여자들이 바로 성녀(聖女)이며 진신(眞身)이라는 사실을. 이 때문에 그 때 사람들이 (들 가운데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렀다.

법사가 굴에 들어가 진신의 모습을 보고자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들어가지 못하고 갔다.’ (495)

부처님을 보려고 낙산사를 향해 오던 원효는 두 명의 여성을 만납니다. 논에서 벼를 베며 노동하는 여성과 생리대를 개울물에 빨래하는 여성입니다. 원효는 미처 이 여성이 누구인지 모르고 농담이나 건넸습니다. 그러나 낙산사에 도착해서야 부처님인 줄 알아챕니다. 원효는 거리에서 부처님을 외치던 승려입니다. 원효는 노동하는 여성, 생리하는 여성처럼 당시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진정한 부처님으로 봅니다.

의상처럼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산 속에 들어가 일편단심으로 정진하는 모습도 불교의 모습이지만, 길 가다 스치는 사람들에게서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원효의 모습도 분명 불교의 모습입니다. 절에 모셔진 부처님도 부처님이지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부처님이라는 겁니다. 의상과 원효의 낙산사 부처님 이야기를 전하는 삼국유사는 참으로 멋진 이야기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마) 아빠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됩니다.

아빠) 수민이도 이해가 되니?

수민) (웃으며) , 저도 이해가 되요.

아빠) 의상의 부처님은 참으로 성스럽습니다. 반대로 원효의 부처님은 세속적입니다. 마치 빛과 어둠처럼 서로 반대편에 있지만 사실 모두 부처님입니다. 고운기 교수님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의 이름인 일연(一然)에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책을 편다)

일연은 처음 이름이 견명이었고 불교의 이름을 희연이라 지어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켰다. 옛 사람들이 이름[] 다음에 자()를 지을 때 흔히 하는 방법이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이 둘 곧 밝음과 어둠을 하나로 보겠다는 뜻에서 새로운 이름에 일()자를 넣었다.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726-728)

일연스님은 성스러움과 세속된 세상이 곧 하나라는 진리를 이름에 새기실 만큼 중요히 하셨습니다. 의상의 부처님과 원효의 부처님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겁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삼국유사가 전하는 이야기에 참으로 감탄했습니다.

엄마는 삼국유사의 첫 부분에 나오는 여러 임금들의 탄생설화가 별로 재미없다고 하였습니다. 저 역시 놀라운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임금이야기 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중간 이후에는 보통사람들, 아니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474-481)는 태중에 아이를 가진 여인이 부처님이라고 말합니다. 임산부야 말로 가장 연약하면서도 보호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절간에 여인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는 계율만 지켜서는 결코 부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즉시 돕는 게 바로 부처님을 만나는 방법이며 또한 자신이 부처님이 되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계집종 욱면 이야기(624-628)은 부유층의 돈으로 부처님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받는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유사 원문을 읽어보겠습니다.

경덕왕 때였다. 강주의 뜻 있는 선비 수십명이 서방정토에 가기를 바라면서, 그 근처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일을 기약하는 계를 만들었다. 그 때 귀진 아간의 집에서 일하는 여종 중에 욱면이라고 있었다. 자기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마당 가운데 선 채 승려들이 하는 대로 염불을 했다. 주인이 제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여, 날마다 곡식 두 섬씩 주고 하루 저녁에 찧도록 했다. 욱명은 밤 8시쯤 다 찧고 나서 절에 와서 염불을 했는데, 하루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당 양쪽에 장대가 서 있었다. 욱면은 새끼줄로 양쪽 손을 뚫어 장대 위에 연결하고, 양쪽을 왔다갔다하며 있는 힘을 다했다. 그 때 천사가 공중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욱면 처자는 법당으로 올라가 염불하라.”

절에 모인 사람들이 이를 듣고 권하니, 욱면은 법당에 올라 순서에 따라 열심히 염불했다. 얼마 있다 하늘의 음악소리가 서쪽에서 올라오더니만, 욱면이 지붕을 뚫고 솟아올라 서쪽으로 향했다. 가다가 동네 밖에 이르러 몸을 버렸는데, 진신으로 변해서 연대에 앉아 밝디 밝은 빛을 뿜었다. 서서히 가는 동안 음악소리는 하늘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법당에는 지금도 구멍 뚫린 자리가 있다고 한다.’ (624)

욱면이라는 계집종이 성불하는 이야기입니다. 루카복음이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수님 승천 장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지역 유지들이 돈을 내어 절을 세우고 부처님께 빌었다는 부분은 현세의 복락이 내세에서도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노동에 지친 종살이를 하는 욱면이지만 노동을 마치고 나면 절 마당 한 켠에서 손바닥을 줄로 꿰고 염불을 외웁니다. 돈보다 마음이, 육신은 한낱 껍데기일 뿐임을 아는 이가 진짜 부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엄마) 아빠 이야기를 들어보니 삼국유사가 참으로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읽고 해석해 내려면 이 두꺼운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건가요?

아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책을 찾아 손에 쥐었으면 처음에 재미가 좀 없어도 끝까지 읽는 습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훌륭한 책으로 전해지는 이유는 반드시 책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끝까지 읽어보고 생각하는게 중요합니다.

엄마에게 묻습니다. 수민이와 수린이 낳을 때 태몽이 있었나요?

엄마) 수민이와 수린이 모두 동일한 꿈이었습니다. 커다랗고 검은 구렁이가 꿈에 나왔습니다.

수민) 구렁이 태몽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습니다.

수린)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만 듣다가 가까이 와서 엄마에게 묻는다) 저도 태몽이 있었다고요? 저는 몰랐어요.

엄마) 수린이도 구렁이 태몽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큰 뱀을 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큰 뱀을 구렁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의자에서 일어나서 손바닥을 수린이 키 높이 만큼 들어올리며) 이정도로 두꺼운 검은 뱀이 엄마 옆을 스르륵 지나갔어요. 너무 무서워서 소리도 안내고 꼼짝도 안했어요. 수민이 수린이 모두 같은 꿈이었어요.

아빠) 그정도면 구렁이라기 보다는 용이라는 게 맞겠어요. 

엄마) 아빠는 태몽이 있나요?

아빠) 대전 할머니 말씀이 아빠는 태몽이 없었데요. 엄마는 태몽이 뭐였죠?

엄마) 봉황이었데요. (웃음)

아빠)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전기로 자동차가 움직이고 로케트를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가는 지금 이시대에도 내가 누구인가?’를 이야기할 때 태몽부터 이야기합니다. 기묘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늘 함께 하고 있습니다.

수민, 수린) (아빠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얽혀 거대한 구렁이가 지나가는 흉내를 내고 있음)

엄마) 오늘 삼국유사 토론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저도 삼국유사를 다시한번 끝까지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아빠)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삼국유사 이야기를 가족과 함께 나누어서 행복했습니다.

수민) 삼국유사 재미있었습니다. 아빠가 자세하게 설명해 줘서 더 좋았습니다.

 

이상으로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삼국유사>편 여섯번째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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