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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0일 16시 10분 등록

상처 받은 치유자

리더와 리더십.
서점에 가면 위 주제로 ‘썰’을 풀어 놓은 책을 찾기란 아마 몽골 가서 몽골 사람 찾기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따뜻한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 감성의 리더십, 핑크 리더십, 또 뭐가 있을까. 이렇게 저자의 생각과 경험에 따른 리더십의 수많은 정의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나도 내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이 대열에 껴보자면, 나는 리더란 ‘상처 받은 치유자’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상사 또는 멘토에 대한 목마름이 꽤나 간절했던 나이기에 ‘리더’란 주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내 나름의 기준과 생각들이 정리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수긍할 법한 리더의 자질 중 공통분모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감동을 주는’ 리더가 아닐까 한다. 이것은 제임스 오툴이 그의 책 “Leading Change”의 서두에서 강조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과연 이 ‘감동’이란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일까? 감동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러면서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생각의 산봉우리들을 타고 가다 보면, 감동이란 곧 공감할 수 있을 때 만들어지는 보이지 않는 눈물임을 깨닫게 된다. 리더가 어떤 사람의 감정과 상황들, 그리고 고민에 공감해줄 수 있을 때 비로서 감동이라는 녀석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공감능력은 또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비슷한 경험들’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겪지 않는 특이한 경험일 수도 있고, 나이 차이에 따른 경험일 수도 있겠고, 또한 간접적인 경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안 해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빨리, 그리고 훨씬 더 정확하게 공감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듯이.

또다시 생각에 잠겨본다. 경험이라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자의에 의해, 또는 타의에 의해 형성되는 좋고 나쁜 경험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선택들이 바로 우리의 경험이 되고, 경험을 바탕으로 생성된 공감능력이 되고, 그 능력이 언젠가 누구에겐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경험과 선택이라는 산봉우리에 머물다 갑자기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The Road Not Taken" 이 떠올랐다. (번역본보다 원본이 더 와 닿기에 그냥 올림을 양해바랍니다 ^^)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고등학교 때, 이 시에 관한 에세이를 썼던 기억이 있다. 이사하면서 그 페이퍼를 어디다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읊는 시이고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외우고 있을 정도로 감동을 자아내는 시이다. 그래, 감동……. 이 시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시의 구절마다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 가본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외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족보 없는 길이다. 그렇지만, 그 길을 가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그 길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은 그 사람만의 경험이 되고, 훗날 그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 가이드와 같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내가 지나간 뒤에 길이 생기는 법 이랬다.

여기서 내가 굳이 ‘상처’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즐겁고 좋은 경험보다는 나쁘고 아픈 경험들에 공감할 수 있을 때 느끼는 감동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드는 안도감과 편안함.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눈물이 되어 가슴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내 정의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리더인 사람은 없다. 때로는 이 사람이 리더가 되어주고, 때로는 저 사람이 리더가 되어주고,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리더가 되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내가 따르는 사람이 되는 등.

요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상담 요청을 많이 해 온다.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위해 고민하거나 이직하고 싶은 후배들은 두 번씩이나 이직해 본 나에게 뭔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보다. 그러한 경험들이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을지언정 후배들에게는 삶의 작은 나침반이 되어주나 보다. 나를 재미있게 해주는 연애상담을 해줄 때도 있고,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가끔씩 내가 해주는 이야기들에 감동 받는 이들을 볼 때면,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저녁 때 상담해 주러 가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조심스러워진다. 그 후배에게 있어서, 오늘은 내가 리더가 되어줘야 하는 날이다.
IP *.6.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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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0.30 14:24:11 *.70.72.121
그 후배에게 다음에는 그가 리더가 되어 달라고 하려므나. 뭐 맛나는 저녁을 함께 먹자든지, 괜찮은 연극 공연을 골라서 같이 간다던지. 역할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리더가 바뀔 수 있는 거지.

나는 그대의 열린 사고가 마음에 드네. "우리 모두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립써비스 같지 않아.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리더인 사람은 없다"는 다소 결의적인 모습까지도. 그래, 누구에게나 실수의 여지도, 이성보다 감정적인 부분이 때로 더 강하게 표출 될 때도 있으니까.

요즘 치유라는 말을 많이 들 쓰는데, 치료와 치유의 차이가 뭘까? 치료가 과정과 상태라면 쾌유와 같이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는 의미?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병을 혹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거나 하는 상태일지 모르겠다. 신 앞에 항상 죄인인 우리처럼, 그리고 그것을 다소 나마 줄여가는 것, 좀 더 가까이 낮아지는 것이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 말이지. 그래서 우리 모두는 윤이의 말처럼 '상처'에 더 공감하고 안도감, 깨달음, 편안함, 감동, 또 위로받음, 새로운 생명력과 의지, 더 나은 지혜들을 찾고 갈구하며 갖게 되는 것이겠지.

깊어가는 가을 만큼이나 주저 없이 성숙해 지고, 좋은 때 더 나은 결실 계속해서 잘 이루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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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10.30 15:28:05 *.6.5.207
언니야말로 "상처받은 치유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리더" 라우 ^^... 그리고 나 립써비스 안해요, 할 줄도 모르공 ㅎㅎ
(사실 사회생활 하면서 할 줄 알아야 하는것 같지만서도 ㅋㅋㅋ)

치료와 치유의 차이라... 글쎄, 얼핏 드는 생각으로 치료는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과정과 상태라면, 치유는 보이지 않는 가슴속
상처의 물리적 완쾌과정과 상태 아닐까? ^^;;;;;

근데 정말, 삶이 내 오른쪽에서 걷고 있다면 죽음은 내 왼쪽에서
걷고 있듯이... 선/기쁨/즐거움/행복 등등이 내 오른쪽에서 걷고
악/슬픔/힘겨움/고통 등은 내 왼쪽에서 걷고 있는듯 싶으오....
...그래서 삶이 더 재미있는거고 힛 ^^

그나저나 나 언니한테 이번 달 내 소설 부탁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왔으려나 아직 옹박오빠가 글을 안 올리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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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10.30 16:11:46 *.6.5.207
늦게 올린 점 죄송스러워서 덤으로 사진 하나 첨부합니다 ^^;
몽골 가서 찍었던 사진인데 Robert Frost 의 <The Road Not Taken>
에 잘 어울리는 사진이 아닐까 싶어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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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2007.10.31 14:19:19 *.75.15.205
정말? ㅋㅋㅋ 나는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편히 놀려고 했는데 말이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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