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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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 네 번째 이야기
지난 주 아내의 편지 <대가족 책 읽기>에 이어 오늘은 제가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생신과 장모님 생신이 추석 지나고 일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있습니다. 대전 아버지 생신이 먼저이고 밀양 장모님 생신이 일주일 뒤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매년 추석 명절 양가를 방문하고서 얼마 뒤 대전에서 아내가 아버지 생신상을 차려드리고 나면, 그 다음에 맞이하는 장모님 생신은 전화만 드리고 집에서 뻗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15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칠순을 맞은 장모님 생신을 꼭 챙겨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족 회의를 열어 일정을 짰습니다. 장모님 생신을 먼저 챙겨드리고 아버지 생신을 챙기기로 말입니다. 토요일에 처가를 방문하고 일요일에 본가를 방문하는 계획을 짰습니다. KTX 기차표를 예매했습니다. 요즘 어깨통증으로 도수치료를 받는 중이어서 장거리 운전이 사실 좀 버겁습니다. 아내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요즘 지방으로 도서관과 학교 강연을 다녔기에 몸살에 걸렸지만, 지난 금요일 오후 영양주사를 맞아 체력을 비축했습니다. 토요일에 큰 딸은 도서관 봉사활동과 기타 수업이 있고, 작은 딸은 미술 수업이 있지만 양해를 드렸습니다.
토요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파주 운정을 출발해서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에서 장인어른과 장모님과 부산 처형을 만났습니다. 장모님 칠순 가족 식사는 대게 요리로 낙점했습니다. 장모님은 대게를 가장 좋아하십니다. 부산 광안리 대게 전문 식당에서 온 가족이 만났습니다.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화제가 풍성했습니다. 누구도 노동하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가 여유로웠습니다. 평소처럼 아내와 처형이 음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어서 저도 마음이 편했습니다. 대게를 양껏 먹고 광안리 해변을 걸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 부산 광안리를 걸으며 바다를 한껏 느꼈습니다.
일요일은 대전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집에서 고기나 사다 구워 먹자고 하셨지만 저를 포함해서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식당 가서 편히 먹자는 데 일치를 보았습니다. 가족들 의견이 한결같으니 아버지도 승낙하셨습니다. 장어구이 식당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과 저희 가족과 동생 가족까지 두 차로 나눠 타고 가수원 네거리 장어구이집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양쪽 집을 뛰고 나면 비용이 많이 나오지 않느냐고 걱정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저희도 처음 알았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대게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집니다. 장어구이집에서도 넉넉히 먹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명절 양가를 다녀오지 않는 대신, 매년 이맘때 주말을 정해 대전과 밀양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대전이 먼저가 될 지 밀양이 먼저가 될 지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정 몇몇 사람에게 노동이 가중되지 않았고, 누군가의 노동으로 얻은 잔치가 아니었으며, 모두가 웃으며 즐기는 가족 잔치였기에 더욱 좋았습니다. 양가 부모님 공평하게 생일상을 드리고 나니 저도 아내도 마음과 몸이 가볍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아내가 보내는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 다섯 번째 이야기> 편지로 찾아 뵙겠습니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