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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8일 00시 14분 등록
* 암스테르담(Amsterdam) 견문기

그 곳의 사람들의 피부는 하얗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연한 갈색의 반점이 퍼진 자들이 많다. 대체로 모두 쌍꺼풀이 있고 눈 색깔은 여러 가지이다. 코는 높고 입을 들어가 있다. 그 곳 사람들은 키가 크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난 한참 큰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중간을 갈라나 모르겠다. 두상이 양 옆으로 눌리고 뒤가 튀어나온 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 키에 비하면 머리가 작아 보인다.

그 곳의 말은 거센 발음과 바람 새는 듯 한 음이 많아, 강한 느낌이 든다. 인접해 있다는 독일의 말과 조금 비슷하다. 그런데 이 곳의 사람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안다. 영어는 가장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라고 한다. 내가 영어를 조금 할 줄 앎이 정말 다행이었다.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네덜란드어가 어려우면, 접하기 쉬운 영어를 익혀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집이고 교회고 역사며 모두 높고 삐죽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시내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집들은 보통 5층 정도 되고 세로로 긴 모양을 하고 있다. 지붕은 보통 삼각형으로 좁아진다. 기이한 점은 이 건물들 간 틈이 없다는 것이다. 한 블록의 건물들이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 연유를 알 수 없다.

시내를 걷다 어느 문구 팬시 잡화점에 들어갔다. 그곳의 풍미를 담은 물건들에 눈이 들어왔다. 그런데 웬 보기 민망한 사진들이 보였다. 내가 있던 곳 같았으면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도저히 버젓이 있을 수 없는 종류였다. 여기는 마약과 매춘이 합법으로 열려 있다. 이 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노골적인 장면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나라 출신 대표적 예술가 중 반 고흐라는 화가가 있다. 이 사람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에 들어가 보았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잠깐 한다. 그는 1800년대 후반의 화가이다. 그는 정신 질환을 앓다가 37세의 나이로 자살하였고, 생전의 그의 작품은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의 그림은 노동자나 농민 등 하층민의 생활이나 주변 목가적 풍경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 그의 색은 어둡고도 밝은 빛을 머금은 듯 출렁이고 필치는 은은하면서도 강렬하다. 이곳에 다녀간 후로 그의 그림에 빠진 자가 많다고 한다.

길을 걷다 보니 어떤 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고 있다. 여기는 안네 프랑크라는 소녀가 살던 곳이라 한다. 2차 세계 대전 시 독일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대규모의 유태인 학살을 감행하였다. 이 소녀도 유태인이었는데 소녀의 가족은 이 집에서 몰래 숨어 살다 발각되어 수용소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이 소녀의 일기는 아버지의 손에 발견되어 후에 60여 언어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집은 좁고 어두우며 창문은 작았다.

이곳 사람들은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여 자전거용 도로가 따로 있다. 여기에서 사람이 걸으면 위험하니 주의해야 한다. 자전거가 주요한 개인 이동수단이므로, 이곳에서는 자전거를 못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트램’이라는 전동차 다니는데 전기를 이용하므로 전선이 공중에 이어져 있다. 이곳을 다니는 사람은 작은 전철이 땅위를 다니고 있음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도로에서 자동차로 교통이 막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특이한 것은 시내에는 수많은 물길이 골목을 누비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물길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많다. 물길에 정박해 있는 배도 많이 보인다. 지금은 운송수단이라기보다는 관광용 레져용이라고 한다. 아무튼 시내에 이렇게 많은 물길이 있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을 자아낸다.

오래 있지 않아 그 곳의 기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못하겠으나, 해가 나고 맑은 날은 많지 않다고 한다. 건물이 높고 사람이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어딘가 음울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암스테르담을 떠올리고 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 타이뻬이(臺北) 체류기

우선 이곳의 날씨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곳도 해가 나는 맑은 날은 많지 않다. 비가 사흘이 멀다 하고 내리므로 이곳에 있는 사람은 우산은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 비의 종류도 여럿이다. 여름에는 오후 2시 쯤 되면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는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는다. 어떤 날에는 비답지 않은 비가 온다. 안개가 아니라 분명히 비인데 이슬비라 하기에는 너무 가늘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비를 마오위(毛雨)라 부르기도 한다. 폭우던 안개비던 내가 있던 곳에서는 볼 수 없던 비였고, 우산을 써도 소용 없는 비였다.

결국 이곳은 일년 내내 몹시 습하다. 바람도 많이 부는데, 겨울에는 습한 찬 바람이 불어 체감 온도는 더욱 낮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눈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곳 사람은 11월에 접어들고 조금 쌀쌀해진다 싶으면 오리털 점퍼 같은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다. 내가 있던 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입으면 사실 조금 덥다.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기온이 떨어지면 표면이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옷이 보온에 효과적이다.

여름은 습하고 덥다. 여름을 이곳에서 보낼 자들은 더위를 피할 대책을 단단히 세워야 한다.

비가 많이 오고 습하여 이곳의 건물은 특이한 모양을 띈다. 건물 1층은 모두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그 빈 공간으로 사람이 다닌다. 곧 보도인 셈이다. 이는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건물 1층으로 비가 들이치고 물이 차는 피해를 줄이고자 함이다. 동시에 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공간도 확보된다. 건물 표면은 타일을 붙여 놓은 건 경우가 많고 시멘트 칠이 거의 없다. 습기에 벗겨지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지진이 있다. 언제는 탁자의 흔들림이 확연히 느껴지는 지진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 이곳에는 때로 강진이 일어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다치기도 하는데 그럴 때를 대비하여 중요품과 비상품은 항시 챙겨두고 있는 것이 좋다.

이곳 사람들은 남녀 불문하고 소형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닌다. 출퇴근 시간에는 오토바이를 탄 무리들이 도로를 점령한다. 이는 내가 있던 곳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짧은 거리는 자전거도 많이 이용한다. 자전거 도둑이 꽤 있으므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자들은 주의해야 한다.

시내 한 복판에 중정기념당(中正記念堂)이라는 장소가 있다. 이곳은 장개석(蔣介石)이란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그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중국의 반공(反共)정치인이었는데 2차 대전 후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밀려 대만으로 정부를 옮기게 된다. 그는 중화민국 총통과 국민당 총재를 지내며 대만에서의 권력을 쥐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이다. (그곳을 떠나온 후인 2007년 5월에 이곳의 이름은 ‘국립대만민주기념관’으로 바뀌었고 전면에 있던 그의 거대한 동상은 뒤쪽으로 옮겨졌다.)

중정기념당을 바라보고 그 앞은 큰 광장이다. 입구를 통과하여 기념당 앞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닿는다. 양 옆에 음악당과 극장이 자리한다. 모두 대규모이다.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나라는 땅덩어리가 작은데도 이런 것은 이렇게 크게 짓는다.

다시 시내를 가다 보면 시먼띵(西門町)이라는 변화가가 나온다.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은 이곳을 타이뻬이의 명동이라 한다. 좁다란 골목들 사이사이로 상점들이 빼곡하다. 쇼핑하는 사람 물건 파는 사람. 사람도 많다. 극장도 여럿이고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어떤 극장에서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안 그래도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 하는데 외국어로 보니 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있던 곳보다 개봉이 빠르다고 한다.

어느 여름 날, 이 날은 대학 입시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가을 학기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이 곳은 대입 시험이 한 여름에 있다. 거리가 조용하였다. 이곳도 고교생들의 대입 스트레스는 심하다. 듣기에 이곳 대학생들은 학습을 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일주일 안에 두꺼운 책을 읽고 레포트를 쓰는 일은 다반사라고 한다. (당시 나는 엄두를 못낼 일이었다.) 이곳 출신의 한 강사는 한국에 있을 때 대학생들의 학습량과 독서량이 생각 밖에 적음에 약간 놀랐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겉모습 치장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집 안에 마루짝 하나 일어나고 벽 칠이 약간 일어나고 보도가 좀 파인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과 행동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애정표현도 자유롭다. 저러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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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나의 체험을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동방견문록> 문체를 따라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조금 코믹해졌다.

<동방견문록>에서 마르코 폴로는 대체로 사실을 전달하는 입장에서 서술한다. 그러나 그의 주관과 의견이 배제되어있다고 해도 독자는 글에서 저자를 읽을 수 있다.

보기에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저자의 기준과 잣대로 보고 있으며,그 사고의 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저마다의 ‘사실’이란 다를 것이다. 그 팩트 하나 자체에 주관이 개입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어떤 팩트를 선택하느냐에는 그의 기준이 작용할 것이다. 어떻게 서술하느냐도 마찬가지이다. <동방견문록>를 읽으며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독자는 금새 알겠지만 마르코 폴로는 어느 곳을 가던 그곳의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말은 기독교냐 아니냐에서 시작된다. 이는 당시 유럽인의 생활과 사고에 기독교는 절대적인 막강 위치였고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며, 이것이 서술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읽고 있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에서 저자인 장파는 말한다.

‘일찍이 철학가가 말했듯이 사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는 그것이 무엇을 자신의 참조 체계로 삼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사물은 수많은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으나, 당신이 일단 참조 체계를 결정하면 사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도 규정되게 된다.’

참조 체계. 이것은 자신의 경험과 학습으로 알고 있는 바, 의견, 여러 종류의 인풋과 환경으로 형성된 가치관, 기질, 사고 방식 등을 모두 아우름이겠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틀’ 정도로 해 두면 좋을까. 이는 아마 상당 부분 무의식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차 문화권 차가 있을 것이다.

또한 장파가 중국 고대 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를 서구 문화와 대비하여 보여주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참조 체계를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에도 역시 ‘자신의 틀’이 저변에 흐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완전히 똑같은 여정으로 암스테르담과 타이뻬이에 있었다고 해도, 그 역시 마찬가지로 주관적 감정과 의견을 넣지 않고 글을 써본다 해도, 아마 내가 쓴 글과는 전혀 다른 글이 나올 것이다.

나는 이제 또 다른 독자가 되어 아까 썼던 두 가지 체험을 다시 본다. 그 글을 쓸 때 나는 특별한 기준을 두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썼다. 단, 주관은 되도록 개입되지 않으려 했다.

타이뻬이 이야기에서 기후에 대해 먼저 길게 언급한 것은 그곳의 날씨가 인상에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내가 익숙한 서울의 날씨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개인적으로 날씨에 민감함에 연유할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노골적인 장면과 마주한다.’ 타이뻬이에서 ‘애정표현이 자유롭다’등의 서술을 한 것은 평소 내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문화권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곳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이렇게 말할 지 모른다. ‘그곳 사람들은 성을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억압하고 숨길 것으로 치부한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나 여전히 그러하다.’

두 곳의 몇 안 되는 내용 중 건축물과 교통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음은 글을 쓴 내가 있던 환경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외지에 가면 그러한 것들을 유심히 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있는 환경, 문화, 평소 관심사 등을 기준으로, 들이고 보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기를 빼고 무리를 세는 이야기 속의 돼지처럼, 대상에만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주체의 ‘참조 체계’를 통하여 들어오고 내보내어질 것이다. 우리는 ‘객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가끔은 그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가 어떤지, 그 틀이 어떤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주체는, 가장 가까이는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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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당연한 말 몇 마디 하려고 이만큼이나 쓴 셈이 되었네요...
IP *.120.66.226

프로필 이미지
언니
2007.11.28 07:42:13 *.70.72.121
재밌게 읽었네요...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11.28 08:22:29 *.72.153.12
두 곳의 여행기 재미나게 잘 봤다.
뒤의 서술도 재미있고, 시원시원하다. 이제는 글쓰는 게 힘겹지 않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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