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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9일 14시 32분 등록
꽃마다 향기가 있듯 사람도 그 체취가 다르고 지역에 따라서도 독특한 향이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청사에 들어서는 순간 잔잔하게 퍼져있는 그 나라의 향기에서 아, 내가 진짜 이 나라에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곤 한다. 타이 공항에서 맡았던 향기는 아주 독특했고 인천 공항은 정말 김치냄새가 은은하기 그지없다. 또 미국의 버스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맡을 수 있는 향은 자신이 현재 어디에 왔는지를 즉각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센서들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향수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반드시 향수를 뿌려야 하는 직업에 종사했던 관계로 그것이 습관이 되어 아주 오랫동안 애용하고 있다. 요즘 주로 향수를 뿌릴 때는 머리를 안 감았다던가 세탁 안 한 옷을 입을 때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분전환으로 이런 저런 향수를 구비해놓곤 가끔 뿌려준다. 옛날에는 보수적이었던 아버지에게 왠지 된통 혼나는 바람에 핸드백에 몰래 넣어 밖에서 뿌렸던 기억도 있다.

최근 내가 발견한 기분 좋은 향수는 아가들의 향이 나는 모회사 제품인데 이것만큼은 꼭 내가 직접 산다. 이름도 어렵고 매장에서 찾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어딜 가면서 뭐 사다 줄까 하고 건성으로 물을 때 무슨 향수 하고 아예 콕 집어서 미리 선수를 쳐 그것을 받아내기 때문이다. 요즘은 아로마 향을 방에다 뿌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데 이게 꽤 비싼지라 아주 가끔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있다. 혹 누군가 내게 선물하고 싶어진다면 아로마 향의 스프레이 타입을 추천하니 참고바란다. 주고싶은 마음 싹 없어지게 하는 표현 참 잘도 한다.

이 “향기”라는 것, 이렇게 말하면 참 감미로운 느낌인데 “냄새” 이러면 좀 느낌이 다르다. 체취, 내음, 후각….이런 단어도 각각 느낌이 오묘하게 뭔가 다르다. 꽃 향기는 그럴 듯한데 꽃 냄새 라곤 잘 안 한다. 말하기 좀 그렇지만 “똥 냄새”와 “똥 향기” 또한 그 느낌이 현격하게 다른 것처럼 이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사실 그 본질은 같은 것임에도 가끔 언어에게 한 방씩 먹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 뉘앙스가 확 다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글에는 과거 100년 전의 한국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어떤 글에선가 한 외국인이 배에서 내려 땅을 딛는 순간 “똥 냄새”에 기절초풍했다고 쓰여진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당시 전부 푸세식이 당연했을 터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며 깔깔 웃어 넘겼지만 내가 어릴 때만해도 온 동네가 푸세식이었고 그것을 치우러 다니는 아저씨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동네를 방문해 퍼 가곤 했었다. 쫀쫀한 우리 아버지는 그 통이 가득 차 나가는지 아니면 아저씨가 농땡이를 치고 반반 퍼 담는가 지키고 서 계시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한 통에 얼마였기 때문에 그 숫자를 헤아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울 아버지 그러고 보니 고생 마이 하셨다. 어쩌다 이야기가 이리 삼천포로 빠졌을까..다시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으로 돌아가자. 이러다 주제를 놓치고 말겠다.

그러니까, 그 향기라는 것, 냄새라는 것, 체취라는 것, 이런 것은 말이나 이해라는 이성적인 인식의 차원에 앞서 무엇보다도 빨리 사람 속에 스며들어 강렬하게 어떤 기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는 무엇보다도 섹슈얼한 느낌으로 몰고 간다. 또 나처럼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에게는 와인 코르크를 갓 땄을 때 뿜어 나오는 술 향기에 그곳의 갤리(부엌)을 연상하게 된다. 된장을 풀어 끓인 뜨거운 배추국은 추운 겨울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생굴이 아낌 없이 들어 있는 겉저리는 돼지보쌈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오로지 그(그녀)만의 香氣는 미처 예기치 못했던, 그래서 혼란스럽게도 만드는 어떤 그리움 속으로도 무차별적으로 빠져들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어디를 들어가도 반드시 그 주인의 체취나 독특한 향기가 배여 있다. 나는 이런 부분에 의외로 민감한 편이다. 그러나 어느 향이건 한 오분 정도 있으면 그 냄새에 익숙해지는 게 사람의 후각이라고 한다. 푸세식 화장실에 들어가도 첨엔 숨을 안 쉬려고 코를 싸잡지만 결국 숨을 안 쉴 수는 없다. 까딱하면 오히려 머리가 좋아진다는 암모니아 향을 더 많이 들이키게 된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쉬자. 유기농이 어쩌구 환경이 어쩌구 하면서 그런 것에 인상 쓰고 고상한 척 한다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유명한 책인 동방 견문록을 읽었다. 오늘 날엔 더 이상의 비밀이 없을 만큼 다 알려진 지구의 구석구석이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쇼킹한 책이었을 수도 있겠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소위 아시아와 유럽의 단절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유럽이 전부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리는 소리는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그가 본 몽골 제국 시대의 아시아, 특히 쿠빌라이 칸의 치세하의 중국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혹 나와 같은 필터로 본 시각은 없었을까 하며 궁금해 했는데 향기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가 전해 주는 말은 그 지역의 풍경과 관습이 대부분이다. 만약 그가 본 십 분의 일뿐만이 아니라 좀 더 자세하게 적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혼자 상상해 본다. 각 나라나 지역을 냄새나 향기를 표현한다면 어떻게 전달 될지, 어떤 묘사가 될지…..만약 내가 쓴다면 나의 장난끼가 무차별적으로 발동 걸리는 부분일 수 있겠다.

이런 이야기를 왜 이리 길게 썼냐면 그 시대의 주요 거래 품목은 향료와 보석 등등이다. 그런데 그 향료 중에 나의 이목을 끄는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사향이란 제품이다.
사향은 동물의 향기이다. 암수 짝짓기 때가 돌아오면 배꼽 아래쪽에 있는 부위가 주머니 형태로 발달하게 되는데, 이 주머니 안에 냄새를 발산하는 검은 기름덩어리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말려서 가루로 빻아 사용했다고 한다.

식물이 아닌 동물에게서 얻는 향기인데 머스크 향이라고 해서 이성을 유혹할 때 많이 사용한다고들 한다. 사용하기에 따라 최음제라고도 불린다. 물론 당시 사향은 주로 비싼 약재로 쓰였다고 하지만 이 사향의 용도가 옛날부터 여러 책에 많이 언급된 점을 미루어 보아 그 쓰임을 추측해본 것이다. 과거 유명 여인들이 허리 춤에 사향 주머니를 매달고 다녔다는 일화도 본 기억이 있다. 마르코 폴로 시대에 이 사향이 거래 품목 중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왠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닮은 여인”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호기심을 북돋우고 있다. 뭐 눈엔 뭐만 보이는 것일까?

늘 그렇지만 본론보다 주변을 빙빙 도는 버릇은 여전하다. 사실 나는 머스크향의 향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 데 이런 글을 읽으면 억지로라도 한번 뿌려볼까 생각하게 된다. 정말 누군가가 다가오게 될까? 갑자기 불쑥 궁금해진다. 머스크 향, 그래 그것도 한 방법이겠다.
IP *.48.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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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11.29 15:42:56 *.218.205.80
향인과 향기. 좋은데요?
머스크는 남자 향수에 자주 들어가는 거죠? 찜질방에 가면 거울 앞에 꼭 있는 그것, '쾌남' 이라고 아실랑가 몰라. 그게 머스크 향이죠.
필요하시다면 다음번 찜질방 갈 때 하나 슬쩍 해 드리리다.

나라에 도착하면 고유의 향이 있듯, 사람에게도 고유의 향이 있어요. 누난 특히나 그 향기가 강한 사람이에요.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두 단어로 표현하라 한다면.. '싱그러움'과 '완숙함' 이라 할까.
아가들의 향이라.. ㅎㅎ 좀 안어울리는데.. 아마도 아이가 필요한 것 아니신지? 테리 하나로 모자다라면 한결이와 한 방에 가둬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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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11.29 21:55:52 *.48.43.19
쾌남이라고? 그거 아저씨들 냄새 폴폴나는 거?..ㅎㅎ 누나 사양하련다. 찜질방꺼 슬쩍 가지고 나오지 말아라. 내 진짜 사향을 한번 구해보리라..

그나 저나 나의 향기를 멋지게 표현해줘서 고마워. 그대의 향기는 뭘까..”섬세함”과 “박력”이랄까..
어째 너와 내가 서로 발전기를 돌려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아무렴 어떠냐.우리 서로 외로우니깐 이럴땐 인색하게 굴지 말고 맘껏 응원하기로 하자꾸나. 조만간 테리랑 겨리랑도 만나게 해주고..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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