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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6일 08시 15분 등록
글쓰기의 어려움/ 나는 어떤 글과 어떤 일상을 꿈꾸는가.

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나름의 자산을 포트폴리오 하는 것은 그렇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의 일상을 포트폴리오 하는 일은 어쩐지 쉽게 다가오지 않으며 걱정이 앞선다.
내 인생 중장년의 재무구조를 어떻게 짜야 가장 최적의 균형감이 잡힐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의 기간을 들여 집중 공격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구체적으로 짜야 하는 걸까가 글쓰기와 이 과정의 관건이다.

개미의 일상에서 벼룩의 포트폴리오로의 전환은 어떻게 달라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개미는 단순하게 일만하면 된다. 그러면 절대로 굶을 일은 최소한 없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한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홀로서기로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10년간 개미생활로 터득한 것은 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다. 이제 벼룩의 삶으로 한 번 더 탈피를 시도하여 진정한 나다운 삶의 날개를 달고 살아가고자 꿈을 꿔본다.

그 지긋지긋한 땅바닥을 허리도 펼 사이 없이 기어 다니며 살아가는 개미의 일상과 몽골의 양들처럼 평생을 초원을 달리며 끝없는 지평선만을 바라보다 죽을 때야 비로소 하늘을 보며 숨통이 끊어지고 싶지는 않다. 물론 죽을 때는 기꺼이 몽골의 양들처럼 피 한 방울조차 고스란히 다 나눠주고 기꺼이 훌훌 떠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알몸으로 왔으니 알몸으로 갈 것이다. 어쩌면 입관조차 필요치 않다. 빨리 썩어 거름이 되고 씨앗을 싹틔울 수 있는 건강한 흙이 되고 싶다. 하여 나를 썩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체의 무엇도 허용하고 싶지 않다. 까마귀가 내 눈알맹이를 파먹으면 어떠리. 지네가 내 피를 빨면 어떠리. 썩지 않고 미련을 떨고 남아서 한 나무의 거름도, 한 톨의 씨앗도 싹틔울 수 없다면 내 죽음조차 너무 초라하다. 나는 완전히 깨끗하게 죽고 온전한 소멸로서 진정한 새 영생을 살리라. 죽고 또 죽으리라. 그러나 살아서 죽을 수 있는 자만이 죽어서도 싱싱한 거름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오늘의 내 삶이 만만치 않아야 함을 절감하게 된다.

나는 처지에 비해 약간 사치스럽다. 벌이에 비해 소비성향도 강하다. 가진 것에 비해 배포도 있다. 한마디로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많다.
지적인 탐심이 그렇고 맛을 풍미하는 혀가 그렇고 일상의 재미나고 신나는 유혹을 견디지 못하는 눈이 그러하며 때때로 ‘지름신’을 강림 시키는 도발적인 끼가 그렇다. 침묵보다 웅변을 좋아하고 내면의 성찰보다 간섭하기를 주체할 줄 모르며, 제 흠은 덮어두고 온갖 만상에 대해 비평하기를 즐긴다. 이것이 내 성향이고 성깔이고 팔자인 듯하다. 이것을 밑천으로 살아야 하는 중년의 철없는 하수다. 그러면 고작 하수가 밑천인 내가 지금의 이 현실을 딛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야할 나다운 인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내 안에는 늘 되고 싶은 나, 무엇을 하고 싶은 내가 꿈틀거린다. 남들은 나를 보고 고독하고 외롭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고독할 틈도 외로울 새도 없다. 그것이 바로 고독이나 외로움이라면 모를까.
나는 세상의 갖은 이들의 온갖 삶들이 다 이채롭고 신기하고 즐겁고 재미있다.
왜 나는 이런 모양일까. 이것이 운명일까. 자기다움일까. 아마도 그저 내 삶인 듯싶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어떤 마음가짐을 원하는가, 그게 결국 안정인가를 되묻곤 해본다.
안정보다 한술 더 뜬, 한 차원 높은 나만의 정수를 나는 애타게 갈망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나의 진실과 정체를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아직 찾지 못했거나.

연구원 동기 하나가 내가 모색하고 있는 “치유”라는 말로 나를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그것으로 나의 글쓰기 테마를 잡아 나아가는 것이 좋을듯하다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은 내게 도움이 되었고 현재까지 매우 타당하다. 왜냐하면 나의 글쓰기는 곧 내 일상의 취향이 녹아 스며드는 인생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심 무언가를 더 갈망한다. 무엇인가. 작게는 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나만의 인생의 경험과 체험의 진실을 터득하여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좀 더 넓고 깊게 확장되어 진실하고 자유로운 보다나은 나의 실체와 만나서 이제까지의 삶에서 진일보한 더 나은 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단 한마디의 말, 한소절의 글이 개인의 인생을 의미 있게 변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그 말이나 글로서의 화려한 출중함이 아니라 각고의 체험을 통하여 진실한 경험에서 울어난, 삶의 지혜에 기여할 수 있는 정수와도 같은 간결한 힘이기 때문이다. 진리란 것도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내 삶 자체로서 인생의 의문과 나름의 답변을 찾아 얻어내고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진실한 내 체험의 한마디가 내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내 이웃 누구에게라도 힘이 되고 영롱한 의미를 지니며 믿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와 모색으로 더 나은 삶을 찾아 살 수 있게 하는데 나눔과 도움이 되도록 하고 싶다.

그러므로 내 두려움은 언제나 이것이다. 인생의 여러 다양한 선택들 가운데 어느 길을 가고 어떻게 사는 것이 남은 인생길에서 가장 최대 최상의 길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내 고독과 내 외로움의 실체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각의 편린들을 어떻게 하면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심과 갈등이다.
흥분이 아니라 집념의 열정, 환호가 아니라 정열의 울부짖음, 열광이 아니라 절실함의 토로, 만족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깨어남, 기쁨과 환희가 아니라 감사와 감동의 눈물이다.
내가 나다움으로 지고지순해 질 수 있는 일ㆍ놀이ㆍ 쉼이 되는, 내 일상이 나 자체인 그러한 혼연일체가 되는 한 몸의 나를 나는 애타게 갈망한다.

시지포스의 신화에서 삶의 무게라는 신의 무거운 형벌을 받은 시지포스는 그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돌을 굴려 올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은 그 돌이 굴러 떨어질 것을 아는 것에 그쳐 당연함으로 치부하고 더 이상 돌을 나르려 하지 않음으로 인해 신화가 그저 신화로 읽히고 신화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돌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돌을 밀어 올려 부치다보면 그 간격은 좁혀지고 어느덧 더 이상 돌이 굴러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평범한 자기를 넘어선 새로운 신화로서의 변혁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묵묵히 계속해서 굴러 떨어지는 돌을 밀어 올려 가는 역량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끈기와 지속적인 자기실현이 야말로 변화의 지름길이요 중요성이다.

나도 나의 일상을 끈질기게 이끌어내는 의미가 되고 싶다. 나의 부족함을 넘어선 나의 이야기, 나를 초월한 변혁의 주체로서 하나의 신화이고 싶다.
IP *.7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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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11.06 13:18:51 *.114.56.245
너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때론 가장 단순한 진리를 깜박할 때가 있다. 나나 동생, 우리 삶을 잠시나마 simple하게 바라보자.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을 때, 그 태산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니 못해낸다고 해서 세상변할 것 하나 없더라. 반면 행복이 태산만큼다가오더라. (다음주 수,목을 제외하고는 만날 수 있다. 예쁜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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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1.06 13:23:51 *.75.15.205
네... 그럴게요. 우리 실컷 놀아요.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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