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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6일 17시 05분 등록
팔도 오인방!.
대학교 시절에 친구들 모임 이름이다. 인생의 갈림길과 부푼 꿈이 시작되는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하던 날 앞뒤로 만난 두 녀석과 그 두 녀석과 친구가 된 다섯 명이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만나고 보니 공교롭게도 모두 고향이 달랐다. 경기도 화성, 강원도 속초, 경상도 안동, 전라도 영암 그리고 충청도 서산인 나. 이렇게 우리는 각 도에 친구들을 한명씩 두게 되었다. 첫날부터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나고 나니 나의 대학생활은 낭만이 가득하고 화려하고 재밌는 생활이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환상이 깨진 것은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기 무섭게 돌변하는 선배들과 교수님들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있던 때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하더니만, 부모님들이 돌아가고 나서 눈빛과 말투를 확 바꾸는 사람들……. 꼭 먹이 앞의 맹수처럼 씩씩대는 모습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군대 입소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습니다. 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변하는 같은 얼굴들이 정말 싫었다. 세무대학은 세무, 관세공무원을 양성하는 일종의 특수대학으로 일반 대학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선 교수님들도 일반 교수와 현직 공무원들이 섞여 있었다. 학과목도 일반교양은 얼마 되지 않았고 세법과 재정학, 회계학 등 조세 업무에 필요한 분야를 수강하였다. 교재와 수강료, 식비, 기숙사비가 전부 국비로 지원되는 반면, 중간에 그만두거나 나중에 공무원을 발령받고 의ズ뭐?기간 동안 근무 하지 못하면 교육비 전액을 납부해야 한다.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군기가 상당히 센 편이었다. 여섯시 기상하여 아침 점호를 하고 저녁 열시에 저녁점호를 마지막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게 된다. 밥 먹는 것도 군대 식판 같은 것을 사용하였다.

바로 오리엔테이션을 한 날부터 혹독한 첫날 저녁점호가 시작되었다. 열시부터 시작된 점호는 군대 교관을 불러왔는지 다양한 형태의 얼 차례가 돌아가면서 반복되었다. 모포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청소하는 것, 뭐든지 얼차례를 받고, 복창을 하여 암기를 하였다. 첫날은 열두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온 몸이 뻐근하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상나팔소리와 정신없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조교들의 호통으로 나가보니 큰 운동장이었다. 바로 어제 운동장이 넓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그 운동장을 다섯 바퀴를 돌고나니 그 큰 것이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첫날이라 뒤에 쳐지는 학생들을 잡아다가 오리걸음, 토끼뜀, 푸쉬업 등 기본 훈련을 시키곤 했다.

몸으로 때우는 육체적인 체벌보다도 더 힘이 들었던 것은 행동의 제한이었다. 일요일 열시에 귀가를 하여 금요일 수업이 끝날 때 까지는 학교에 있어야 했다. 특별한 경우에는 외출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모두 남자뿐인 금녀의 테두리에서 그 흔한 미팅도 한번 제대로 없는 대학생활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이었다. 이 사막에 오아시스가 바로 오인방이었다. 오전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같이 모여서 밥을 같이 먹었고 오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저녁을 먹고 매점 구석에서 매일 수다를 떨었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았던지 고향에 두고 온 애인부터 시작하여 부모임, 고향 이야기 등 이야기보따리를 끝없이 풀어내었다.

단체생활에 틀에 박힌 생활, 가족과 떨어지고 혼자 생활하는 것이 지겨울 때, 가끔 꿀꿀한 느낌이 드는 날, 특히 밤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오인방과 함께 의기투합한다. 학교 밖의 아지트를 향해 무단외출을 시도한다. 무단외출은 적발되면 15점의 감점이 있고, 매달 말 식당 앞 게시판에 당당히 그 이름이 사유와 함께 오르게 된다. 몰래 일어나 친구들의 방으로 가서 하나씩 불러내서 뒷산 좀 허름하게 쳐진 철조망 사이의 개구멍으로 나간다. 30여분 산길을 걸으면 아담한 아지트가 나온다. 술이 그냥 마시면 취하는 단순한 도구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몰래 철조망을 넘었다는 일탈과 우리끼리만 한다는 동질감, 그리고 빗속을 뚫고 나온 으스스한 한기를 몰아내주는 막걸리 한 잔은 스무 살 젊은이들의 뜨겁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짜릿한 친구들과의 우정을 통하여 삶의 즐거움을 느꼈다.

1학년 첫 학기가 끝이 나면서 팔도여행계획을 세웠다. 경기도에서부터 시작된 여행은 강원도 속초의 푸른 바다를 보았고, 안동댐의 광활함과 조용한 밤낚시를 즐겼다. 전라도에서는 해남과 영암에서 맛있는 음식과 남도의 풍경을 같이 보았다. 그러한 여행이 서산에 까지 이어졌다. 다시 2학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들의 만남과 우정을 계속되었다. 졸업을 하고 각자 직장에 다니면서도 줄기차게 만났다. 군대를 가서도 연락을 하였고, 휴가기간 동안 서로 다른 부대마크를 달고 만나기도 하였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오인방의 위기가 찾아온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즈음이었다. 경기도 친구가 군대에서 무리를 하여 결핵을 걸렸고, 회사를 그만두고 요양을 하였다. 부산에 근무할 때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인천 송도의 구석진 요양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갔다. 느닷없는 나의 방문에 토끼처럼 놀란 눈을 하고 한껏 웃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학교 축제 때 씨름 왕이었던 녀석의 늠름하던 모습이 아닌, 병마와 힘겹게 씨름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병마와 힘겹게 싸우다가 스스로 생을 접고 말았다. 아마 죽음을 보고 그렇게 슬펐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며칠을 술로 채워도 사라지지 않는 친구의 모습, 혼자서 외로움에 저 세상으로 홀로 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오인방중 한사람이 빠진 사인방이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지금은 경상도 친구는 대구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강원도 친구는 속초에서, 나하고 전라도 친구는 서울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올해로 만난 지 20년이 되었다. 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회사에서도 제법 중책을 맡고 있다. 옛날 총각 때처럼 자주 보지는 못해도 늘 서로 다르지 않음에 감사를 하고 만나면 늘 즐겁다. 무엇을 해달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기분 나쁜 것도 없다. 그냥 만나면 좋고, 자주 만나도 좋고, 오랜만에 만나도 좋다. 가끔 시간을 내어 멀리 가족과 만나기도 하였다. 살아가면서 힘이 되는 것,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좋을 뿐이었다. 우리들은 빨리 저 세상으로 간 1맛?몫까지 살아야 할 의무로 오래 살기 위하여 열심히 운동을 하고, 더 젊게 살기 위하여 노력한다.

관자를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관중의 주변에 포숙아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상황에 있거나, 무엇을 하던 간에 그 둘 사이에는 믿음의 끈이 있었다. 포숙아는 부모가 모르는 것을 알아주었고, 정치적 노선이 다른 적군이었지만, 끝까지 그를 믿어주었고, 천거를 하였다. 그런 도움을 받아 관중은 나라의 재상으로 역할을 다하여 제나라를 강병하게 만들었다. 날이 갈수록 삶이 바빠지고 여유가 없어지고 있다. 일 때문에 친구를 자주 보지도 못하고, 번호 몇 개만 누르면 언제든지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그러한 문명의 편리함이 주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친구를 한번 씩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친구야 사랑한다.” 라는 카드를 받아보고 깜짝 놀라는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해외 공항에서 엽서를 쓰기도 한다. 가끔씩 불쑥 찾아가기도 한다. 친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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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11.24 14:58:09 *.114.56.245
인생에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인 친구가 있다는것, 행복한 일입니다. 그 친구 중에 우리들의 '짝꿍'도 포함시켜야 겠지요. 남편에게는 아내가 아내에게는 남편이 든든한 버팀목임은 명백하니까요. 가을의 길목에서 잠깐 멈추어 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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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11.25 00:52:43 *.48.43.19
음..영훈씨 인간성의 그대로 보이는 글. 너무나 최영훈씨다운 글..
좋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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