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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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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1일 07시 16분 등록


어색한 잠자리. 잠을 청하지만 자꾸 몸만 뒤척이게 됩니다. 휴~ 억지로라도 자야 하는데.. 손이 머리로 갑니다. 까슬까슬한 감촉. 앞으로 27개월. 과연 시간이 갈까? 두려움보다 답답함이 더 큽니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있는 친구가 부러워집니다. 아, 드디어 오늘이네요, 군대 가는 날이.


연병장은 인파로 가득합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논산까지 동행해준 친구 기원이가 제 손을 끌고 한쪽으로 갑니다. 그리고 주섬주섬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제 입에 물립니다. 어차피 군대 가면 다 피게 될 텐데 자신에게 배우라네요. 쿨럭쿨럭. 담배 연기에 목이 뜨겁더니 어느덧 몽롱한 느낌이네요. 휴~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 마지막 포옹을 나눕니다. 고맙다, 친구야. 잘 다녀올게.

                                                             (1989. 2. 20일)


9시를 조금 넘어 아들의 방을 노크합니다. 10분만 더 자겠다네요. 간밤에 잠은 잘 잤을까? 잠시 후 씻으러 나오는 아들의 까까머리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휴. 안쓰럽네요. 그 마음이 어떨지 아니까 말이죠.


신병훈련소가 있는 양평에 도착했습니다. 포천에서 군 생활하고 있는 아들 친구가 휴가를 이용해 양평까지 찾아왔습니다. 군복 상의에 부착된 병장 계급장이 눈에 띕니다. 이번이 말년휴가라 귀대하면 전역까지 딱 10일 남는다네요. 한 사람은 끝내고, 또 한 사람은 이제 막 시작해야만 하는. 제가 다 부러운데 아들은 어떨까...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싶다 하네요. 유명한 옥천냉면을 먹으러 갑니다. 냉면을 비운 후 아들은 준비해 간 소화제를 먹습니다. 아무래도 체할까 걱정이 되나 봅니다. 시간이 남아 근처 커피숍으로 옮겨 팥빙수를 시켜 줍니다. 아들 친구가 그러네요. 이게 마지막 사제 음식이라고요. 뭐라 반박 거리를 못 찾은 아들이 그저 씩 웃고 맙니다. 굳이 환기시켜줄 것까진 없었을 텐데.

이제 가야 합니다. 큰길에서 좁은 길로 한참을 들어가니 드디어 부대 팻말이 보입니다. 주차장에 차들이 엄청 많네요. 서둘러 강당으로 들어가니 이제 막 입소식이 시작되려 합니다. 약 300명 정도의 까까머리 아이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습니다. 아들도 그 뒤에 섭니다. 입소식은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마이크 소리까지 울리다 보니 제대로 알아듣기 힘드네요. 그 와중에도 들렸던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5주간의 훈련’, ‘수료식’ 정도였네요.

아들의 어색한 거수경례가 몇 번 이어지고 드디어 입소식이 끝납니다. 아내는 연신 아들의 사진을 찍습니다. 멋쩍은 웃음을 보여주네요. 얼마나 떨릴까. 마지막으로 아들과 포옹을 나눕니다. 잘 다녀와라. 몸 다치지 말고. 엄마와도 포옹을 나누며 한마디 하네요. 

울지 마, 엄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강당을 나와 건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이별입니다. 멀어져 가는 아들의 뒤통수를 쫓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힘들겠지만 부디 잘 적응하기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의 방에 가 봅니다. 텅 빈 방엔 공허함만 남아 있네요. 휴, 그렇네요.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것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것. 직접 안아볼 수 있다는 것과 머리로 상상만 해야 한다는 것. 아들이 있는 부모라면 이 또한 통과의례일 텐데, 직접 겪어보니 쉽지만은 않네요. 저를 군대에 보내며 제 부모님 또한 이런 마음이었겠지요. 아이를 물가에 놓아둔 그런 심정... 소심했던 저도 2년이 넘는 군생활을 잘 견뎌냈으니 아들 또한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또한 그 시간들이 아들을 조금 더 성장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차칸양 올림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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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경영연구소 3기 박승오 연구원이 진행하는 <퇴근길 인문학 교실>이 8/23(목)부터 개강합니다. 직장인을 위한 알기 쉽고 깊이 있는 인문학 강좌입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나를 어루만지다>라는 주제로 심리학 기반의 과목들로 구성하였다 하네요.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실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IP *.117.5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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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13:01:41 *.124.22.184

글을 보며 남일 같지 않아 울컥했어요.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 졸업이니 머지 않았겠죠?

본인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빨리 갔다오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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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5 07:43:58 *.117.54.213

이번에 아들과 함께 입대한 아이들의 나이를 보니 다 대개 21살 혹은 22살이더라고.

아무래도 빨리 다녀오는게 낫긴 할 것 같아.

부모 입장에서는 안 보는게 좋긴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안타깝게도 느껴지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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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5 13:27:31 *.210.112.106

저도 메일로 받은 글을 보다 울컥했어요.

얼마전 예능프로그램에서 군대가는 아들을 보며 울컥거리는 부모님들을 모습이 생각이 나기도 했구요. 

가슴을 울리는 글-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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