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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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날이 다가와 밴드 연습을 하느라 건대입구에 종종 간다.
이 합주실은 건대입구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걸어가는 그 길은 전국의 젊은이들이 다 모인 듯 복잡해서 어지럽다.
한 발자국 편안히 떼어놓기도 힘들다.
식당과 옷가게, 미용실, 중국 양꼬치 식당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점집, 찐 옥수수가게 등 소점포까지 길을 차지하고 있어 좁고 답답하다.
저 콧딱지만한 공간에서 문 꼭 닫고 남의 인생을 점쳐준다고 하는 사람은 소기업 점쟁이인가 작은 문이 닫혀 있다.
근자의 경제 불황이 점집에까지 미치는가보다.
요즘 젊은이 중에도 점치는 사람이 있나? 뭔가 수요가 있으니 여기에 자리잡은건지 사람이 많이 다니니 차린건지
자신에 대한 점은 잘못 친 것이 아닌가 싶다.(혹시 어두운 밤에 문을 여는지는 모르겠다)
합주실은 단독주택 지하실인데다가 방음을 하느라 문을 꼭 닫아놓기 때문에 공기가 안 좋다.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다 종종 화장실 냄새도 난다.
그래도 전에 다니던 합주실 보다 낫다.
거기에는 새까만 고양이가 네 마리나 있는데 어두운 지하실에서 소리 없이 스윽 나타나는 고양이들과 마주치면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또 그 녀석들의 털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듯 늘 찝찝했다.
게다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학교도 아니면서 등록금처럼 한달치를 선불 받고 사정이 있어 합주실 이용을 못해도 환급을 안했다.주인장에게 뭘 좀 물어 보면 입술로 픽 소리를 내면서 얼굴 표정까지 묘했다.
새로 찾아간 곳도 건대입구였다.
젊은 주인장이 맑게 생긴데다 이마와 머리의 구별이 안갈 정도로 머리털까지 없어서 짠했다.
그 당시 베이스기타가 없었을 때 같이 연주해주기도 했다.
고마워서 성경책에 살짝 만원을 더 보태 끼워 주었다.
받으면서 전에 교회에 다녔는데 요즘은 좀 쉬고 있다고 하며 좋아해서 나도 기뻤다.
그때그때 이용료를 주면 되어서 그것도 편하다.
합주실은 연결선으로 복잡하다. 엠프에 줄을 연결해야하고 뭘 올리고 내리고 키보드도 뭘 올리고 내리고 정신없다.
주인장은 기계를 다룰 줄 모르는 우리들에게 몇 번을 가르쳐주면서도 한 번도 짜증내거나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게 넘 미안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느 선을 어디에 꽂는지 각자가 신경쓴다.
드럼치는 나는 그저 앉아있기만 해도 되서 이럴 때도 무재주 상팔자란 생각을 한다.
이제는 그가 자리를 비워도 우리가 알아서 연습하고 사용료는 컴퓨터 자판 밑에 넣어놓는다.
가끔 주인장이 합주실 열쇠를 근처의 포장마차 집에 맡겨놓기도 하는데 그 주인아주머니와 남매사이인지 모자사이인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열쇠만 주고받기 미안해서 그 집에서 먹어 본다. 작은 식탁이 몇 개 놓여 있다.
식당의 차림표를 보니 대체로 술안주인 것 같다.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음식마련과 설거지, 주문까지 다 한다. 슈퍼우먼이다.
그런데도 메뉴가 다양하다. 동태찌개, 오징어볶음, 달걀부침, 부추전, 비빔국수, 잔치국수, 제육볶음 등이 있다.
냉장고도 작은 것 하나밖에 없는데 어디에 그 음식 재료를 보관 하는 걸까? 다 맛있다.
이것저것 다 먹었는데 2만 2천원이 나왔다. 아주머니 음식이 아주 맛있네요.
이 한 마디에 아주머니의 온 얼굴이 쫘악 펴지며 웃는다. 현찰로 주니 기어이 2천원을 안 받는다. 우리는 몇 번을 그곳에서 먹었다.
지금 합주실 주인이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좀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가고, 잘 생긴 얼굴인데 머리털이 나던지 가발을 쓰던지 했으면
좋겠다.
솜씨 좋은 음식점 아주머니는 일하는 사람을 하나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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