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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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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2일 17시 34분 등록



#1 “엄마, 나 막 살았어”

“엄마, 그거 알아?
나 엄마 미워서 집 나온거 아니거든,
그 때는 내가 엄마를 미워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집 나와서 생각해 보니까 세상 사람들 다 밉고 엄마만 안밉더라.
그래서 내가 미웠어.
나 내가 너무 미워가지고 막 살았다?
나 미쳤나 봐.”

영화 '라디오 스타', 청록다방 김양의 구슬픈 한 마디에 어느새 눈물이 쏙 나온다.
(분위기를 깨서 미안하지만, 눈물 살짝 닦고 짚을 건 짚고 넘어가자) 그녀의 눈물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뿐 아니라, 그녀가 느끼는 약간의 죄책감이 드러나있다. 아마도 그것은 열심히 살지 못하고 '막 산것' 에 대한 후회, 친구들처럼 부지런히 그리고 바쁘게 살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일 것이다.

나 또한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빈둥거릴 때, 해야 하는 일은 쌓여있는데 자꾸 다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때 말이다. 사실 지금이 그렇다. 연구원 과제를 시간 쫒기듯 하다가 생각나서 잠시 다시 본 이 영화에 빠져 결국 2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나도 2시간을 막 살았네?


#2 인생의 효율성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고등학교때부터 보지 않았으니, 이젠 TV를 보는 것이 비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TV시청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나 꼭 그런가? 내가 아는 한 교육 컨텐츠 계발자는 TV에서 항상 그 원천을 얻는다 한다. 종종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

TV 대신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TV보다야 그나마 영화가 더 많은 교훈을 응축해 놓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가는 시간도 아까워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는다. 게다가 영화를 보는 시간조차 아끼려고 주로 혼자서 밥을 먹으면서 동시에 본다. 노트북 앞에 반찬들을 죽 늘어놓고는 총각김치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말이다.

길을 걸을 때는 항상 최단거리를 재빨리 계산한다. 하여, 회사에서 집으로 올 때 나는 언제나 똑같은 길을 걷는다. 몇 개월 전 이사왔을 때 몇 번 실험해본 후에 ‘결정한 길’로 말이다. 예외는 없다. 가장 가까우므로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은 헬스클럽을 가는 시간이 아까워 얼마전에 헬스 기구 몇개를 집에 사 두었다. 밥은 한번 할 때 5인분 정도를 하여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잘 만나지 않고, 주말의 결혼식은 그 사람과의 친밀도를 따져서 참석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꼭꼭 저축해둔 시간은 어디에 쓰는 것일까? 나는 정말로 효율적으로 살고 있기는 한걸까? 혹시나 내가 놓치고 있는, 잘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것들은 없을까? 인생이란 이렇게 수학공식 떨어지듯 정확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인데 말이다.

이런 습관은 고교시절부터 생긴 것이다. 천재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노력파’가 살아남으려면 천재들보다 두 배의 시간투자를 해야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을 모으기 위해 여타 다른 시간들은 최대한 줄이고, 취소하여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절약해야하는 어떤 것이었고, 대부분 ‘의미없이 노는 시간’에서 떼어져 붙였다.

하지만, 의미가 있다/없다를 판단하는 내 기준은 무엇인가?
훗날 잘살았다 또는 막살았다를 결정할 내 근거는 무엇인가?


#3 지구가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이렇게 놀지 않고 효율적으로 살다보면 나는 좋은 직장을 얻을 것이다. 높은 연봉을 받고, 빠르게 승진하여 굽실거지리 않아도 될 정도의 위치에 있을 것이다. 남들이 제법 부러워하는 차와 집을 가질 것이고, 위치가 괜찮은 사람들과 어울릴 것이다. 어쩌면 CEO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진지한 오락 게임과 같아서 매 스테이지(Stage)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음 판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최고로 열심히 산 사람은 한 판이 끝난 후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기고 온갖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 그 때 비로소 남들과는 다른 멋진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이 적어도 내가 어렸을 적 이해했던 삶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지구가 100명의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면, 과연 몇 명이나 이 '진지한 게임'에 참여하고 있을까?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 높은 위치와 큰 영향력을 좆는 이 치열한 경쟁에 말이다. 인류 전체 중 몇 퍼센트나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같은 제목의 책에 따르면,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다.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있고 집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는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8명안에 드는 사람이다. 100명 중 1명만이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읽지 못한다.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 - 그들은 다른 이들의 우월성을 위한 퇴비나 거름에 불과한 삶일까? 아니다. 나는 신이 공평하다고 믿는다. 물론 성공 할 수 있는 기회는 공평치 않게 주어진다. 허나 나는 누구나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갖는다는 믿음이 있다. 때문에 어디에서 태어났건 ‘잘 사는 것’에 대한 보편적이며 동시에 특별한 기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4 지혜의 말



“왜 사냐고 ? 삶이 주어졌으니 사는 것이다. 이유가 있겠는가 ? 주어진 초대니 마다할 리 없고, 주어진 프로그램은 선택하여 즐기면 되고, 없는 프로그램은 만들어 가며 즐기다보면 하루가 다 지나게 된다. 놀이에 빠진 아이가 자러가면 하루도 지는 것이다. 배우고 사랑하고 잘 놀면 잘 산 것이다.”
- 구본형, ‘사악한 우리의 또 다른 작전’ 댓글에서

“무엇이 삶의 올바른 방법인가? 삶은 놀이로서 살아야 한다. 어떤 게임을 하면서, 봉헌식을 행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살아야한다. 그러면 인간은 신들을 기쁘게 하고 적에게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으며 또 시합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점으로 미루어 인간들은 꼭두각시, 그러나 진실을 조금은 간직한, 이기 때문이다.”
- 플라톤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춤을 잘 추다보면 획일적 리듬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환하게 웃다보면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사회의 엄숙함에 더 크게 웃게 된다. 발이 정말로 가벼워지면 대지 위에 늪과 두터운 비애가 있다고 해도 쉽게 건너뛰고 달릴 것이며 마치 빙판위에서처럼 멋지게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 고병권,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지식에 금기는 없고, 무용한 지식이야말로 기막힌 유용성을 지닌다. 인문학은 아마 무용한 학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무용함의 맛이 깊어야 아주 맛있어 진다.”
- 구본형


#5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횡단보도를 무심코 빨리 걷다가 달리는 봉고차의 옆면에 살짝 부딪힌 것이다. 반바퀴 돌고 땅에 주저앉는 순간, 아픔도 느끼기 전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직전에 머릿속을 뒤덮고 있던 온갖 생각들은 무의미해지고, 지금까지 혹시 허무하게 살지는 않았는지 하는 후회감이 그 짧은 순간에 있었다. 나는 다치지 않았다. 다만 순간적인 되돌아봄에 조금 당황했다. 왜냐하면 눈이 실명할 것이라고 들은 그날도 이런 느낌이었으니까.

그 짧은 순간에 이 생각을 했다. 나는 인생을 잘 살고싶다. 잘 살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허나 그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 중요치 않음을 또한 알고 있다. 질문을 품고 살다보면 그 답속에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배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가 인생에 대해 배운 두 가지는 이렇다.

첫째,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고, 다른 이를 기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오늘을 기쁘게 살 수 있다면 삶 자체가 기쁨이 될 것이다. 매일 조금씩 배우고, 감탄하며, 사랑하면 하루를 잘 놀수 있다.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자기답게 살기 위해 산다.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고, 신이 가장 기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내가 신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임을 믿고, 어떤 쓰임을 받도록 태어났는지 질문하며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여 사는 것이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놀이이다.
인생을 남에 비추어 '막 산다' 하여 자책할 필요는 없다. '잘 산다' 자만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별 너머의 먼지가 되었을 때 절로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삶의 모든 순간에 얼마나 충만하게 살아있느냐이다. 자신을 재료로 하여 즐거운 하루를 요리해 낼 수 있다면, 인생의 맛이 아주 깊어지지 않겠는가.


IP *.232.147.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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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0.22 17:10:43 *.249.162.56
좋으네... 작은 교통 사고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나보다. 안 다쳐서 다행이다. 그리고 오늘, 부탁을 못들어줘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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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23 07:38:43 *.72.153.12
정말이지 안다쳐서 다행이다.

문을 조금만 열어 놓으면 그 틈으로 많은 바람이 들어 온다.
조금 열어둔 마음문으로 아주 많은 것들이 쏟아져 들어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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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0.23 10:37:32 *.75.15.205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는 것을 깊어가는 박가의 내면을 통해 느끼게 된다. 누이는 개인적으로 여태의 그대 칼럼 중 이번 글을 장원으로 주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진실함(창조적 방황? 혹은 모색)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기 이전의 몸살을 실컷 앓은 진한 감기 후의 식은 땀 같은...

그것만이 너를 지키고 일으켜 세울 강인한 네가 될 것이기에.

인생을 뭐라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아. 결국 자신과 같은 사람을 좀 더 이해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그만의 특별한 유일함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결국에는 다 죽는 것 아닐까? 으하하.)그 자체가 자존심이고 귀함이고 보람인 것이지. 더 나아진다는 것이 우위에서 유리한 조건을 달리며 점령하는 경쟁의 원칙과 승리의 기쁨에만 있다고 생각지 않거든. 내면의 희열이라는 것은 보다 정당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좀 더 넓고 깊은 성찰로서 그 만큼 이해하고 아량을 베푸는 일이라고 생각해. 성공지향적 삶이야 말로 일장춘몽이 아닐까?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야 말로 성공적인 삶이라고 하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나 역시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싶어. 이 또한 성공을 넘어서는 위대한 노력의 결실일지 모르겠군. (끌끌끌)

박가야, 그대만의 색깔을 찾으시라. 인생은 그 무엇, 그 누구의 객관적 시선만은 아닌 것 같다. 니체가 편견(성공이나 행복도)에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길로 세상을 조롱하듯한 시선을 보낸 것처럼.

아우야, 정말로 다치지 않았니? 놀라기만 해도 몸살이 날 수 있다(유도 발언이 되지 않기를) 처음에는 당황해서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그렇게 호소하더이다.

그리고 그대만을 위한 식사는 성찬이 되었으면 좋겠어. 남이 보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를 멋지게 대접하는 일은 중요한 것 같아.

반드시 좋은 상에 제대로 갖추어서 품위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세상이 더러 오해하거나 재미없어도 <자기애> 없이 <운명애>로 다가갈 수 없다고 누이는 생각해.

이 가을 많이 잘 좋은 음식 챙겨 먹으며 생의 성찰에 관한 깊은 모색 계속 이어가시길...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대중적인 유행가 가사도 있잖아.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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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
2007.10.24 09:19:51 *.99.242.60
천만다행이다.
요즘 막간을 이용하여 퇴계선생평전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 자명중에 이런말이 있더구나.
근심속에 낙이 있고 낙속에 근심있는 법
(憂中有樂, 樂中有憂)
평생을 살아가신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이남..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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