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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2일 08시 34분 등록
<영웅>, 오래된 영화 리뷰

영화를 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줄거리 조차 뒤죽박죽된 영화가 『관자』를 읽는 동안 생각났다. 관자의 전체 내용은 관련이 없지만, 중원의 패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백성을 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할 때, 영화 ‘영웅’의 메시지가 서로 겹치는 것 같다.

영화 ‘영웅’은 중국적인 것을 가장 잘 표현한다는 칭송을 듣는 장예모 감독의 작품으로 우리나라는 2003년도에 1월에 개봉되었다.
이 영화가 내게 남긴 것은 색으로 전체를 표현했다는 것 하나와 왜 주인공이 죽어야 했는가 그리고, 왜 제목이 하필 <영웅>인가라는 의문이다.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은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라고 투덜거리게 한 것이 바로 이미지를 중심으로 보여주기 식으로 만든 점과 주인공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큰 줄거리는 무인 하나가 왕(나중에 진시황이 되는 왕)을 찾아와 자신이 왕을 시해하려는 자객을 어떻게 무찔렀는지 이야기를 풀어놓고, 왕은 그의 이야기에 의문이 나는 것을 묻고는 하며 차츰 가까이 다가 앉으며 접근하다가 왕에게 칼을 겨누고는 그러나 죽이지는 않고는 왕의 명령에 의해 그 무인이 죽는다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전국 7웅’이라 불렸던 막강한 일곱 국가들이 지배하던 춘추전국시대의 중국대륙. 각각의 왕국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한 전쟁을 수 없이 치뤘다. 그 결과 무고한 백성들은 수 백년 동안 죽음과 삶의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영화 속의 왕 ‘영정’은 바로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이루어가는 왕이다. 후에 진시황이 된 인물이다. 전쟁 중에 가족을 읽고 고향을 잃은 사람의 미움이 살의가 되어 영정에게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 100보 안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는 왕이 자신을 위협하는 무림의 고수 자객들을 죽이고 돌아온 무인 ‘무명’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왕은 ‘무명’이 하는 이야기에 의심을 품고 질문을 하고, 무영은 그것에 보충하는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 하나가 끝날 때마다 왕에게 10보씩 다가간다. 왕과 무인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으로 오버랩되면서 이 영화를 이미지 영화라고 불릴 만하게 만들고 있다. 고수 두 명의 격렬한 칼싸움 장면은 마치 두이 뒤엉켜 추는 춤처럼 잔잔한 음악 속에 있고, 싸움이 끝나고 이야기를 마치면 다시 왕과 무인의 독대한 궁으로 이어진다.


왕의 주변에 수많은 촛불이 켜있고, 무인이 왕에게 10보씩 다가 갈 때마다 촛불은 심하게 흔들린다. 이야기를 마치고 10보 앞까지 다가갔을 때, 그는 그의 필살의 초식으로 왕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것은 살의가 없는 것이었다. 손잡이로 왕을 치는 것에 불과했다. 나중에 왕이 무명 또한 자신을 노리는 자객임을 간파했음을 말하는 데, 그것은 자신에게 다가 올 때마다 촛불이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은 거짓으로 무림의 고수들을 죽였다고 속이면서까지 자신을 노리는 자객으로 들어온 무명을 의심하면서도 왜 그를 자꾸 가까이 불러들였을까? 그리고, 왜 자객은 왕을 죽이지 않았는가? 무명은 자신이 만난 무림 최고 고수 파검이 왜 왕을 죽이는 것을 포기했는지를 이야기한다. 무명이 자신이 10보안에 든 목표에 치명적인 중상을 입히는 초식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을 도와달라고, 파검을 설득하러 갔을 때, 파검은 심드렁한다. 더 이상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검은 영정이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땅바닥에 적어 알린다. 단 두글자이다.
‘天下’

‘천하(天下)’ 바로 이 부분이 관자를 읽으면서 떠올랐던 부분이다. 제 환공의 시대도 여러 나라가 뒤엉켜 전쟁을 하는 시대다. 진은 수 년간 전쟁을 치러왔다. 중원 어느 한 곳 전쟁을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진에 의해 멸망한 6개의 나라에서 자객들이 영정의 목숨을 노린다. 파검과 무명은 자신이 노린 영정의 죽음이 자신들이 겪어온 전쟁이란 지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암살의 성공을 꿈꾸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암살은 처음부터 실패한 것이었다. 왕은 자신을 죽이러 들어온 무명이란 무인에게 자신이 여지껏 살아온 인생을 이해받은 것이다. 아이러니다. 왕을 공격한 무명은 성밖을 향해 힘차게 나간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성에 들어왔다. 그리고, 성을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왕의 부하들은 "왕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누구도 처벌을 해야한다는 것이 왕의 명령이었지 않느냐"며 죽일 것을 재촉한다. 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무명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대목도 『관자』에서 말하는 법치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법칙들은 항상 그것이 지켜지기 때문에 힘을 갖는다. 귀한 것, 가까운 것, 왕 영정에게는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인 무명이 법보다 명령보다 더 중하게 다룰 수 없는 것이다. 왕은 무명의 죽음을 명령할 수 밖에 없다. 무명은 호위대의 화살에 죽었고 <영웅>이란 칭호와 함께 화려한 장례식이 거행된다. 그래서 영화 제목을 <영웅>이라고 붙였나 보다.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과연 주인공은 죽어야만 했나와 영웅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여전히 남겨진다. 책 한권, 영화 한편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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