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香仁 이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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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글 쓰기에 취미를 붙인 이유 중에 하나는 솔직히 말해 외로워서였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확립되지 못한 정체성 혼란으로 걸핏하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고약한 우울증이 늘 따라다녔었다. 그래 이런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규명해보고자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면 약간은 허함이 해소되는 듯한 시원함에 이런 기회가 또 있으랴 싶어 부끄러움도 접어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써 왔다. 그러니깐 나의 글쓰기의 원동력은 분명 외로움이었다는 게 맞는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근 서른 권이 넘는 독서를 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애매모호함이 슬슬 자취를 감추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달라진 것이다.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겨나면서 사는 게 재미있어 지기까지 한다. 때때로 절망하고 두려워 숨고 싶었던 매일이 그간의 삶이었다면 요즘은 이토록 만족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에 딱 하루, 연구원 숙제 마감 전날만은 예외이지만 과제를 제출한 날의 저녁은 또 해방감에 너무나 자유로워 어떨 땐 혼자 춤을 추거나 휘파람을 불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행복감이 내게 다가온 것일까? 얼마나 오래 머물러 줄 것인가? 살아가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심하게 앓았을 가을도 반갑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궁상스런 느낌보다는 나무들의 생명력에 응원을 보내고 그 빛깔의 고움에 자연의 섭리를 위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곤 슬쩍 말도 건넨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낙엽 꼭꼭 덥고 따뜻하게 잘 지내..하는 것들이다. 좀 유아적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이 나의 천성이라 그러니 그냥 이대로 가련다.
아마 행복하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서 일조량이 많아진 점도 그 하나가 될 것이다. 오전의 햇볕을 찬란하게 받으며 자전거 연습이라고 동네를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찬 바람에 얼굴이 얼얼하지만 기분이 아주 그만이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잡곡밥과 얼갈이국을 끓이고 빨래를 해서 널고 고양이 배를 만져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우울하지 않다는 것, 외롭지 않다는 것, 혼자서도 잘 살아갈 자신이 있다는 것, 뭔가 삶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상상은 기대치 못했던 두근거림도 가져다 준다. 이런 느낌은 나의 인생에서 처음 대하는 것이다. 사실 묘한 기분이지만 굉장히 신나고 들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문제가 되는 점을 발견했다. 그간의 나의 글 쓰기의 숨은 힘이 외로움이었다면 이제 그 동력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외로워서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이젠 자판을 마주 대해도 글이 나오지가 않는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이젠 뭘 써야 하지..하다가 마는 것이다. 이건 정말 걱정된다. 앞으로도 연구원 과정이 많이 남아 있는 데 뭘 가지고 “구라” 을 풀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서도 심각한 구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슬슬 넘어가고 괜히 주제와는 전혀 다른 딴지 걸 만한 부분에서만 혼자 킥킥거리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읽고 있는 책은 “관자”라는 책으로 무려 천 페이지가 넘는다. 얼마나 책이 무거운지 책걸이의 쇠로 된 지지대가 다 휘어 몇 번이나 수리했는지 모른다. 그것 말고도 자질구레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지만 일단 각설하고,
대충 책 내용을 살펴보면 시장 경제의 원리를 파악하고 시장 법칙에 기초하여 경제 번영을 추구했던 관자라는 분의 지당하신 말씀들이 주옥같이 실려 있는 책이다. 도에 의거하여 세상의 섭리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나는 그런 훌륭한 구절들 보다는 자꾸 이상한 쪽으로 눈이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분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니 더더욱 독특하다면 독특해 보이는 그 구절이 궁금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못 참고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그것이 무어냐 하면 요즘의 사회 복지 정책과 상통하는 이야기로 홀아비, 독신자, 과부, 노인 등을 보살피자는 것이다. 나와 같은 독신의 입장에서는 유난히 그 부분만 글자가 커 보인다. 그 시대에 이런 이들에게 나라에서의 배려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도대체 어떤 배려를 했을까, 그런데 왜 오늘 날에는 이런 것들이 없어졌을까.. 이런 정책을 좀 오늘날의 사람들이 배워서 독신자들에 대한 화끈한 배려가 있었음 참 좋겠다 등등의 생각으로 날밤을 새웠다.
관자의 독신자에 대한 복지 정책은 다음과 같이 눈이 확 떠지게 기술 되어 있다.
“이른바 ‘합독(合獨)’이란, 무릇 성읍과 국도에 모두 장매(掌媒)라는 관원을 파견한다. 아내가 없는 남자를 홀아비라 하고, 남편이 없는 여자를 과부라 한다. 홀아비와 과부를 서로 연결시켜 만나게 한 뒤, 농토와 주택을 주어 집안을 이루게 하고, 3년이 지난 뒤에 나라의 부역을 부과 한다. 이를 ‘합독’이라 한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어쩜 이런 멋진 정책을 펼쳤을까나..어째서 이토록 중요한 것이 오늘날의 한국에는 전해지지 않는단 말인가. 눈물 흘리며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글을 보게 되면 내가 저런 나라에 태어났어야 하는 데 하며 입맛을 다시기도 하다가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천 페이지를 읽다가 잠시 째려보고 있었는데 이런 훌륭한 정책을 관자께서 실시하셨다니 갑자기 그가 매력적으로 다시 보이고 있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라는 데 혹시 관자의 사상을 공약에 내건 이가 있다면 두말 않고 나는 그를 찍으리..
이렇게 자꾸 쓰다 보니 내가 꼭 남자가 없어서 안달이 난 여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실 본인은 전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다. 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 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 써놓고 나서 긴가 민가 하는 데 다음의 말씀을 또 만나고선 미리 이런 말을 쓰길 잘했다고 스스로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현명한 군주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반드시 성인을 등용한 뒤에야 천하가 다스려진다. 신부가 신랑을 구할 때, 반드시 중매를 통한 뒤에야 집안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리면서 성인을 등용하지 않으면 천하는 어지럽고 백성은 친하지 않다. 신랑을 구하면서 중매를 통하지 않으면 추악하고 수치스러워 사람이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 스스로 중매하고 나서는 여자가 추하고 믿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고 한다.
나는 요즘 독신주의자 쪽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다. 절대 소개팅을 부탁한다거나 남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그쪽도 마찬가지 인 듯하다. 나 전혀 이성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다. 이건 정말이다. 연구원은 수도과정과 같다. 한눈을 팔 시간, 거의 없음이다.
그러나 혹시나 그럼에도 누가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잠시 갈등이 생기려고 한다. 어디까지나 날 배려해 주는 상대의 성의를 무시할 순 없고….. 현자였던 관자의 저런 말씀을 어길 수도 없고… 그저 예를 차린다는 차원으로…..일단은 만나봐야겠지….여태 천하의 청개구리로 살았는데 이것만큼은 옛 것을 따르도록 하자….그럼 그럼..
진지하고 심각하며 뭔가 깊이 있는 글을 써야 할 텐 데 이런 글이 써지니 손가락을 탓할 수도 없고 걱정이다. 결국 나의 요즘의 지극히 안정적이고 즐거운 인생의 시작은 일단 글 쓰기에서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는 셈이다.
어찌 해야 할까? 할 수 없다. 진지한 글을 쓰기 위해 슬픈 음악을 틀고 이별 영화를 보면서 우울을 기억해 내는 노력도 한 차례 해 봐야겠다. 사실 술도 한잔 마시고..란 말도 쓰고 싶다만 그러고 보니 매번 내가 썼던 글에서 술 이야기가 빠진 적이 없는지라 이번만큼은 빼고자 한다.
IP *.48.43.19
그런데 요즘은 조금 상황이 달라졌다. 근 서른 권이 넘는 독서를 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애매모호함이 슬슬 자취를 감추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달라진 것이다.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겨나면서 사는 게 재미있어 지기까지 한다. 때때로 절망하고 두려워 숨고 싶었던 매일이 그간의 삶이었다면 요즘은 이토록 만족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일주일에 딱 하루, 연구원 숙제 마감 전날만은 예외이지만 과제를 제출한 날의 저녁은 또 해방감에 너무나 자유로워 어떨 땐 혼자 춤을 추거나 휘파람을 불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행복감이 내게 다가온 것일까? 얼마나 오래 머물러 줄 것인가? 살아가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심하게 앓았을 가을도 반갑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궁상스런 느낌보다는 나무들의 생명력에 응원을 보내고 그 빛깔의 고움에 자연의 섭리를 위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곤 슬쩍 말도 건넨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낙엽 꼭꼭 덥고 따뜻하게 잘 지내..하는 것들이다. 좀 유아적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이 나의 천성이라 그러니 그냥 이대로 가련다.
아마 행복하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서 일조량이 많아진 점도 그 하나가 될 것이다. 오전의 햇볕을 찬란하게 받으며 자전거 연습이라고 동네를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찬 바람에 얼굴이 얼얼하지만 기분이 아주 그만이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잡곡밥과 얼갈이국을 끓이고 빨래를 해서 널고 고양이 배를 만져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우울하지 않다는 것, 외롭지 않다는 것, 혼자서도 잘 살아갈 자신이 있다는 것, 뭔가 삶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상상은 기대치 못했던 두근거림도 가져다 준다. 이런 느낌은 나의 인생에서 처음 대하는 것이다. 사실 묘한 기분이지만 굉장히 신나고 들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문제가 되는 점을 발견했다. 그간의 나의 글 쓰기의 숨은 힘이 외로움이었다면 이제 그 동력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외로워서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이젠 자판을 마주 대해도 글이 나오지가 않는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이젠 뭘 써야 하지..하다가 마는 것이다. 이건 정말 걱정된다. 앞으로도 연구원 과정이 많이 남아 있는 데 뭘 가지고 “구라” 을 풀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서도 심각한 구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슬슬 넘어가고 괜히 주제와는 전혀 다른 딴지 걸 만한 부분에서만 혼자 킥킥거리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읽고 있는 책은 “관자”라는 책으로 무려 천 페이지가 넘는다. 얼마나 책이 무거운지 책걸이의 쇠로 된 지지대가 다 휘어 몇 번이나 수리했는지 모른다. 그것 말고도 자질구레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지만 일단 각설하고,
대충 책 내용을 살펴보면 시장 경제의 원리를 파악하고 시장 법칙에 기초하여 경제 번영을 추구했던 관자라는 분의 지당하신 말씀들이 주옥같이 실려 있는 책이다. 도에 의거하여 세상의 섭리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나는 그런 훌륭한 구절들 보다는 자꾸 이상한 쪽으로 눈이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분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니 더더욱 독특하다면 독특해 보이는 그 구절이 궁금하기도 하다가 결국엔 못 참고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그것이 무어냐 하면 요즘의 사회 복지 정책과 상통하는 이야기로 홀아비, 독신자, 과부, 노인 등을 보살피자는 것이다. 나와 같은 독신의 입장에서는 유난히 그 부분만 글자가 커 보인다. 그 시대에 이런 이들에게 나라에서의 배려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도대체 어떤 배려를 했을까, 그런데 왜 오늘 날에는 이런 것들이 없어졌을까.. 이런 정책을 좀 오늘날의 사람들이 배워서 독신자들에 대한 화끈한 배려가 있었음 참 좋겠다 등등의 생각으로 날밤을 새웠다.
관자의 독신자에 대한 복지 정책은 다음과 같이 눈이 확 떠지게 기술 되어 있다.
“이른바 ‘합독(合獨)’이란, 무릇 성읍과 국도에 모두 장매(掌媒)라는 관원을 파견한다. 아내가 없는 남자를 홀아비라 하고, 남편이 없는 여자를 과부라 한다. 홀아비와 과부를 서로 연결시켜 만나게 한 뒤, 농토와 주택을 주어 집안을 이루게 하고, 3년이 지난 뒤에 나라의 부역을 부과 한다. 이를 ‘합독’이라 한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어쩜 이런 멋진 정책을 펼쳤을까나..어째서 이토록 중요한 것이 오늘날의 한국에는 전해지지 않는단 말인가. 눈물 흘리며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글을 보게 되면 내가 저런 나라에 태어났어야 하는 데 하며 입맛을 다시기도 하다가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천 페이지를 읽다가 잠시 째려보고 있었는데 이런 훌륭한 정책을 관자께서 실시하셨다니 갑자기 그가 매력적으로 다시 보이고 있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라는 데 혹시 관자의 사상을 공약에 내건 이가 있다면 두말 않고 나는 그를 찍으리..
이렇게 자꾸 쓰다 보니 내가 꼭 남자가 없어서 안달이 난 여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실 본인은 전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다. 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 도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감히 말을 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 써놓고 나서 긴가 민가 하는 데 다음의 말씀을 또 만나고선 미리 이런 말을 쓰길 잘했다고 스스로 머리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현명한 군주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반드시 성인을 등용한 뒤에야 천하가 다스려진다. 신부가 신랑을 구할 때, 반드시 중매를 통한 뒤에야 집안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리면서 성인을 등용하지 않으면 천하는 어지럽고 백성은 친하지 않다. 신랑을 구하면서 중매를 통하지 않으면 추악하고 수치스러워 사람이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 스스로 중매하고 나서는 여자가 추하고 믿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고 한다.
나는 요즘 독신주의자 쪽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다. 절대 소개팅을 부탁한다거나 남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그쪽도 마찬가지 인 듯하다. 나 전혀 이성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다. 이건 정말이다. 연구원은 수도과정과 같다. 한눈을 팔 시간, 거의 없음이다.
그러나 혹시나 그럼에도 누가 소개시켜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잠시 갈등이 생기려고 한다. 어디까지나 날 배려해 주는 상대의 성의를 무시할 순 없고….. 현자였던 관자의 저런 말씀을 어길 수도 없고… 그저 예를 차린다는 차원으로…..일단은 만나봐야겠지….여태 천하의 청개구리로 살았는데 이것만큼은 옛 것을 따르도록 하자….그럼 그럼..
진지하고 심각하며 뭔가 깊이 있는 글을 써야 할 텐 데 이런 글이 써지니 손가락을 탓할 수도 없고 걱정이다. 결국 나의 요즘의 지극히 안정적이고 즐거운 인생의 시작은 일단 글 쓰기에서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는 셈이다.
어찌 해야 할까? 할 수 없다. 진지한 글을 쓰기 위해 슬픈 음악을 틀고 이별 영화를 보면서 우울을 기억해 내는 노력도 한 차례 해 봐야겠다. 사실 술도 한잔 마시고..란 말도 쓰고 싶다만 그러고 보니 매번 내가 썼던 글에서 술 이야기가 빠진 적이 없는지라 이번만큼은 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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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내가 향인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냥 그져 그런 여인이였는데,
지금은 무언가 가득한 향기와 무언의 이념이 깃든 정치인 같은 느낌이.."
난 문경의 꿈벗 모임에서 향인을 만나고, 같이 통영 연대도 좌대로 낚시여행으로 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센치멘탈한 여인이였는데, 요번 레인보우 파티에서 만나서보니 성숙하고 가득찬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 모습을 발견하였으니 그가 향인이다.
이제 멋진 작가로써,
성숙하고
예쁘게 늙어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의 위트있는 글과 같이 재미있는 삶속에 간혹 초대해주면 기쁠 것인데...
내가 욕심이 과했나~~~
오랫만에 좋은 글 읽고 나갑니다.
향기롭고(香) 인자한(仁) 아가씨^^
지금은 무언가 가득한 향기와 무언의 이념이 깃든 정치인 같은 느낌이.."
난 문경의 꿈벗 모임에서 향인을 만나고, 같이 통영 연대도 좌대로 낚시여행으로 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센치멘탈한 여인이였는데, 요번 레인보우 파티에서 만나서보니 성숙하고 가득찬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 모습을 발견하였으니 그가 향인이다.
이제 멋진 작가로써,
성숙하고
예쁘게 늙어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의 위트있는 글과 같이 재미있는 삶속에 간혹 초대해주면 기쁠 것인데...
내가 욕심이 과했나~~~
오랫만에 좋은 글 읽고 나갑니다.
향기롭고(香) 인자한(仁)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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