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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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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5일 12시 51분 등록

#1 우리가 겨누고 있는 과녁은




2004년 8월 22일, 아네테 마르코폴로 사격장.
아테네 올림픽의 사격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전, 총 10발의 탄환 중 이제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오늘 금메달의 유력한 후보는 미국의 매튜 에먼스. 그는 9발째까지 2위 중국의 지아장보와의 점수차를 무려 3.0점 차이로 앞서며 저 멀리 한 걸음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발. 모든 관중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 끝에 집중되었다.

‘탕!’
총알은 보기좋게 과녁의 중간을 뚫었다. 10점! 순간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승리의 팔을 관중을 향해 높이 들어올려 인사했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전광판의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심판의 깃발이 올라갔고, 전광판에는 0점이 표시되었다. 에먼스는 심판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물었다. 심판은 “당신의 총알은 옆에 서있는 크리스티안 플라너의 표적을 통과했다”고 대답했다. 그가 겨누었던 것은 옆 동료의 과녁이었다. 결국, 1등이었던 그의 성적은 꼴지인 8위로 바뀌었다.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가 겨누고 있는 과녁은 어디인가?
그대 고유의 것인가? 혹은, 주변 사람의 것인가?


#2 “나라고 왜 못하겠는가?”




형은 천재였다. 전교 1등을 하면 학비를 면제해주는 중학교에서 3년 내내 돈 한푼 내지 않고 학교를 다닐 정도였으니. 나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지만 대신 운동을 잘했다. 그러나 부모님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이 늘 형 이야기를 하는 덕에 나는 집안에서 늘 주변인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어릴 때라도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모를 수는 없었다.

나는 형에게 어울릴만한 동생이 되고 싶었다. 형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 아들이라고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라고 왜 그처럼 못되겠는가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것은 마하트마 간디가 젊음 시절 메타브라는 친구에게 느낀 이 감정과 흡사했다. 몸이 건장하고 튼튼하여 빨리 달리기와 높이뛰기, 넓이뛰기의 선수인 그 친구와의 교제 초기를 간디는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이란 제게 없는 재주를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에는 언제나 현혹되는 법이라, 나는 이 친구의 재주에 현혹되었다. 그렇게 되니, 그 다음 나도 그와 같이 되자는 욕망이 강하게 일어났다. 나는 뛸 줄도 달릴 줄도 몰랐다. 그러나 나라고 그와 같이 못한다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친구와의 만남은 간디의 일생에서 큰 비극이었다. 그는 친구를 통해 육식과 음주, 흡연을 시작하고, 아내를 의심하고, 사창가를 드나들게 된다.)

형과 닮으려고 하면서부터 나는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나는 형의 과녁에 겨누어 10점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라고 왜 못하겠는가?’ 라는 질문은 힘을 불끈 솟게 하는 말이었지만, 아주 위험한 것이었다. 결국 문제가 생겼다.


#3 영웅은 모험을 떠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한다. 이것이 정말 나의 과녁인가? 이것은 나를 묘하게 흥분시켜 절로 움직이게 하는가? 나는 그 일의 골수와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천복을 추구하고 있는가? 정말로 나는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혜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길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숲 속으로 들어간다.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길이다. 그대는 아직 그대의 길을 찾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길을 따라간다면 그대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리라.’

수많은 발자국이 나있는 다져진 길을 가기는 쉽다. 하지만 그 길은 십중팔구 황무지에 이르는 길이다. 일반적인 통념에 따라 사는 것은 쉽다. 친구나 전문가 또는 부모에 의해 제시된 합리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사는 것 또한 쉽다. 가지 않은 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야말로 영웅이라 불릴만하다.

영웅은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모험은 항상 칠흑 같은 숲 속에 존재한다. 모험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은 평생을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신화를 연구하는 데 바쳤다. 그는 신화란 한 개인이 신에게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각 문화의 청사진이라 보았다. 각 문화권의 신화를 관찰함으로써 그는 영웅들이 갖는 공통적 특징을 묶어낼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가 발견한 신화에 나타나는 영웅들은 대개 ‘출발-입문-귀환’이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출발 : 영웅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꾐에 빠지거나, 납치당하거나 또는 자진해서 모험의 문턱에 이른다. 이곳에서 영웅은 소명을 거부하여 죽음을 맞거나, 그것을 받아들여, 낯설면서도 친숙한 힘에 이끌려 암흑을 여행하게 된다.

입문 : 영웅은 경우에 따라 위협을 받기도 하고,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신화적인 영역의 바닥에 다다르면 영웅은 절대한 시험을 당하고, 그 시험을 이긴 보상을 받는다. 그것은 신성한 결혼, 아버지와의 화해, 또는 그 자신의 신격화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깨달음이다.

귀환 : 영웅은 돌아오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때로 영웅은 부정적인 세력의 추격을 받고, 귀환 관문을 혼자 통과한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전리품(깨달음)은 세상을 구원한다. 그는 이제 한 세계의 선으로써 다른 세계의 존재를 깨우치는 자유로운 ‘두 세계의 스승’이 된다.


#4 평범한 사람의 절규 – “우리는 초대받지 않았다.”




“그건 걔네들 이야기잖아. 데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난 너무 평범한데.”
한 동료 연구원이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다. 때로 영웅의 삶은 우리의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우리는 그 모험에 초대받지 못했다. 모험을 시작하기 위한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어떠한 초자연적인 이끌림도, 우연적인 계기도 없었다. 소명의 고요한 울림도, 보이지 않는 손짓도 없었다. 따라서 운명의 절대적인 시험도 없었고, 보상도, 성숙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세상의 일부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영웅의 이야기는 결코 머물수 없는 허상이며, 현세에 존재하는 영웅들은 우리와는 뼛속부터 다른 존재이다. 그들은 나면서부터 골수 자체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아닐까? “영웅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지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나는 영웅은 타고난다고 믿는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 남에겐 없는 무언가 특별한 신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 그들이 바로 영웅이다. 세상은 결코 공평치 않다.


#5 다시, 캠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럼에도 캠벨은 늘 ‘그대의 천복(天福)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는 그의 충고를 따랐는가?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면서 학업에 항상 의문을 품었던 그는 박사학위가 더 이상 기쁨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박사과정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길로 뉴욕 우드시탁 근처 숲에 자리한 오두막집으로 들어가 몇 년 동안 책을 읽고 재즈 밴드에서 연주를 하며 지냈다. 그 당시에 그가 했던 일이란 걸어다니며 생각하는 일이 전부였는데, 그에게 있어 산책은 ‘사물의 냄새를 맡고 자신이 정착할만한 곳을 감지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간은 실험과 모색을 통해 그의 천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화를 접하고, 문화적 접촉이 전혀 없었던 이들의 민화와 아더왕 전설의 상징 체계가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것을 보며 흥분했다. 그는 모든 문화권의 신화를 두루 꿰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은 평생의 천직이 되었다. ‘비교신화학자’로서 그는 독보적인 자신의 세계를 세웠고, 영웅이 되었다. 신화를 연구하다가 자신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그런 그가 말한다.

“돌이켜보면, 영웅의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성취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 영웅이 애써 찾아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낸 신적(神的)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중략)…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肉化)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그렇다. 영웅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우리 일부의 모습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영웅을 품고 사는 것이다. 그것은 개개인마다 너무 다양하여 천개의 얼굴을 가진다. 내 안에 있는, 하지만 남에게는 없는 신의 경지의 능력 – 그것이 평범한 우리의 영웅성(英雄性)이다. 그것은 우리의 재능이며 기질이다. 아직 닦이지 않은 원석이며, 길들여지지 않은 사자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인간이며, 신의 은총을 입음으로써 신이 된다.”


#6 우리 모두는 고귀하고 유일한 존재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축 늘어진 그녀의 팔소매가 아니다. 절둑거리는 걸음걸이도 아니고, 한쪽 다리로 하는 다이빙도 아니다. 나를 울게 만든 것은 그녀의 이 한마디 말이었다.

"I don’t have any arms, but I have a voice that I can sing well…
We all are precious and unique.
저는 두 팔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귀하고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녀는 장애인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두 팔이 없었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받았다는 것. 누구에게나 자기안에 영웅을 품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 그것이 그녀의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길을 떠나자.
다른 이의 과녁에서 시선을 옮겨 새로운 모험의 지평으로,
평범하게 출발하여 영웅의 모습으로, 두 세계의 스승으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 안의 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육화(肉化)시키러-.
길을 떠나자.

IP *.55.5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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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11.05 13:10:52 *.114.56.245
와우, 역시 우리 옹박이다. 감동이다. 쑥쑥 커가는 모습에 배가 부르다.
내가 쌀도 가져다 주지 못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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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1.05 20:35:58 *.128.229.81
좋구나, 승오야.
수많는 시시한 자기계발서의 오류를 단숨에 넘어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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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7.11.05 22:54:38 *.233.240.223
이제 가을타기를 다 극복했냐? 이렇게 써놓고 아니라고 하면 이제 형이 가만안둘거야. ㅎㅎ 할꺼는 제대로 하면서 너의 엄살 피는 모습, 귀엽긴 하다만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너의 충실한 조교의 모습이 형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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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1.06 08:35:23 *.249.162.56
좋으네^^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더니, 글을 고민하느라 그랬나 보구나.. 나는 칼럼을 열심히 쓰는 승오의 모습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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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11.07 14:02:41 *.244.218.10
그래..굿~~
항상 생각하는 거면서도...
박은 잘 풀어내는구나.

역자인 이윤기의 삶도 평범하진 않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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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찬
2007.11.09 02:02:51 *.140.145.26
선생님께 들을 수 있는 최상의 평가를 받을만한 글이다. 욕심이 많은 승오지만 이 순간만큼은 너 자신을 후하게 칭찬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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