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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일 09시 58분 등록

추석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매우 특별한 추석을 보냈습니다. 시댁 어른들께서 제사를 없애자던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명절 즈음과 방학, 공휴일을 껴서 3일 이상 긴 휴가를 앞두고, 평소엔 조용한 제 블로그가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네이버에서 ‘시댁 가기 싫어’를 검색하면 블로그 최상단에 노출되는 글이 바로 ‘가족처방전 - 명절에 시댁에 가기 싫어요’ 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엔 어느 도서관으로부터 ‘어떻게 성평등한 명절을 보내게 되었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강연의뢰를 받기도 했습니다. ‘성평등한 명절 보내기’ 관련 가족처방전을 정리했습니다.


가족처방전 – 명절에 시댁에 가기 싫어요.
https://blog.naver.com/toniek/221206614007
가족처방전 – 시어머니의 커밍아웃
https://blog.naver.com/toniek/221216706844
가족처방전 – 종갓집 여성들의 미투는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https://blog.naver.com/toniek/221248350945


저희 가족은 파주에서 살고 있고, 시댁은 대전, 친정은 부산이기에, 그 동안 명절 대부분의 시간을 이동하는 데 썼습니다. ‘파주에서 대전, 대전 – 옥천(성묘) – 대전, 대전 – 부산, 부산 – 밀양(성묘) – 부산, 부산에서 파주’ 대이동을 마치고 난 후엔 으레 온 가족이 몸살을 앓곤 했습니다. 운전을 도맡은 남편에겐 근육통이 찾아왔고, 어린 두 아이 뒤치다꺼리를 도맡은 저는 디스크가 도졌습니다. 올해 추석, 명절을 차 안에서 보내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충분히 특별했습니다.


친정에서는 3년 전에 모든 제사를 없앴습니다. 친정 엄마 큰 수술을 앞두고 제가 주도했습니다. 지난 2년 간 제사 때가 되면, 친정 부모님께서 도리를 다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악몽에 시달리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달라지셨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부모를 대신해 용기내 행동해주어 고맙다고 하십니다. 성평등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 ‘딸’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만 2년 동안 맘고생하셨던 부모님을 보아 왔기에, 이번 추석에 시부모님이 걱정됐습니다. 추석 날 아침 시아버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맘이 싱숭생숭하네. 그래도 ‘여성부’에서 결정한 바를 따라 야지.”
“아버님, 정말 고맙습니다!”


‘여성부’란 시어머니를 비롯, 종갓집의 모든 여성을 일컫습니다. 41년생 아버님의 ‘여성부’의 결정을 따르시겠다는 말씀을 직접 육성으로 들으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과 사랑이 샘솟았습니다. 제 마음이 어느 새 아버님의 ‘싱숭생숭한 맘’을 달래 드리고 싶은 자발적인 의지로 충만해졌습니다. 집안의 가장 어른의 결정적인 한 마디가 성평등한 명절을 보내기 위한 지름길이 됨을 실감합니다.


원가정에서 ‘장남’ 역할을, 시댁에서 ‘며느리’ 역할을 짊어진,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친정과 시댁에서 동시에 성평등한 명절을 보내게 된 비법은 과연 무엇인지 전수해 달라고 말입니다. 변경연의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을 통해 ‘성평등한 명절 보내기’를 위한 행동을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착한 딸’, ‘좋은 딸’, ‘사랑받는 딸’로 성장하길 바라며 자랐습니다. 결혼 후엔 그 마음 그대로 ‘좋은 아내’, ‘착한 며느리’, ‘좋은 며느리’,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길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두 딸의 엄마가 된 후, 어린 딸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하던 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 딸들이 ‘착한 딸’, ‘좋은 딸’, ‘사랑받는 딸’로 살기 보다, ‘내 인생 참 괜찮구나!’ 라며 스스로를 인정하는 삶을 살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게 된 겁니다. 저 또한 ‘내 딸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삶을 내가 먼저 살아봐 야지. 엄마의 삶은 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더더욱!’이라 맘먹었습니다. 그리하여 ‘딸’과 ‘며느리’라는 명사를 ‘나’로 바꾸고, 그 앞에 붙은 ‘착한’, ‘좋은’, ‘사랑받는’이라는 형용사를 없앴습니다. ‘나’라는 단어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지 고민했습니다. 지금도 고민하며 ‘어떤 나’가 될 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댁 가기 또는 친정 가기가 두렵다면 먼저 ‘나’에게서 ‘착한’, ‘좋은’, ‘사랑받는’이라는 수식어를 걷어내 보세요. 한결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나에게 어떤 수식어를 붙일지는 내가 결정한다’고 맘먹어 보세요. 작은 기대가 차오르지 않나요? ‘내가 처한 현실은 내가 바꾼다’고 소리내어 혼잣말을 해 보세요. 작으나마 용기가 생길 거예요.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 두 번째 이야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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