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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8일 07시 53분 등록
살아가면서 수많은 세계와 만나게 된다. 무수히 조직과 사람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본다. 영화 메트릭스의 수많은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세상처럼 각 세상은 고유의 질서와 색깔이 있다. 태어나고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면 가족과 마을이 전부라고 생각하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같은 반 친구들도 나와 같은 세상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점점 더 넓은 세상, 정말로 복잡한 세상이었다. 대학교 까지 졸업하고 나니 시간의 흐름으로 오던 세상이 갑자기 더욱 복잡하게 바뀌었다. 내가 선택을 해야 원하는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떤 곳은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세상도 있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세계로 들어가 보니 이도 역시 특별한 세계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면서 나만의 조그만 세계를 만들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있었다.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많지만 정작 내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세계는 그들만의 뚜렷한 선과 턱이 있다. 내가 선뜻 다가설 수 있는 세계가 있고, 다가서지 못하는 영원히 낯선 세계도 있다. 어쩌면 꿈이라는 것은 자신의 세상을 넘어서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 내 세상의 경계를 뚫고 넘어가는 형태일 것이다. 그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것. 아니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었다. 경계에 대한 자유는 무엇일까?

구본형 선생님을 보면 이런 경계에서 자유로운 냄새가 느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화두도 어쩌면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다른 세상과 소통하는 것일 것이다. 때론 자기 자신의 경계를 넘어설 때가 있고, 어떤 때는 타인에게 자신의 경계를 낮춰줘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늘 세계와 나 사이의 차이를 줄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어제의 경계와 오늘의 경계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사부님의 세계는 색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강렬한 색이 있고 경계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경계가 있고, 냄새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지독한 노력의 땀 냄새가 있다. 글을 쓰는 사부님과 책을 보는 사부님의 모습이 다르고, 몽골에 가서 달리기를 하는 아이 같은 순진한 모습과 말을 타고 질주하는 사부님의 모습이 달랐다. 강연장에서 만나는 사부님의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곁에서 보는 사부님은 그러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계셨다.

식물의 경우에도 경계의 묘미가 숨어있다.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은 경계 속에서 삼투압 현상이라는 경계에서의 묘미를 터득하여 오래토록 생존할 수 있었다. 뿌리와 흙속의 압력차이로 인하여 수분을 흡수하여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식물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식물은 경계에서 자신이 필요한 수분만 흡수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필요하지 않지만, 햇빛을 보지 못하고 평생 흙속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에게 광합성 결과로 얻어진 양분을 전달해 준다. 바로 보이지 않는 땅 속 조그마한 경계에서 식물의 아름다운 생존이 계속된다.

나는 내 자신을 스펀지와 같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식물의 뿌리와 같이 내가 필요한 부분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내가 필요한 지혜를 담아서 다시 활용하도록 한다. 이것도 경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다. 하지만 그 스펀지는 늘 비워두어야 한다. 물을 많이 머금은 스펀지는 더 이상 물을 흡수하기 어렵듯이 비워두는 것이 바로 경계에서의 묘미이다.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연히 이번 삼색공감 꿈 프로그램에서 귀중한 단초를 얻게 되었다.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것 나의 접근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늦추고, 너무 느리면 다시 속도를 높인다. 경계를 너무 무리하게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면 다시 반동을 주고, 너무 멀면 다시 다가선다. 줄다리기와 같이 팽팽하면서도 때로는 내 줄을 내어주어야 하고, 상대방을 끌어와야 할 때도 있다. 언젠가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주어야 하는 때고 있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경계에 뛰어들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옆에서 너무 높은 경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경계를 넘어서 자유를 누릴 것이다.

논어 선진편을 보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경계에서의 자유를 잘 표현한 구절이다. 지나치지도 않으면서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사(師:子張의 이름)와 상(商:子夏의 이름)은 어느 쪽이 어집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럼 사가 낫단 말씀입니까?" 하고 반문하자, 공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子曰 師也는 過하고 商也는 不及이니라 曰然則師 愈與잇가 子曰 過猶不及이니라)

선생님은 체육대회 때 시지프스의 신화를 말씀해주셨다. 매일 힘들게 올림포스산에 공을 굴려도 다음날에는 같은 자리에 돌아오는 공이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아닐까. 나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아는 나에 대한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이다. 오늘 굴려 올린 공의 경계보다 계속 더 높아지다가 언젠가는 그 경계를 넘어서 공을 힘차게 밀어 보내는 순간. 그런 순간이 바로 경계를 허물어트리고 자유를 느끼는 날이 될 것이다.

변화경영연구소도 그 경계를 넘어서야할 하나의 다른 세상이다. 하루가 아닌 일주일동안 공을 열심히 굴리고는 있는데 늘 같은 자리에 돌아온 공을 느끼게 된다. 한번에 허물어지는 경계는 없다. 경계에서의 자유는 평생의 화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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