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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0일 09시 34분 등록

중학생 큰아이는 악기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냅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내 오케스트라 플루트 연주자로 꾸준히 활동했고 중학생이 되고나서 시립 청소년 교향악단 단원이 됐습니다. 중학교 밴드 동아리에서 일렉트로닉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방과 후 학교에서 밴드 수업을 듣고, 격주 금요일 5, 6교시 학교 음악실에서 동아리 멤버들과 연습하고, 매주 토요일 저녁 아파트 도서관에서 기타 선생님의 수업을 따로 듣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동네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플루트 연습을 합니다. 일주일에 3, 4일 악기를 연주하는 셈입니다. 교복을 입고 앞에는 가방 뒤에는 기타를 메고 등교하는 아이 뒷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양 손 엄지척이 나옵니다.


지난 달, 지원금 중단으로 시립 청소년 교향악단 활동이 중지됐습니다. 아이는 일요일 플루트 연습을 못하게 된 겁니다. 트럼펫이 소울 악기라며 플루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트럼펫 연주자로 전향하길 호시탐탐 노려온 아이에게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습 빈자리는 컸습니다. 아이는 곧 다른 교향악단에 입단하기를 원했고 저는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가까운 고양시나 서울에 청소년 교향악단이 여럿 있었지만 시간과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다녀오려면 왕복 세 시간은 걸렸고 사립 교향악단은 회비와 레슨비를 합해 한 달에 40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여태 학교 오케스트라와 시립 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레슨 비 포함 월 5만원 이상 낸 적이 없었고 연습실이 가까워서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거의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늘어난 시간과 비용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고심하여 아이의 소울 악기 트럼펫 개인 레슨을 받아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곧 좋은 트럼펫 선생님 찾기에 돌입했습니다. 수소문해서 선생님 한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트럼펫 레슨 40분 1회 5만원, 큰아이 한 명을 위해 서울에서 파주까지 선생님을 오시게 하기가 죄송스러워서 주위에 함께 배울 만한 친구를 찾아보았지만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무작정 빈 종이를 꺼내 아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수민아,


우리 트럼펫 선생님 모시기로 했잖아. 근데 엄마 맘이 편치 않네. 수민이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워.


엄마가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 미술학원 보내주세요.”
“안 돼.”
엄마가 고3이었을 때,
“엄마,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안 돼.”


외할머니께선 엄마가 진짜 원하는 걸 얘기할 때마다 안 된다고 하셨거든. 사실 엄마는 마흔이 되기 전까지 가끔 외할머니 원망을 했었어. 내가 원하는 걸 선택했다면 내 인생이 내 맘대로 돼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지 못했거든.


마흔이 넘으니까 엄마 생각이 바뀌더라. 지금 이대로 엄마가 좋아. 화가가 되지도 엄마가 바라던 작가가 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 인생 참 괜찮았거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수민이가 엄마를 원망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우리 상황에 맞지 않는 선택을 했구나. 당장 트럼펫을 배우지 못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정약용의 하피첩에서 ‘재산대신 물려준 두 글자* “근(勤)”과 “검(儉)”’을 수민이에게 선물할게. 이제야 외할머니 심정이, 정약용 선생님 맘이 이해되는구나.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수민이가 참 좋다. 파이팅!


엄마가


*[도재기의 천년향기] 정약용의 가족애 ‘하피첩’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271720005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IP *.202.114.135

프로필 이미지
2018.08.20 18:20:52 *.212.217.154

진심어린 사랑만이 삶을 바꿉니다.

어머니의 그 사랑이 아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8.08.21 15:21:56 *.202.114.135

트럼펫 레슨을 못 시켜줘서 속상했는데 정약용의 하피첩 보고 맘이 좋아졌습니다. 옛날옛적 엄마 생각도 나고요.^^

댓글 고맙습니다. 행복 가득한 오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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