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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4일 13시 05분 등록
그리운 당신께

짧은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편하진 않았습니다. 당신이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같이 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그리운 당신께 편지를 한 장 띄웁니다. '흔들리고 쓸쓸한 풍경 사진' 속에 담겨 있는 가을 여행의 단상(單相)들을 몇 자, 담아 봅니다.


#1. 떠남 - 장항



장항으로 향하는 열차 안 차창에 파리 한 마리가 계속 맴돌았습니다. 쫓아도 날아가지도 않고, 계속 머물렀습니다. 왠지 제 마음의 앙금 같아 그리 싫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부님과 승오와 아내와 파리 한 마리와 함께 칙칙폭폭, 바다를 향했습니다.

"여행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城)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1)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굳이 어딘가로 떠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사는 매일 매일이 하루 동안의 새로운 여행인 듯 합니다.

우린 매일 떠나면서 삽니다. 어제를 떠나 보내고, 과거를 떠나 보내고, 그리운 사람을 떠나 보내고, 못난 나를 떠나 보내면서 아쉬워합니다. 또, 우리는 매일 만나면서 삽니다. 오늘이란 새로운 날을 만나고, 낯선 일을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슴 떨리는 순간들을 만나고, 더 나은 나를 만나며 기뻐합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떠나 보내고, 또 누구를 만나셨나요?"

여행의 시작은 늘 설레는 법입니다. 부디 당신의 하루도 가슴 벅찬, 행복한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시간 - 금강 하구 둑



금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한산 소곡주를 반주 삼아, 햇살에 반짝이는 오후의 서해 바다를 안주 삼아, 신선한 회와 얼큰한 매운탕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든든한 식사를 마친 뒤, 황토 빛 갈대를 쓰다듬는 가을 바람을 맞으며,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저 멀리 강과 바다를 나누고 있는 금강 하구 둑이 보였습니다. 강물과 바닷물을 나누는 저 긴 둑이 생기고, 다행히 이 곳에 홍수는 줄었지만 생태 환경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철새들이 조금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나먼 수천 리 하늘 길을 그리운 마음에 날아왔는데, 그리운 보금자리가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으로 바꿔 있었을 때 느꼈을, 그 당혹감이 가슴에 선뜩합니다.

그러다 문득, 제가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저 '금강 하구 둑' 같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아 선생님께선 우리의 삶을 열차를 잠시 타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삶이란 태어나서 시간을 따라 '공간'의 열차를 타고 가다, 죽음이 오면 내리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간은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의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의 태어남과 죽음과는 상관 없이 시간의 강은 유유히 흘러 드넓은 바다로 나아갑니다.

강물이 그러하듯, 우주(宇宙)가 그러하듯,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따로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 훨씬 이전부터 죽음 이후까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좁은 시야로는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짧은 현재를 볼 뿐입니다. 그래서 지나온 과거는 고루한 듯 보이고, 다가올 미래는 막연하게만 보이나 봅니다.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관계망'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과거, 현재, 미래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나누어 놓은 개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저 금강 하구 둑이 강과 바다를 단절시키듯, 시간의 강을 과거와 현재를 나누고, 현재와 미래를 나눕니다.

저렇게 마음 속에 온갖 경계를 만들어 높은 둑을 쌓아놓으니, 지나온 길은 돌아보지 못하고, 또 앞 날은 보이지 않아 불안해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 강물의 시원(始原)이 사실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잊은 채 말입니다.


#3. 놀이 - 갈대밭



열차 시간이 다 되어 철새 조망대에서 장항 역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 택시 기사 아저씨로부터 신성리에 있는 '갈대밭'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떠나는 것이 조금 섭섭했던 차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우리는 장항 역으로 돌아가 표를 바꾸고, 다시 갈대밭을 향했습니다.

좋은 여행이란 이처럼 길을 가다 자신에게 다가온 우연의 순간을 춤추듯, 온 몸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선 '소요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逍遙는 보행步行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舞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또 이런 말씀을 합니다.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步行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은 이처럼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 따라야 할 규칙을 만들고, 나아가야 할 목표를 만듭니다. 그저 강물에 배 하나 띄우고 떠내려가듯 삶의 풍경을 즐기지 못하고, 주위에 자꾸 무언가를 쌓아 올려 자신 만의 성을 짓고, 하늘과 바다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딱딱한 그릇을 빚어내곤 합니다..

그러다 우리에게 다가온 '운명의 순간'을 멍하니 흘려 보냅니다. 한참 길을 가다 그제서야 깨닫고는 후회하곤 합니다. 어떤 이는 기회가 다가온 지도 모른 채 그저 투덜대며 살아갑니다. 우연을 즐기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놀이'의 마음입니다. 저는 '강의'의 이 구절이 좋았습니다.

"궁술弓術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 활 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두 발을 딛는 자세와 어깨와 팔의 각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흉허복실胸虛腹實이라 하여 가슴은 비우고 배는 든든히 힘을 채워야 하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활을 쏘는 동작 전체에 일관된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동작과 동작 사이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서로 휴지休止 없이 정靜과 동動으로 유연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종횡십자縱橫十字를 이루면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반구제기反求諸己'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이 구절을 말씀하셨지만, 저는 '활쏘는 사람의 자세와 과정'의 중요성이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화살이 과녁을 꿰뚫기 위해선 과녁을 겨냥하는 동시에 과녁을 잊어야 합니다. 결과에만 집중하게 되면 과정에 소홀하게 되고, 욕심에 치우쳐 과정에 소홀하게 되면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공자와 제자 안연의 대화 중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기왓장 하나를 걸고 내기를 하면 활을 쏘아 기막히게 맞히는 사람이, 허리띠의 황금 고리를 내기의 상품으로 걸면 마음이 어지러워 활을 잘 쏘지 못하게 된다. 기량은 동일하지만 내기 상품에 마음에 쏠리는 이유는 외물外物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대체로 외물을 중히 여기면 내심內心은 졸렬해진다." 2)

"진선盡善하지 않으면 진미盡美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는 진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목표와 과정이 서로 통일될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입니다. 많이 어렵지만 과정과 결과를 조화시켜야 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서 우리는 즐길 수 있습니다. 아니, 즐겨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무심코 모래성을 쌓고 허물듯, 레고 블럭를 조립하고 부수듯, 그 무심한 몸짓 속에 답이 있습니다.

인생은 완성이 아닌, 과정과 순간을 즐기는 놀이입니다. 니체의 멋진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4. 도(道) - 길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갈대 숲을 거닐었습니다. 수풀을 헤치듯 좁은 갈대 밭 사이 샛길을 빠져나가기도 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닌 널찍한 길을 편하게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승오의 제안으로 갈대를 침대 삼아 드러누워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광활한 갈대 숲 길 중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 푸른 강물을 말없이 들여다 보기도 했습니다. 가을 바람과 함께 일렁이는 갈대 숲은 걷다 보니 자연히 이런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동양의 도道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들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beaten pass)입니다. 도道 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착辵과 수首의 회의문자 會意文字입니다. 착辵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수首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3)

서양의 진리는 이 세상 너머에 있지만, 동양의 도는 문자 그대로 '길' 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일상 속에 있습니다. 머리 위로 넘실거리는 갈대밭을 헤치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읽은 것, 배운 것, 들은 것들을 어떻게 삶과 연결시킬 것인가? 나와 연결시키고, 우리와 연결시키고, 세상과 연결시킬 것인가?'

제가 좋아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 합니다. 사상(cool head)이 애정(warm heart)으로 성숙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이며, 현장이며, 숲입니다."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책 속의 지식과 사상들이 자신의 뜨거운 가슴에 갈무리되어야 비로소 깨우쳤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실천의 언어가 되었을 때입니다. 현실에 굳건한 뿌리를 내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자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움직여야 비로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꿈은 꿈일 뿐이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책은 읽는 것은 어쩌면 마음 편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스승으로 따르는 것 또한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저 강을 뛰어넘고,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나가는 일입니다. 그 머리에서 발까지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자만이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 속을 무찔러 들어가 그들을 꿈꾸게 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 2,500년 전 난세를 경영했던 '관자'가 우뚝 서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구하라'의 한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변화가 전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일단 싸우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승리야말로 증거가 되어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른 사람의 동의와 참여를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5. 강 - 위대한 전환의 순간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어느 순간, 우리는 저 삶의 강을 뛰어넘을 용기를 내는 것일까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봄날의 꽃망울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듯, 새롭게 피어 오르게 하는 것일까요?

사부님과 '위대한 전환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전환의 순간, 단식원에서 새벽에 대해 여쭈었고, 사부님께선 마하트마 간디와 칼리 피오리나의 전환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칼리 피오리나의 책, '힘든 선택들'에는 그 순간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주말 집에 다니러 갔다. 난 혼란에 빠졌다. 드라마틱하게 들리겠지만, 일요일 아침 샤워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몸은 몇 달간의 두통을 통해 내게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훤히 그려진다. 샤워실의 타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로스쿨에 다니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난 스물 두 살이었고, 인생의 목적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능력과 재능을 모두 발휘하려면, 나 자신을 가지고 뭔가 이루려 한다면,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일을 찾아내야 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두통이 가셨다."
 
몽골 전문가, 김종래 기자는 자신의 책 '프로마니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잊을 수 없는 5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는 제정러시아 시대, 영하 50도의 혹한 속이었다. 사형대에 묶인 세 명의 청년들, 그러나 그들은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추위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중 가운데 있던 청년은 지극히 평범한 스물 여덟의 문학도였다. 그가 정치범이 되어 사형대에 오른 것은, 반체제 성향의 비밀독서 클럽에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차르 치하 러시아, 반역의 대가는 혹독했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집행관은 죽음을 준비할 시간 단 5분 만을 허락한다. 청년은 함께 묶인 두 명의 동료 사형수에게 인사하고 가족을 생각하며 지난 일들을 정리하는 데 2분을 쓰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되돌아보는 데에 2분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1분은 오늘 이 시간까지 발붙이고 살았던 대지와 자연을 둘러보는 데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인사를 시작했고, 2분은 금세 흘러가버렸다. 마침내 삶을 정리하려던 그는 문득 3분 뒤 자신을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이 아찔했다. 매 순간을 아껴 쓰지 못했던 스물여덟 해가 뼈아프게 후회되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 것을… 다시 한 번만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순간순간을 정말 값지게 쓰련만!' 청년은 끝없이 한탄했다."

다행히 그 날은 성탄절이었습니다.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특사가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달려와 사형을 중지시켰고, 4년간의 강제노동과 군복무를 명한다는 차르의 명령을 전했다고 합니다. 운좋게 목숨은 구했지만 젊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된 노동과 벌레가 들끓는 감방, 무자비한 폭행이 가득한 끔찍한 유형 생활은 그에게 인간의 내면에 대해 깊이 통찰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4년이 지나고 다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위대한 명작들을 연이어 발표합니다. 20년의 감옥 생활이 오늘날의 신영복 선생님을 만들어 냈듯이,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5분의 순간과 유형 생활이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들어 낸 것이죠.

당신도 그런 순간이 있나요? 더 이상 이렇게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고 느꼈던 때, 하기 싫은 일들로 가득차, 분주하기만 한 정크푸드 같은 일상으로 남은 일생을 허비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 불안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새웠을 때가 있나요? 아니면 너무 기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을 때, 심장이 쿵쾅쿵쾅 두근거리며 마음껏 하늘을 날 것 같았던 그런 때가 있나요?

그 때가 바로 당신의 '위대한 전환의 순간'입니다. 당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때입니다. 결국 변화의 바람은 자신의 내부에서 불어옵니다. 미래의 강江은 당신의 영혼에서 흘러 나옵니다.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자신을 떠날 때, 비로서 새로운 여행은 시작됩니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세상을 떠나 낯선 곳을 향할 때, 비로서 위대한 여행은 시작됩니다.


#6. 돌아옴 - 서천역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갑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합니다. 어딘가 아쉬운 마음에 사진도 좀 더 찍어보고, 뒤도 자꾸 돌아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길을 떠난 자는 여행의 끝에서 무엇을 가지고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엇을 남겨두고 가는 것일까요?

주역의 마지막 괘는 미제(未濟)괘로 끝납니다.

未濟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괘는 형통하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을 즈음 그 꼬리를 적신다. 이로울 바가 없다.

미완성의 괘로 끝나는 주역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마 삶에 완성이란 없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시작하고,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고, 배우고, 익히고, 아파하고,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생의 완성이란 없습니다. 관자에서는 이를 일컬어 "분奮은 흥성이요, 영笭은 쇠락이다”했으며, "천도의 변화란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가고, 성하면 다시 쇠퇴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달이 차면 다시 이지러지듯 우리의 삶 또한 그런 것인가 봅니다. 산을 올랐다 싶으면, 다시 또 따른 산이 보이고, 바다를 만났다 싶으면, 더 큰 바다가 나타나고…

또, 삶은 모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완성이란 없지만, 결국 어린 여우처럼 강을 건너다 꼬리를 적시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강을 건너는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우리의 힘은 바로 그 강을 건너는 모험에서 나옵니다. 강을 건너는 모험에서 얻은 지혜와 모험이 우리를 더욱 큰 강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未濟 征 凶 利涉大川
미제의 상태로 계속 나아가면 흉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태어난 순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여행자입니다. 여행자가 여행을 멈추는 순간, 여행자로서의 삶은 끝이 납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희미하게라도 이성의 자유에 이른 자는 지상에서 스스로를 방랑자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느낄 수없다. 여행자는 하나의 최종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목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다시 돌아갈 곳이 있으니, 잠시나마 머물 곳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서천 역의 저녁, 짧은 여행을 끝내는 아쉬운 마음과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마음이 낯선 풍경과 한데 뒤섞여 조금은 묘한 기분입니다.

"여행은 돌아옴(歸)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4)

이제 그리운 당신을 만날 수 있는 서울로 돌아갑니다.





P.S.

짧은 가을 여행을 다녀온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보내지 못한 편지를 다시 꺼내어 보는 듯, 마음 한구석이 아릿합니다. 여행 이후, 저를 사로잡았던 위대한 챔피언의 한 마디를 우표 삼아 이제는 당신께 띄워 보냅니다.

캐시어스 클레이, 그에게 위대한 전환의 순간은 아마 금메달리스트인 자신이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식당에서 내쫓겼던 그 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그는 다른 사람에게 존중 받지 못하는 챔피언은 필요 없다며 금메달을 강물에 내던져 버렸고, "(내 민족과 내 나라를 공격하지 않는)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며 베트남 참전을 거부해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기 위해 노예의 의미가 담겨 있던 자신의 이름을 내팽개쳤던 그는, 32세의 나이에 "(스무 살의) 조지 포먼이 아닌 세상을 향해 펀치를 날"리며 링 밖에서 빼앗겼던 자신의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주어진 삶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았던 위대한 챔피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챔피언이란 체육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챔피언은 자신들의 내면 깊숙이에 있는 소망, 꿈, 이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 무하마드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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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영복, '더불어 숲'
2) 구본형, '사람에게서 구하라'
3) 신영복, '강의'
4) 신영복, '더불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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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11.24 11:19:02 *.70.72.121
클릭을 하고서
헤? 놀라고
치? 드디어 배 아프게 하네 기대하며

읽다보면 너희 둘을 데리고 가신 이유가 밝혀질까? 의문을 품다가

역시 도윤은 욕심이 많아. 이 많은 뜻을 품고 어찌 살았을까?

그때 집을 나간 이후(우리는 알지롱~)로 이러한 인생에 대한 모색들은 계속되어 왔겠군 하며 읽었네.

첫 구절에서는 종윤을 생각하고
마지막에 와서는 결국 자신에게 보낸 편지인가? 하네.

승오와 도윤은 어떻게 매치가 될까? 둘을 섞으면? 이런 생각들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보네.

도윤은 성공이나 일에 대한 성취보다 내면에 대한 사색을 깊이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신영복선생님의 <강의>의 한 줄기 가운데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 p199 부분이 생각나네.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雍也>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知, 好, 樂의 차이를 규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각각을 하나의 통합적 체계 속에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p200

이게 통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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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1.24 20:34:22 *.60.237.51
본문에 어울리는 긴 댓글, 감사합니다^^

어찌 2주 동안 쓰다보니, 그 시간만큼 이런 저런 생각들이 쌓였나 봅니다. 여러가지 고민과 주제들이 하나로 모여져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글을 쓰면서 그 황홀한 전환의 순간을 잠시 꿈꿔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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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1.25 10:16:00 *.72.153.12
도윤 편지 잘 받았어.

수업이 없어진 그 주에, 그때 열병을 알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과 같지는 않겠지만, 각자가 나름대로 여행을 찐~하게 했을거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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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난 읽으면서 '헐리우드키드의 생애'가 생각났어. 그래서 미안.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 저런 것들이 생각나네.
1년 동안 읽고, 자신을 들여다 보게 만든 책들은 뭔가.... 올 한해는 사부님과 저자들이 보여주는 바다를 보는 수련을 하고, 그것을 마치고 자신의 바다를 찾아가라고 한 말씀도 떠오르고. 왜 책을 덮으면 저자의 말들은 허공을 맴돌뿐 내게 와 피와 살이 되지 않았을까? 저자가 보여준 바다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까?

여전히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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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1.26 08:55:33 *.249.162.200
왜 미안한걸까? 영화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서^^;;

왜 허공을 맴도는걸까? 신영복 선생님의 글 중에 감방에서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말의 뜻을 깨달았다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을까?

그렇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실천할 수 있으니 우린 얼마나 행복한 걸까? 또 그렇다면 나의 현장은 어디이고, 누나의 현장은 어디일까?

음, 나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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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1.27 09:27:38 *.249.162.200
"이 칼럼은 네 것이지만, 네 것이 아니고, 그리고, 네 것이 아니지만 완벽하게 네 것이기도 해."

난 이 말, 아주 마음에 듬...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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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웅
2007.11.30 14:14:12 *.47.83.77
도윤님 칼럼을 읽고 나니 마음속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해요. 요즘 조급했던 마음들이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 좋으네요. 도윤님의 글에서는 차분함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져서 참 좋아요!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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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 [칼럼031] 동물원에 가기 [1] 香山 신종윤 2007.11.30 2272
471 [칼럼34] 아들과 함께 몽골 말달리기 [1] 素田최영훈 2007.11.30 2704
470 [칼럼 34] 가정 기도문 海瀞 오윤 2007.11.30 3516
469 (32) 유혹의 香氣 [2] 香仁 이은남 2007.11.29 2254
468 두 곳의 외지 체험을 쓰고 다시 보기 [2] 호정 2007.11.28 1994
467 [34] 나목으로 선 씨 과실의 변증법적 희망예찬 [2] 써니 2007.11.27 2435
466 모든 가능성으로의 초대 [4] 素賢소현 2007.11.26 2329
465 변화경영연구소의 길목에서 [2] 우제 2007.11.24 2075
464 [칼럼33]팔도 오인방 [2] 素田최영훈 2007.11.26 2384
» (32) 당신께 보냅니다. [6] 時田 김도윤 2007.11.24 2124
462 [칼럼 33] 모순 속에 길이 있다지만… [4] 여해 송창용 2007.11.22 2200
461 [칼럼 33] 정 떼는 연습 海瀞 오윤 2007.11.21 3394
460 [칼럼030] 시간을 넘어선 그리움의 메신저 [2] 香山 신종윤 2007.11.23 2361
459 (33) 가을의 끝자락에서, 찌질이에게 박승오 2007.11.22 2646
458 [33] &lt;영웅&gt;, 오래된 영화 리뷰 한정화 2007.11.22 3244
457 마음 안의 속눈썹 그리고 시간 [3] 호정 2007.11.21 2274
456 (31) 중이 제 머리를 어찌 깎으리 [7] 香仁 이은남 2007.11.20 2435
455 마르코 폴로에게서 배운 한 가지 [3] 현운 이희석 2007.11.19 2635
454 고전속에서 잠시 우리의 미래세대를 생각하다. [2] 우제 2007.11.19 2227
453 [33-1] 처음처럼 [4] 써니 2007.11.16 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