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7년 10월 29일 11시 36분 등록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세계를 향하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하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 민족주의자들의 애국 애족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을 종착역으로 삼지만, 나의 애국 애족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사랑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나의 나라 나의 민족을 아끼는 그 사랑으로 온 세계를 가슴에 품고 싶다. 진리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을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느끼고 체험한 만큼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사랑하는 것은 범상한 인간이 걸을 수 없는 ‘신의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허무맹랑한 낙관주의자의 거짓 희망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비전이다. 나의 몸을 아끼는 것보다 이웃의 몸 아끼기를 더욱 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있기를 생각하는 위선이나 교만이 되곤 한다. 비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지만 ‘인정과 실정에 반하는 지나친 고상함’은 사람의 길이 아니다. 나의 몸이 소중함을 헤아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다. 나는 스스로를 지극히 사람다운 방식으로 ‘성화’시켜 나가고 싶다. 모든 사랑의 기초는 나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웃으로 확장하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안녕을 만들어낸다. 가족의 굶주림을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이웃의 빈곤을 헤아릴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최성수 선생님은 『시의 자유정신 김수영 VS 미래 역사의 꿈 신동엽』에서 신동엽을 ‘4․19의 시인’이라 불렀다.
“신동엽에게 4․19혁명은 희망이고 꿈의 실현이었다. 4월 혁명에서 그는 비로소 민중의 꿈과 염원을 읽었고,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계시 받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신동엽을 4․19의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p.106)

이승만 정권이 국민을 속인 부정선거로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1960년 봄에 일어난 일이다. 3월 15일날 경남 마산에서 부정선거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때 경찰이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총을 쏘았다. 8명이 죽었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4월 11일에는 마산 부두에서 김주열이라는 열일곱 살 난 고등학생이 눈에 최루탄 파편이 박힌 시체로 발견되었다. 최루탄에 맞아 죽은 시체를 경찰이 몰래 바다에 버린 것이다. 마산에서 시작한 시위는 전국으로 퍼졌다. (1960년) 4월 19일에는 마침내 10만 명이 넘는 서울 시민이 시청 앞과 서울역 광장에 모여 거리를 행진하며 자유를 외쳤다. 이것이 ‘4․19 혁명’이다.

4․19의 시인, 신동엽은 1960년 7월, 잠시 일하고 있던 교육평론사에서 『학생혁명시집』을 펴낸다. 김응교 교수는 이 시집의 중요성을 이렇게 평가했다.
“4․19 혁명 이후 여러 잡지와 책이 혁명을 흥분된 어조로만 노래했으나, 신동엽이 손수 제작한 이 시집은 시다운 형상미와 의식이 높은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어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서적이다.”
신동엽은 시인이다. 글쓰기는 지식인들의 사회 참여다. 그것도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의 글쓰기는 아주 적극적인 참여다. 위험을 무릎 쓴 참여다. 실제로 「껍데기는 가라」 3연의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는 통일의 방법에 대한 신동엽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죽산 조봉암이 단지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해서 사형을 당한 것이 불과 이 시가 발표되기 7, 8년 전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담론을 시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김응교)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의 과거에서 치욕적인 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사랑하는 이들은 나라의 비극이 일어났던 날과 수치를 당한 날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그와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나는 현대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애통의 날을 3가지로 꼽는다.
첫째,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일)이다. 이날부터 일제는 1945년 8월 15일까지 약 35년간 우리를 강점(强占)했다.(36년이 아니다. 언론에서도 일제의 압제 치하를 36년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34년 11개월 14일이다. 나는 일제의 압제를 꼭 35년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진정 부끄러운 일을 확대하여 말하고 싶지는 않은 것은 당연지사다.

둘째,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민주화항쟁이다. 나는 그날 광주 시민의 슬픔에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 흘리는 일시적인 감상이 아니라, 대학생 때부터 매년 5월 18일이면 홀로 자료를 찾아 읽으며 홀로 분을 삭였다. 비록 1980년대의 대학생들처럼 학생운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나는 정의로운 분노를 품었다. 2007년 5월 18일날, 20대 3명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냐?”고 물었다. 한 명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오래 전에 ‘4천만 총기억상실증의 시대’가 도래하려 한다는 리영희 교수님의 말이 떠올라 씁쓸했다.
하워드 진의 책을 읽으며, 이제는 그 참상을 저지른 군인들의 만행도 어렴풋이 이해한다. 생각할수록 슬픈 날이다.

셋째, 1997년 11월 21일, IMF 구제금융을 수용한 날이다.
정부는 대외채무를 갚지 못해 발생할 국가부도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IMF(국제통화기금)의 강력한 경제개혁 요구들을 받아들이는 조건하에서 IMF 구제금융을 수용했다. 2000년 12월 4일에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긴 했지만 이후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다. 전자는 더욱 살려가고 후자는 줄여가야 할 것이고, 나는 여기에 대한 관심이 많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이 빠졌다. 내가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고작해야 글을 통하여 접했을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글을 통해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건으로 포함시킬 수도 있었지만 뺐다. 나는 한국 현대사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며 관심을 품게 되는 일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위의 세 가지 국치를 기억할 것이다. 그 역사 속에서 미래로의 길을 발견하고 싶다.

나는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인데, 나의 글이 편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개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쓸 것이다. 과거를 읽을 것이다. 과거의 감상과 향수에 빠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밝은 내일을 위한 훌륭한 조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역사를 읽고 쓴 나의 글은 ‘과거의 읽을거리’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잠언’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응교 교수는 신동엽의 시를 “내일을 위해 그의 시를 읽을 때, 그의 정신은 우리 가슴에 향그러운 흙가슴을 펼쳐 놓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동엽의 시처럼 나의 글도 내일을 위해 읽혀졌으면 좋겠다.

역사 속에서 내일을 향한 비전을 발견한 장면이 하나 있다. 그 날은 1987년 6월 10일이다. 나는 첫 책의 프롤로그에 이 장면에 대한 글을 썼다. 역사책도 아닌 독서에 관한 책인데 나도 모르게 이 장면을 썼다. 썼다는 사실을 원고를 쓰고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다시 한 번 그 날에 대한 감격이 컸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그 날이 감격적인 이유는 시민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4․19 혁명은 이듬해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짓밟히고 말았지만, 6월 항쟁은 이 땅에 민주화를 선물했다.

우리가 근대화를 통해 이뤄낸 결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고, 계급 사회에서 평등을 이뤄냈다. 눈부신 산업화를 이뤄내는 데에는 세계가 놀랐다. 이 모든 것은 기성세대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준 선물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해야 할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일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더 나아가 참여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평등의 개념을 계급을 넘어서 보다 폭넓게 확대해야 할 것이다. 학벌 등 전근대적인 연고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점점 무관심해져가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어버리고, 개인의 경쟁력 강화만이 삶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바로 여기에 내가 할 일들이 있다. 역사 속에서 밝은 내일을 위한 비전과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아서 공유하는 것,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일깨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를 힘차게 희망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님을, 다 함께 피어야 봄이 온다는 사실을 부지런히 전하며 살아가야겠다.
IP *.135.205.63

프로필 이미지
향인
2007.10.30 09:45:28 *.48.42.248
좀 더 희석을 알고 싶어지는 글. 희석의 내면을 기웃거리게 만드는 글. 그대가 말씀하는 민족 중에 이 철없는 누나도 포함됨을 잊지 마시고 가끔 한번씩 눈길도 주시길..
그나저나 희석씨에게 참 배울 점이 많다. 심지가 똑바로 서 있구나.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92 [30] 무심한 일상은 돌고 돌고.... [3] 교정 한정화 2007.10.29 2522
4791 (30)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4] 時田 김도윤 2007.10.29 2055
4790 [칼럼027]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7] 香山 신종윤 2007.10.29 2114
4789 -->[re][30-2]江을 흐르는 질서秩序/ 어린 꿈 [8] 써니 2007.10.29 2124
» 신동엽 시인처럼 역사를 읽고 미래를 꿈꾸다 [1] 현운 이희석 2007.10.29 2516
4787 다시 꿈을 그려쓰다 [3] 素賢소현 2007.10.30 2665
4786 [칼럼 30] 상처받은 치유자 file [4] 海瀞 오윤 2007.10.30 2977
4785 -->[re]호정의 아름다운 詩 [2] 써니 2007.10.30 2552
4784 (30) 너의 천복대로 살아다오. [6] 香仁 이은남 2007.11.03 2488
4783 다시 꿈을 그려쓰다 [2] [2] 素賢소현 2007.11.05 2233
4782 이유없는 웃음에 부치는 글 [5] 우제 2007.11.05 2804
4781 [칼럼028] 락카펠라, 아카펠라의 새로운 기준 [1] 香山 신종윤 2007.11.05 2530
4780 (31) 그대는 아직 그대의 길을 찾지 못했다. [6] 박승오 2007.11.05 2939
4779 [칼럼 31] 고통 없이 변화하는 한가지 방법 [1] 여해 송창용 2007.11.06 2380
4778 [31] 신화를 꿈꾸다 [2] 써니 2007.11.06 2257
4777 [칼럼 31] 글쓰기...타인에 대한 애정 海瀞 오윤 2007.11.06 2687
4776 [글쓰기칼럼]장면으로 뛰어들다. 호정 2007.11.06 2073
4775 (31) 태초의 눈 [3] 時田 김도윤 2007.11.07 3042
4774 [칼럼31]경계(境界)에서의 자유 素田최영훈 2007.11.08 2561
4773 [31]100번째 편지 한정화 2007.11.08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