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7년 11월 6일 01시 38분 등록

핸드폰의 작은 떨림이 과거의 신화 속을 헤매고 있는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여행자 김성주님의 전화였다. 지난봄에 안성에서 열렸던 꿈벗 모임에서 만난 이후로 가끔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이번 가을 꿈벗모임의 장소인 충남 금산 적벽강 휴양의 집까지 아름다운 길을 따라 가보자는 것이다. 지난번 가족여행의 좋은 장소를 소개해준 보답으로 맛있는 점심을 대접할 겸 아름다운 길도 구경도 할 겸 그 제안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사실 그보다는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유가 나에게는 있었다. 그는 특이한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끝에 있다’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을 갖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 전국방방곡곡을 찾아다닌다. 여행은 목적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보다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에서 더 아름다움을 느껴야 한다고 흥분된 어조로 길에 대한 열정을 토로한다. 그와 같이 있으면 평소 목소리보다는 한 톤 정도는 올라간다. 사람을 자신의 열정 속에서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이번 여정을 통해 그 사람이 되어보기로 하였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아름다운 길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사람의 감성으로 세상을 느껴보고 싶었다. 무엇이 그를 아름다운 길에 미치도록 하였을까? 너덜너덜해진 여행지도가 무슨 값나가는 골동품인 것처럼 갖고 다니며 잃어버릴까 조심스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11월 3일 오전 9시 30분 이기찬님, 김성주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 곤지암을 출발하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신탄진 IC에서 지루하고 답답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대청호를 향해 국도를 달렸다.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훨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 이유가 나이 탓인지 경치 탓인지는 아리송하지만, 아무튼 단풍이 깊어가는 주변의 경치는 운전의 피곤함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대청댐 주변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주변의 경관을 바라보았다. 나의 눈이 아닌 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평소 내가 바라보던 시각이 아니었다. 그 차이를 말로 설명하기에 생소하였지만 새로운 맛이 났다. 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대청댐 옆의 현암사를 올라갔다. 가파른 절벽위에 있는 절에서 바라보는 대청호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풍경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며 연신 각도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발걸음은 왜 그리 가벼운지, 일행은 그의 뒤를 쫒아가랴 풍경을 바라보랴 발걸음을 재촉하기에 바빴다. 시간이 없어 점심도 김밥으로 때웠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그런지 배고픈 줄도 몰랐다.

현대인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잘 닦여진 포장도로에 있다며 천천히 운전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진정 아름다운 풍경은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다며 끝을 향해 달려갈 것을 연신 주문한다. 그의 말을 따라 가보면 평소에 느낄 수 없는 그림 같은 풍경이 나를 맞이한다. ‘그림 같은 풍경’이란 말은 풍경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표현이기에 절대 쓰지 말아달라고 단정적인 말로 잘라 말한다. 그의 삶 속으로 최대한 들어가 보고자 그의 말과 그의 눈에 주의를 기울였다. 아름다운 길을 소개하는 그의 시각에는 그만의 독특한 멋이 있다. 그의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오전에 출발한 일행이 꿈벗 모임장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장장 8시간의 긴 여정이었지만, 계획한 대로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여행자님의 아쉬움에 비하면 짧기만 하다. 오는 길 풍경에 취해버렸기에 적벽강의 풍경은 오히려 심심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에 본 적벽강 주변의 풍경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의 시선으로 그리고 그의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의 시선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변화는 어렵다. 그렇다고 피하기는 더 어렵다. 피하더라도 그 결과는 더 참혹하다. 고통 없이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잠시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이 훌륭한 한 가지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연예인들, 특히 연극배우나 영화배우, 탤런트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매력중의 한가지로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꼽는다. 다른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간접 체험을 해봄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사는 맛을 느낀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체험하는 것은 나처럼 평범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차선책인 방법으로 닮고 싶은 사람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직접 체험하며 하루 동안 생활해 보는 것이다. 생활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피부로 느껴진다면 변화에 대한 고통 없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이 생활하는 힘들다면 함께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도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영웅에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야겠다. 영웅의 시선은 어떠한지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IP *.212.167.184

프로필 이미지
우제
2007.11.06 13:28:50 *.114.56.245
'길'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선배님께 남도의 아름다운 길을 소개해 드렸드니 친구 분들과 함께 가셨나봐요.그렇데 걷기 여행을 권해드린 제가 잘못이었어요. 길이 중심이 아니고 사람이 중심었기에 어르신들께서 서로 다투시고 중도하차하셨다네요. 길은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다가오나 봅니다. 하루 칠팔십리는 족히 걸었던 그 아득한 날들이 떠 오르는 것은 왠일일까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92 [30] 무심한 일상은 돌고 돌고.... [3] 교정 한정화 2007.10.29 2523
4791 (30)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4] 時田 김도윤 2007.10.29 2058
4790 [칼럼027]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7] 香山 신종윤 2007.10.29 2116
4789 -->[re][30-2]江을 흐르는 질서秩序/ 어린 꿈 [8] 써니 2007.10.29 2126
4788 신동엽 시인처럼 역사를 읽고 미래를 꿈꾸다 [1] 현운 이희석 2007.10.29 2518
4787 다시 꿈을 그려쓰다 [3] 素賢소현 2007.10.30 2666
4786 [칼럼 30] 상처받은 치유자 file [4] 海瀞 오윤 2007.10.30 2977
4785 -->[re]호정의 아름다운 詩 [2] 써니 2007.10.30 2554
4784 (30) 너의 천복대로 살아다오. [6] 香仁 이은남 2007.11.03 2489
4783 다시 꿈을 그려쓰다 [2] [2] 素賢소현 2007.11.05 2234
4782 이유없는 웃음에 부치는 글 [5] 우제 2007.11.05 2805
4781 [칼럼028] 락카펠라, 아카펠라의 새로운 기준 [1] 香山 신종윤 2007.11.05 2531
4780 (31) 그대는 아직 그대의 길을 찾지 못했다. [6] 박승오 2007.11.05 2941
» [칼럼 31] 고통 없이 변화하는 한가지 방법 [1] 여해 송창용 2007.11.06 2380
4778 [31] 신화를 꿈꾸다 [2] 써니 2007.11.06 2259
4777 [칼럼 31] 글쓰기...타인에 대한 애정 海瀞 오윤 2007.11.06 2688
4776 [글쓰기칼럼]장면으로 뛰어들다. 호정 2007.11.06 2074
4775 (31) 태초의 눈 [3] 時田 김도윤 2007.11.07 3044
4774 [칼럼31]경계(境界)에서의 자유 素田최영훈 2007.11.08 2562
4773 [31]100번째 편지 한정화 2007.11.08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