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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5일 10시 52분 등록
'종윤아 가능 이따가 보자'

간단하게 찍힌 써니 누나의 문자 메시지에 마음이 놓였다. 공연에 대한 문화적 목마름과, 집과 회사를 오가며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필요했던 건 연구원 생활에 남편을 빼앗긴 채 매일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 아내를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다행히 나에게 남편 노릇 한 번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었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기다리던 아내와 함께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리나케 공연장으로 내달렸다. 물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니, 김밥 한 줄씩을 챙겨서, 가는 길에 배를 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허기가 져서야 무슨 공연인들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 좋은 공연에 단출한 먹거리가 어울리기도 하고 수줍기도 하다.

부지런히 도착하고 보니 함께 공연을 즐기기로 한 무리의 일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날씨는 어느새 가을이 아니라 겨울이 우리 곁에 와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렇게 오돌오돌 떨고 있는 사이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나타냈다. 공연 시작 시간이 코 앞이 되어서야 도착한 마지막 일행에게 숨돌릴 시간도 주지 못하고 우리는 급하게 공연장 안으로 스며들었다.

'락카펠라(Rockapella)'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내겐 '락'과 '아카펠라'를 연결해서 만들었다는 그들의 팀 이름조차 생소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음악을 자주 듣지 못해서 그렇다고 구차한 변명을 찾고 있던 차에, 락카펠라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만 모르는 건 아니구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입장 시작이 늦었던 탓인지 처음엔 빈자리가 꽤나 보이더니 사람들이 꾸준히 밀려 들어와 결국 그 넓은 콘서트홀이 제법 가득 찼다. 조그만 표를 들고 자기 자리를 찾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감동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게스트로 초청된 아카펠라 그룹 '다이아'의 귀여운(?) 오프닝에 이어 무대에 오른 다섯 남자의 공연은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채우고 강렬한 비트로 가슴을 때리기 시작했다. 무반주의 아카펠라가 갖는 특성상 소극장공연이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던 내 선입견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이게 아카펠라라고?"

나는 끊임없이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뻔히 보면서도 그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놀라운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이 테너인 스캇(Scott Leonard)은 불꽃 튀는 강렬함과 가슴을 녹일 듯한 부드러움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테너를 맡은 케빈(Kevin Wright)의 매력은 "California Sad-Eyed Girl"을 부르면서 한껏 빛났다. 세계 최고의 미성이라는 스캇의 소개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케빈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감동적인 목소리의 테너 존(John K. Brown)과 인간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울림을 불러일으키는 조지(George Baldi)의 베이스가 더해지면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빈틈없이 이어졌고 무대는 살아 움직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퍼커션을 담당한 제프(Jeff Thatcher)의 보컬 드럼과 비트 박스는 신기에 가까웠다. 두 개의 마이크를 달고 무대에 나타난 제프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완벽한 드럼 소리와 리듬감 넘치는 퍼커션은 마치 아카펠라가 아니라 락밴드의 공연장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으로 관객들을 몰아넣었다. 특히 공연 중간에 삽입된 제프의 보컬 퍼커션 솔로 무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눈을 살짝 감으니 터질 듯이 드럼을 연주하는 락밴드의 드러머가 그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믿을 수 없는 제프의 보컬 드럼과 실제 악기의 저음을 능가하는 조지의 베이스가 어울리면서 이들의 공연은 자유로워졌다. 기존의 아카펠라 팀들이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내야 하는 여리고 우스꽝스러운 소리에서 '락카펠라'는 해방되었다. 그들이 만드는 음악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것이 되었고, 다른 것은 다시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아카펠라는 변화의 바람이 되었다. 베이스 라인과 보컬 퍼커션의 어울림 위에 두 명의 백 코러스, 그 반주 위에 노래하는 하이 테너 솔로로 구성 된 '락카펠라 스타일'은 컨템포러리 아카펠라의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그들에게 선물했다.

비트박스와 아카펠라의 조합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것을 연결하는 그 자리에서 변화는 피어났고 창조가 무르익었다. 창조와 변화의 단서는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 눈길이 머무는 바로 그곳에 있다.

제법 거창하게 공연과 공연자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들이 선물한 느낌을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 특히 모든 공연이 끝난 후, 고객들의 '앵콜' 연호에 다시 무대에 나타난 그들이 관객석으로 걸어 내려와 마이크도 없이 불렀던 'Wonderful world'의 벅찬 감동은 내가 가진 언어의 저 너머에 있다.

나는 공연을 깊이 즐겼다. 하지만 때때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듬뿍 노래를 즐기고 있는 아내를 보며 더 행복해졌다. 누군가가 또 팔불출이라며 놀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달리다가 쉬고 다시 달리기를 거듭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오늘 하루는 행복한 쉼이었나 보다. 이제 다시 달릴 준비가 되었으니 다시 쉼에 닿을 때까지 열심을 내야겠다. 멋진 하루를 만들어 주신 이한숙님께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IP *.227.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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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1.05 13:10:27 *.75.15.205
아우님, 이 글 이한숙님의 모닝페이지나 우리 커뮤니티란에 락카펠라 공연에 날개 글로 달아 주었으면 좋겠어. 글 좋네. 기뻐할 텐데...

그대 팔불출이란 것은 증명해 줄께. 그리고 우리는 그의 팔불출 벗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 줘. 주원아빠야, 우리 기분 좋은데 고기 궈 먹자. 팔불출 부부 솜씨 자랑도 해주세요.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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