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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0일 13시 58분 등록
얼마전, 변화샘과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중략), 나는 결국 2008년 대학원 지원을 포기했다. 다시 제도권 속으로 들어가는것보다, '배낭하나 메고, 세계를 돌며 배움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꿈이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 꿈을 안고 다시, 꿈그려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에게 이미지가 선명하게 주어진다면, 떠날 준비로 충분하거니와, 어짜피 그 이미지는 창조해 내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써놓온 10대 풍광을 다시 해체하고 연결시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일단 생각이 났을 때,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이곳에 글을 올리려 한다. 나의 출발은 언제나 그렇듯이, 인도가 될 것이다.

2009년 10월 10일

어린 시절 거울을 통해 만난 나의 지하세계, 그 비탄의 노래가 솟구쳐 나오는 근원, 중심, 원천은 어디인가 알기 위해 나는 긴 시간 ‘춤’ 길을 산책했다. 그리고 그 길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작업을 위해 베낭을 메고 무작정 인도로 왔다.

이곳은 인도뿌나 ‘아쉬람’ 센타이다. 오늘도 인도의 빈틈없는 공기와 강렬한 햇빛, 매연의 향은 여전하다. 베낭 하나 달랑 메고 이곳에 온지도 벌써 3개월. 이렇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이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나의 마음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있다.

명상 센타로 들어서는데 여기가 인도인가 싶게 너무나 시원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특히 맨발에 느껴지는 바닥의 느낌이 아직 잠이 덜 깬 나의 몸을 깨워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센타에 도착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명상을 하는 건, 생애 처음 이다. 창가 쪽의 밝음이 나를 인도한다. 눈을 마주하는 사람들과 두 손 모아 인사를 하며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볼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 코로 흘러들어오는 인도 향 내음이 편안함을 전해준다. 깊은 들숨과 함께 입가에 웃음이 번져갔다. 그렇게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세포들이 깨어 웃기 시작한다. 오늘도 나를 모두 던져 self와 함께하기를, 있는 그대로를 지켜보기를, 스스로와 약속한다.

모든 고통과 우울을 씻어버리라고, 땀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몸을 비틀며 쏟아져 내렸다. 벌거벗은 땀이 춤을 추며 쏟아져 내려, 숨이 차 벌어진 두 입술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씁쓸하게 출발한 그 맛이 서서히 달콤한 사탕으로 변해간다. 나도 모르게 싱글거리며 다시 발을 쾅쾅 구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땀에 흠벅 젖은 머리카락이 쌀쌀하게 내 볼을 어루만지고, 츄리닝 바지 자락이 땀에 젖어 종아리에 휘감긴다. 오늘은 땀의 축제일이다. 땀은 아무리 낯선 장소라도 친숙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곳이 인도인지, 나만의 공간인지 그 경계가 허물어져 갔다.

내 몸에서 흘러나간 삶의 흔적과 텅 비어진 나를 느낀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내 몸이 일어나기를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다. 몸이 서서히 나를 이끌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정오의 따가운 햇살에 눈이 부셔 양손으로 눈을 살며시 덮었다. 아직도 촉촉하게 자리 잡은 땀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손을 타고 내려왔다. 서서히 손을 뗀다. 서서히 시야가 선명해 진다. 선명해 지는 시야로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긴 생머리에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선생님이다. 이게 꿈일까? 서로 눈이 휘 둥그래져 한참을 쳐다보았다. 나는 맨발로 뛰어나가 선생님의 품에 안겼다. 흠뻑 젖은 나의 몸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그녀. 그녀의 반가움의 뭄짓이 전해지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냥,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 내렸다.

선생님과 손을 잡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 선생님은 자신만의 멋진 공간에 초대해 주셨다. 명상 센타에서 멀지않은 거리에 자리 잡은 집은, 아담하면서도 신비한 매력이 물씬 풍겨져 나온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 잡은 식탁에 앉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인도 정통차를 준비하신다. 우리는 찐하게 건배를 한 후, 마음처럼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들이 켰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삶은 얼마나 더 풍성해 졌는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 했다. 오십을 바라보는 스승과 마흔을 바라보는 소라는, 우리의 인연에 감탄하며 한 번 더 잔을 부딪쳤다.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이미 명상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눈 위에 살포시 닿는 그의 입술이 첫눈이 눈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느낌이다. 이 순간 하루의 피로가 모두 사라진다. 그는 특별히 휴가를 내서 나와 함께 이곳에 왔다. 늘 내가 하는 일에 궁금해 했던 사람.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가 어느새 이렇게 큰 결심까지 해주었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한 후 그와 함께 산책을 하러 나섰다.

저녁 바람 냄새는 오전과는 다르다. 내일은 비가 올려나. 비올 바람의 촉촉함이 아직 마르지 않은 나의 머릿결에 스며든다. 산책로를 걸으며 오늘 명상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이번 경험이 마냥 신기하기만 한가보다. 그의 짓궂고 재미있는 질문에 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즐겨 찾는 조용한 야외 까폐에 도착했다. 나란히 누워 그의 팔 베게를 하고 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말소리가 희미해져 간다. 나의 앞머리를 쓸어내리는 그의 손이 나를 더욱 편안하게 한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지는, 살짝 잠이 드는 순간이다. 바람의 손길 한결 서늘해지고, 인도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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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10.29 10:15:55 *.92.16.25
내가 경험한 인도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군. 이 글을 읽으니 다시 가보고 싶네. 마치 아톰처럼 두 발을 박차고 날아 올라 아쉬람으로 간 것 같네.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게 느껴진다. 행복한 모습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푹 빠져드게 만드는 게 너의 강점인 듯싶다. 오랜만에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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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31 07:58:09 *.72.153.12
너로 인해 인도를 다시 본다.
15년지가 친구가 인도에 여행가자고 했을 때, 내가 거기가면 뭘 느끼고 뭘 얻어 돌아올 것인가 보이지 않고 막막해서 같이 가는 것을 거절했었는데... 지금은 한번 가보고 싶다. 꿈꾸게 만드는 능력이 있구나 소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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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10.31 09:43:25 *.231.50.64
언니야.. 인도에 꼭 가봐..
보이지 않고 막막한 여행이라..
더 기대되고 설레일거 같은데..
꿈을 그리는 언니에게 많은 이미지를 선물해줄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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