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瀞 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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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연애를 시작하다
2007년 10월 31일이 되면, 제가 배우자를 위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한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기도를 하기 시작했을 때의 심정이 아직도 제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은 갈망이 깃들여 있었고, 진심으로 나를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간에 쌓여만 갔던 남자란 존재에 대한 실망감을 쓸어버리고자 영혼을 다해 기도했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던 도중에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간절함을 내려놓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한 사람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비우고 채운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지? 우린 처음에 하나도 안 친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이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기록의 장점은 턱없이 약한 기억이라는 녀석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게 아닐까 다시금 깨닫습니다. 먼 훗날, 이 글을 보았을 때 감회가 새롭다며 한 번 씨익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갑니다. 물론, 이 글을 써도 되는지 그에게도 허락을 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지도 모를 이 글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될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윤이가 편하게 쓸 수 있으면 돼”
그에게 많이 고마운 것 중에 하나는, 나의 글을 정성스레 읽어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 가져주고, 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힘이 들 때면 가장 먼저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냥 일상에서 스치는 그런 평범한 인연이었습니다. 만나게 되면 인사하고, 모임에서 마주치더라도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고, 참 편안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난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세계여행을 하듯 그렇게 여러 개의 정거장을 지나갔습니다. 신앙이라는 정거장, 사회생활이라는 정거장, 어린 시절이라는 정거장, 그냥 시시콜콜한 일상이라는 정거장, 이렇게 많은 정거장을 지나가며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나와 영혼이 닮은 사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그렇게 다가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도 그런 마음이었나 봅니다. 그를 보면서, 제가 그 동안 그토록 주장했던 ‘나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내게 ‘특이한 코드’를 가졌다고 했었지요? 살면서 종종 듣던 말이었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때때로 외롭기도 했었는데 이 사람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줍니다. 그리고 한 발 더 앞서 가서 나를 기다려줍니다. 가끔씩은 내 입을 다물게 할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문득, 제가 1년 가까이 드렸던 기도문을 다시 꺼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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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버지의 때에 아버지께서 친히 중매쟁이가 되어주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함께 주께 영광 돌릴 가정 꾸릴 수 있는 축복 허락하소서.
아버지, 나와 같은 기도를 하고 있을 그에게도 간절함을 허락하시고 "내 잃어버린 갈비뼈,
여기 있었구나" 하며 나와 영혼의 눈높이가 같은 그가 먼저 내게 다가올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나는 이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함임을 아는 사람.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평생 함께 해야 하니까요.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을 즐기고 만끽할 수 있는 사람.
천국에서 누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만의 기쁨을 즐길 줄 알아야죠.
하루의 시작을 포옹으로, 하루의 끝을 키스로 마무리하는 사람.
이 세상이 주는 낭만, 그냥 놓치고 지나갈 순 없잖아요.
나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취미 하나 정도쯤 있는 사람.
삶을 공유할 줄 아는 것만큼 원활한 의사소통 법은 없으니까요.
삶의 우선순위가 침해 당할 만큼 바쁘지 않은 사람.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죠.
나 이외의 여자에게는 관심 없는 사람.
질투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닮아서 나도 꽤나 예민하니까요.
나를 자신의 갈비뼈만큼만 사랑해주는 사람.
갈비뼈만큼 사랑해주는 것도 힘들다는 것 알거든요.
자상하고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주님 보시기에 화목한 가정, 나 혼자서는 만들 수가 없거든요.
행여나 다툴 일이 생겨도 선을 넘지 않는 사람.
때로는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까요.
양가 부모님이 참으로 환영하는 서로가 될 수 있는 사람.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평생 서약 하고 싶거든요.
너무 많은가요?
근데 아버지도 수긍하실 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먼 훗날, 꼭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그대를 만나,
스물여덟에 그대 손잡고 함께 천국 문에 들어갈 것을 약속했노라"
아버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많이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루만큼씩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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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일곱에 그를 만났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 그도 많이 감사했는지 아침 출근길에 밀려오는 피곤을 뒤로 한 채 새벽기도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 하고, 그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억 만금을 손에 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그냥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남자가 아니라, 나의 자존심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냥 세상에 존재하는 한 여자가 아니라, 그의 자신감입니다. 제가 이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대는 나의 자존심이고, 나는 그대의 자신감입니다”
그랬더니 답문이 오기를,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또 다시 답문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대신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으나, 이 글의 기회를 빌어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
IP *.129.52.39
2007년 10월 31일이 되면, 제가 배우자를 위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한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기도를 하기 시작했을 때의 심정이 아직도 제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은 갈망이 깃들여 있었고, 진심으로 나를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간에 쌓여만 갔던 남자란 존재에 대한 실망감을 쓸어버리고자 영혼을 다해 기도했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던 도중에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간절함을 내려놓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한 사람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비우고 채운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지? 우린 처음에 하나도 안 친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가 시작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이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기록의 장점은 턱없이 약한 기억이라는 녀석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게 아닐까 다시금 깨닫습니다. 먼 훗날, 이 글을 보았을 때 감회가 새롭다며 한 번 씨익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갑니다. 물론, 이 글을 써도 되는지 그에게도 허락을 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지도 모를 이 글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될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윤이가 편하게 쓸 수 있으면 돼”
그에게 많이 고마운 것 중에 하나는, 나의 글을 정성스레 읽어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 가져주고, 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힘이 들 때면 가장 먼저 응원해주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냥 일상에서 스치는 그런 평범한 인연이었습니다. 만나게 되면 인사하고, 모임에서 마주치더라도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고, 참 편안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난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세계여행을 하듯 그렇게 여러 개의 정거장을 지나갔습니다. 신앙이라는 정거장, 사회생활이라는 정거장, 어린 시절이라는 정거장, 그냥 시시콜콜한 일상이라는 정거장, 이렇게 많은 정거장을 지나가며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나와 영혼이 닮은 사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그렇게 다가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도 그런 마음이었나 봅니다. 그를 보면서, 제가 그 동안 그토록 주장했던 ‘나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내게 ‘특이한 코드’를 가졌다고 했었지요? 살면서 종종 듣던 말이었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때때로 외롭기도 했었는데 이 사람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줍니다. 그리고 한 발 더 앞서 가서 나를 기다려줍니다. 가끔씩은 내 입을 다물게 할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문득, 제가 1년 가까이 드렸던 기도문을 다시 꺼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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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버지의 때에 아버지께서 친히 중매쟁이가 되어주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함께 주께 영광 돌릴 가정 꾸릴 수 있는 축복 허락하소서.
아버지, 나와 같은 기도를 하고 있을 그에게도 간절함을 허락하시고 "내 잃어버린 갈비뼈,
여기 있었구나" 하며 나와 영혼의 눈높이가 같은 그가 먼저 내게 다가올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나는 이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함임을 아는 사람.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평생 함께 해야 하니까요.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을 즐기고 만끽할 수 있는 사람.
천국에서 누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만의 기쁨을 즐길 줄 알아야죠.
하루의 시작을 포옹으로, 하루의 끝을 키스로 마무리하는 사람.
이 세상이 주는 낭만, 그냥 놓치고 지나갈 순 없잖아요.
나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취미 하나 정도쯤 있는 사람.
삶을 공유할 줄 아는 것만큼 원활한 의사소통 법은 없으니까요.
삶의 우선순위가 침해 당할 만큼 바쁘지 않은 사람.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죠.
나 이외의 여자에게는 관심 없는 사람.
질투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닮아서 나도 꽤나 예민하니까요.
나를 자신의 갈비뼈만큼만 사랑해주는 사람.
갈비뼈만큼 사랑해주는 것도 힘들다는 것 알거든요.
자상하고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
주님 보시기에 화목한 가정, 나 혼자서는 만들 수가 없거든요.
행여나 다툴 일이 생겨도 선을 넘지 않는 사람.
때로는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까요.
양가 부모님이 참으로 환영하는 서로가 될 수 있는 사람.
진심 어린 축복 속에서 평생 서약 하고 싶거든요.
너무 많은가요?
근데 아버지도 수긍하실 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먼 훗날, 꼭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그대를 만나,
스물여덟에 그대 손잡고 함께 천국 문에 들어갈 것을 약속했노라"
아버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많이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루만큼씩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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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일곱에 그를 만났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 그도 많이 감사했는지 아침 출근길에 밀려오는 피곤을 뒤로 한 채 새벽기도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 하고, 그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억 만금을 손에 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그냥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남자가 아니라, 나의 자존심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냥 세상에 존재하는 한 여자가 아니라, 그의 자신감입니다. 제가 이렇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대는 나의 자존심이고, 나는 그대의 자신감입니다”
그랬더니 답문이 오기를,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또 다시 답문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대신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으나, 이 글의 기회를 빌어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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