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우제
  • 조회 수 2226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7년 11월 19일 04시 57분 등록
오랜만에 산에 오릅니다. 나뭇잎들은 이미 적갈색으로 변하여 발아래 뒹굴고 있습니다. 투박한 등산화 아래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 괜한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낙엽위에서 뒹굴기도 하고 떨어진 솔잎을 끌어 모아 던지기도 해봅니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 코끝에서 맴도는 매캐한 청솔가지 타는 냄새가 느껴집니다.

예전엔 삶과 일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일상 속에 삶이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게지요. 오늘 같이 날씨가 영하로 맴돌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뒷동산에 올라 청솔가지나 삭정이를 끌어 모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면 온 집안 구석구석은 연기로 자욱하고 아궁이 속에서 탁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타는 나뭇가지 소리는 흡사 거문고나 가야금의 울림 같았습니다. 쌩쌩 소리를 내며 부는 바람과 함께 나뭇가지 타는 소리는 절묘하게 어울려 실내악곡을 방불케 했지요. 그러한 일상 속에는 삶과 놀이와 그리고 일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었습니다.
아궁이의 청솔가지 불길이 잦아들면 방 아랫목은 뜨끈 거리기 시작합니다.
때맞추어 무쇠 솥에 있는 고구마도 잘 익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먹고 즐기는 일입니다.
어둠이 내려 깔리는 저녁나절,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토닥거리며 고구마를 먹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낭만적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것이 낭만적인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냥 일상이었으니까요.

배가 고프면 뒤 안 모퉁이에 있는 고구마 자루를 떠올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아궁이와 삭정이 모을 일을 생각하는 세대와 지금은 달라도 참으로 많이 다릅니다. 다름이 차별성에서 온 것 만이라면 씁쓸한 생각이 들거나 ‘책임감’ 같은 것으로 우리를 잠시 부끄럽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차별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돌아봄이 필요합니다.

2007년 11월 ○일
배가고픕니다. 음식점을 떠 올립니다. 다음은 어느 곳의 음식점으로 가야할 지, 또는 내가 지금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지를 생각합니다. 선택의 과정입니다. 차가운 바람을 몰고 들어간 보리밥집에서는 우리를 보자 난방기의 스위치를 돌립니다. 아랫목은 곧 따끈 거리기 시작하고 푸짐한 음식도 한 상 차려집니다. 반찬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찬의 종류도 그러하거니와 양 또한 그러합니다. 주인장이 푸짐하게 내면 음식점의 스타일이고 양이 적으면 우리는 더 요구하면 됩니다. 아직까지 반찬 더 먹었다고 추가요금을 내는 음식점은 우리 나라에서는 드문 일이니까요.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밥도 잘 먹고 커피까지 마셨습니다.
그 다음 할 일은 1인분에 오천원 가량의 돈을 지불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다음은 내가 할 일이 없습니다. 반찬이 남아서 다음 식사 때 먹어야 할지 아니면 버려야 할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아마 남은 반찬을 버리는 것이 식품위생상 또는 음식점 경영 윤리 상 맞는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저는 요즈음 이러한 일상, 즉 일과 삶이 분리된 우리의 생활을 ‘미래세대’라는 것과 자주 연관 지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미래 세대라면 가까이는 우리 다음세대를 비롯해서 멀게는 백년, 천년 뒤 우리를 이어 이 땅에 살아나갈 다음 세대를 말합입니다. 우리의 먼 과거 세대를 상각해 볼 때 그들도 우리의 일상과 크게는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생각하는 힘, 느끼는 감정, 그리고 좋고 싫음에 이르기 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말이지요. 이러한 전제하에서 생각해 볼 때 그들이 우리에게 품을 원망도 동시에 떠오릅니다. 어찌 보면 괜한 쓸데없는 걱정거리 일수도 있지만 웬일인지 저는 심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들에게 잠시 빌려 쓰는 이 땅, 이 대지에 대한 부채의식에 앞서 최소한의 도리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위에서 저는 우리의 생활은 일과 일상이 분리되어있고 내가 먹은 음식이 남던, 그 남았던 음식이 어떻게 처리 되든지 알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고 심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난방열은 난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음식은 음식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남은 화석연료가 고갈되어 가는 것과 화석연료의 소비가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에 앞서 우리는 높아져가는 오일 값을 먼저 생각하고 대체 에너지 원이 우리 현재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에 대한 사려 깊은 관심에 앞서 대체에너지 펀드가 나에게 얼마만한 수익률을 가져올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저는 이 차가운 겨울의 길목에서 에너지 절약을 이야기한다던지 아니면 음식점의 음식을 먹을 만큼만 시켜 먹고 음식 쓰레기를 줄이자는 단편적인 일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먼 미래세대의 입장에서 우리의 현 위치, 그들의 과거세대가 될 우리를 잠시 되돌아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에게 있어서 산은 등산하는 산입니다. 논밭은 생활의 터전이 아니라 금전적 가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아직 산은 나무가 있어서 좋고 그 나무위에 그들이 올라갈 수 있어서 좋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논밭은 곡식들이 자라는 곳이기에 좋고 가을이면 풍성한 열매들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임을 아직은 알고 있습니다.

11월 들어서 고전을 접했습니다. 공자 맹자를 비롯한 동양의 사유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선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빠지지 않는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면 ‘자연’에 대한 시각이었습니다. 도를 자연에 비유한 경우가 있기도 하고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과 자연 속에서 소요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습이 운율을 가진 글과 농담을 가진 그림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고전을 통해서 몇 가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연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무엇인가’ ‘긴 역사 속에서 지금 현재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리고 다가올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남겨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얼마 전,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생되는 메탄가스로 연간 백 몇 십 억 원에 달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 뒤에 당연하게 이어져야 할 연간 수 조 원에 달하는 버려지는 음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이 좋은 계절입니다. 하기야 요즈음은 아랫목, 윗목 구별이 없지만은 고구마라도 삶아서 가운데 놓고 아이들과 함께 윗목 아랫목을 이야기 해 보심이 어떨련지요? 고구마는 식료품점에서 온 것이 아니라 땅에서 온 것임을, 그리고 이 자연은 우리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선조의 것이었던 것처럼 먼 우리의 미래세대의 것임을 이야기 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IP *.86.177.103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11.19 13:56:49 *.75.15.205
자두가 자두나무에서 열리는 것을 보고 늘 무심코 먹기만 하다가 화들짝 놀라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 과실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모습들이 어찌나 이쁘던지요. 자연 속에서 자연을 배울 때의 즐거움...

조교 옹박에게 말해 두었는데, 커다란 방 하나 빌려서 사부님이랑 우리 13명 커다란 이불에 발 집어넣고 도란도란 이야기 할 수 있는 방 하나 얻어서 밤 늦도록 이야기 하며 놀다가 왔으면 좋겠다고요.

군고구마나 찐고구마가 있으면 더욱 좋겠는걸요. 언니가 좋아하는 탁주도요. 나 빨리 몸살 낳아야겠다. 그래야 어디든 따라 가지. 콜록~
프로필 이미지
우제
2007.11.20 03:19:53 *.86.177.103
고구마 좋지요.우리는 올 겨울에 고구마가 벌써 5박스 째인가 아님6박스째인가 한걸요. 덕분에 쌀은 줄지 않고 . 우리 언제 날잡아서 고구마 기차여행하죠. 찐 고구마 여행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2 [칼럼031] 동물원에 가기 [1] 香山 신종윤 2007.11.30 2272
471 [칼럼34] 아들과 함께 몽골 말달리기 [1] 素田최영훈 2007.11.30 2703
470 [칼럼 34] 가정 기도문 海瀞 오윤 2007.11.30 3516
469 (32) 유혹의 香氣 [2] 香仁 이은남 2007.11.29 2253
468 두 곳의 외지 체험을 쓰고 다시 보기 [2] 호정 2007.11.28 1993
467 [34] 나목으로 선 씨 과실의 변증법적 희망예찬 [2] 써니 2007.11.27 2435
466 모든 가능성으로의 초대 [4] 素賢소현 2007.11.26 2328
465 변화경영연구소의 길목에서 [2] 우제 2007.11.24 2075
464 [칼럼33]팔도 오인방 [2] 素田최영훈 2007.11.26 2384
463 (32) 당신께 보냅니다. [6] 時田 김도윤 2007.11.24 2124
462 [칼럼 33] 모순 속에 길이 있다지만… [4] 여해 송창용 2007.11.22 2200
461 [칼럼 33] 정 떼는 연습 海瀞 오윤 2007.11.21 3393
460 [칼럼030] 시간을 넘어선 그리움의 메신저 [2] 香山 신종윤 2007.11.23 2360
459 (33) 가을의 끝자락에서, 찌질이에게 박승오 2007.11.22 2646
458 [33] <영웅>, 오래된 영화 리뷰 한정화 2007.11.22 3244
457 마음 안의 속눈썹 그리고 시간 [3] 호정 2007.11.21 2273
456 (31) 중이 제 머리를 어찌 깎으리 [7] 香仁 이은남 2007.11.20 2435
455 마르코 폴로에게서 배운 한 가지 [3] 현운 이희석 2007.11.19 2634
» 고전속에서 잠시 우리의 미래세대를 생각하다. [2] 우제 2007.11.19 2226
453 [33-1] 처음처럼 [4] 써니 2007.11.16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