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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5일 03시 12분 등록
2010년 6월의 어느날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짙은 매연을 뿜어내는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살짝 놀랜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잠시 서 있는다. 잠시 후 또 한 대의 릭샤가 짙은 매연을 내 앞에 뿜고 지나갔다. 짙은 향이 엄마의 방구 소리와 향을 떠오르게 한다.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리운 엄마의 향기만큼 이제는 인도의 매연을 하루라도 맡지 않으면 허전한 하루가 시작 된다.

이곳은 인도 북부의 어느 작은 마을이다. 아쉬람 센타에서 만난 중년의 인도여성의 눈빛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아쉬람 센타 안의 조용한 연못 앞이었다. 'Born Again' 명상 후, 연못으로 비추이는 자신을 응시하며, 침묵 속에서 다시 태어난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나에게 과감하게 말을 걸어왔다. 'Hellow'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나는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내가 앨리스워커의 눈동자에 모든 영혼을 빼앗겼듯이, 그녀 또한 눈동자로 나를 흡수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참 아름다웠다. 무한한 것을 찾는 사람의 눈빛, 무한한 푸르른 꿈에 대한 갈망. 그녀의 눈은 ‘푸른 꽃’이었다. 그녀는 지역에서 여성 운동에 참여하며 작은 센타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휴가를 이용하여 뿌나에 개인 작업을 하러 와 있었다.

그녀의 푸른 꽃에 이끌려 ‘여성치유센타’에 온지도 벌써 6개월이 되어간다. 나의 검은 피부는 더욱 짙은 갈색을 띠고 있고, 눈매는 더욱 자비로워 졌다. 틈틈이 배워둔 인도어도 자랑할 만큼은 아니지만, 능숙하게 인도 여성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인도의 지역 여성들이 마음속에 빈 틈 없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차분하면서도 씩씩한 나의 발걸음을 옮겨 센타로 향했다. 센타에 들어서니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포옹과 양 볼의 키스로 반겨준다. 허름하지만 아담하고 따뜻한 강당에서 센타 직원들의 준비가 한창이다. 오늘은 Me Story 글쓰기 모임 여성들이 작은 문집을 내고 파티를 여는 날이다. 한 학기 동안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쓰면서, 자신을 있는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워감과 동시에, 언어에 대한 감각과 풍부한 언어력을 갖기위해 연습을 했다.

참여 여성들이 하나 둘 센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축하하기 위해서가장 멋진 의상과 화장을 하고 오기로 약속했다. 일상에 쫓겨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그녀들이 아름다운 화려한 꽃으로 변신한 모습에 내 얼굴에 웃음이 떠날질 않았다. 10명이 모두 모여 명상을 시작했다. 인도에서는 모든 시작을 명상으로 한다. 음식을 먹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과 같다. 나다브라마 호흡을 통해 밖에 두고 온 많은 고민들을 내려놓고, 지금 이순 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명상으로 시작된 파티는 자신의 글이 책으로 제본되어 그녀들의 손에 쥐어질 때 절정에 달했다.

이곳에서 나는 인도 지역주민여성들을 위하여 춤과 명상, 꿈 찾기 프로그램, 성 교육 등을 함께 나누고 있다. 여성의 인권과 여성의 꿈, 그리고 자신이 그 이상의 존재임을 깨달아가는 과정들이, 한국인인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고 닮아 있다. 그들은 타지의 낯선 여인들이 아니라, 나의 엄마, 언니, 동생, 그리고 친구들의 영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인도의 여성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해가는 과정들 속에서 내 속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여성들이 태어나고 자라났다.

성공적인 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마무리 하며 노트북에 그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파티 때 자신의 자작시를 한편 씩 낭독하는 모습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웃음을 짓는다. “쿵쿵쿵쿵” 그때,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 젖힌 공간으로 마을의 한 여성이 숨을 헐떡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모모, 가슴 떨리는 일을 발견했어요.”

나는 어리둥절하여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나의 시야로 그녀의 선분홍색으로 상기된 두 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무작정 껴안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포옹을 하고 한참을 길 위에 서서 리듬을 탔다. 나는 그녀를 나의 집으로 초대하여 간단히 축하주를 하자고 제안했다. 흥쾌히 허락한 그녀와 함께 하늘이 한눈에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주고 받으며 건배를 했다. 와인잔을 부딪히는 맑고 청아한 소리가, 홍대에서 혼자 파티를 하던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 그때도 이렇게 잔의 소리가 아름다웠지. 하지만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구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때도 이렇게 하늘이 속절없이 아름다웠어.’ 우리는 그녀의 가슴 떨리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 나누었다. 새벽의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고, 무채색과 채색이 공존하는 새벽, 모든 것이 섬세하게 잠에서 깨어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나는 그녀에게 ‘새벽빛’이라는 닉네임을 지어준다.

IP *.7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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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1.05 09:41:56 *.132.71.7
생생해서 옆에서 보는 것 같다.
지금 이순간에 꿈이 살아서 가슴에 녹아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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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11.05 14:01:36 *.231.50.64
그래? 언니야? 이제 나 떠나도 되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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