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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06시 38분 등록
아들과 함께 몽골 말 달리기

지난 여름 변화경영연구원 몽골 해외연수에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원영)을 데리고 갔다. 막상 같이 간다고 하였지만 출발일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어리광을 부려서 연구원들 일정에 방해는 되지 않을까? 아니면 일행끼리 오붓하게 즐겨야 하는데 혹시 방해는 하지 않을까? 말은 제대로 탈까? 어린 것이 음식이 입에는 맞을까? 팔십 노모가 환갑인 딸에게 차조심 하라는 말과 같이 걱정거리를 안고 드디어 몽골로 출발하였다.

첫날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드넓은 광야를 이동하는 날이었다. 오후 한나절 내내 덜컹거리는 봉고차를 나누어 타고 이동했다. 옆 봉고에서는 관광봉고라고 신났지만, 첫 날부터 그렇게 하기가 내키지 않았고, 원영과 단 둘이 오랜만에 여행을 온 터라 느긋하게 평원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말타기에서 원영은 나름대로 적응을 제법 잘 했고, 몽골의 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둘째 날에는 제법 먼 거리를 갔음에도 말 타는 것도 더 자연스러워졌고, 말잡이로 나온 원영과 비슷한 서너 명 또래들과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낄낄거리며 꼭 붙어 다녔다. 궁금하여 옆에 가서 가만히 관찰을 해보니 제법 몽골어도 사용하였고, 필요한 의사소통도 대충 손짓 발짓을 섞어 구사했다. 이따금씩 말잡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놀라는 상황이 몇 차례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금새 과자도 나눠 먹고 자기들끼리만 멀리감치 떨어져 말을 타기도 하였다. 한참 어리게만 보았는데 힘든 일정도 잘 따라다녔다.


원영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활쏘기였다. 원영은 집중력이 뛰어나다. 필이 꽂힌 그것은 밤을 새우면서도 한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에서는 눈도 껌뻑 하지 않는다. 홉스골 까지 활을 챙겨준 가이드 아저씨 덕분에 마지막 호텔로 돌아오는 날까지 활쏘기를 할 수 있었다. 끝내 목표물에 적중시키지는 못했지만 늘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막상 집이라는 제한된 테두리가 아닌 몽골에서 만나는 것이 원영의 다른 면이었다. 광활한 들판과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자연스럽게 안 것 같았다. 떠남과 새로운 만남의 순간에서 원영은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집에서 늘 큰소리와 명령조의 말도 많이 사라졌다. 집에 있으면 늘 해야만 하는, 숙제, 공부, 학원가기 등 그러한 속박에서 해방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원영에게 그러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도 좋은 일이라고 본다.


원영과의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 때가 때인지라 입시에 고생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아직 입시와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갈수록 입시나이가 자꾸 빨라지는 시점에서 시험에 내몰리는 아이들 생각을 하니 몽골에서의 자유가 정말 그리웠다. 가끔 원영이 투정을 부리며 몽골에 다시 한번 더 가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드넓은 평원을 마음껏 질주하는 사진을 다시 열어보며 가슴을 달래는 아비도 있는데, 감수성이 뛰어난 원영이야 오죽하겠는가? 여행은 늘 그렇다. 다녀오고 나면 더 그리워진다는 것을.

마르코 폴로도 그러하였으리라. 25년을 여행하면서 거의 젊은 청년기를 여행에 받쳤고 우여곡절 끝에 감옥에서 인연을 얻어 자기만의 여행기를 남길 수가 있었다. 동방견문록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함께 한 여행이 어떠하였을까? 아버지와 아들, 그 숙명적인 관계를 설명해주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당시에는 개인이 왕의 부속물 또는 나라의 자원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태어나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6세의 소년이 41살이 중년이 될 때까지 까지 줄곧 아버지와 같이 여행을 하였다. 고아로 자라다시피 한 15년의 고아생활을 보상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여행이 거의 목숨을 담보로 한 힘든 여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컸을 것이고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마르코 폴로였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몽골에서 아들과 함께한 일주일이 너무나 좋았고 평생동안 같이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소재가 될 것이다. 요즘에 사극을 보다가 말달리는 장면이 나오면 옆에 앉아있는 원영을 툭치며 말타고 싶지? 하고 묻는다. 예하고 대답하며 몽골을 가고 싶다고 한다. 폴로 부자도 최소한 이런 관계는 되지 않았을까? 적나라하게 쓰지는 못했지만, 현자라든가, 선배 여행가를 가장하여 족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진면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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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11.30 04:48:15 *.109.108.65
ㅎㅎ 형도 밤을 새셨군요. 형 사진이랑 글을 보니 몽고가 생생히 떠오르네요. 정말 아들과의 몽골여행... 환상적인거 같아요. 제 10대 풍광에도 추가해야겠네요. 그곳이 정말 그립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라는 말이 참 절실하게 와닿네요. 밤을 샌 건 좋은데, 이제 출근해서 하루를 채울 일이 좀 걱정됩니다. 형도 무리하지 말고 좋은 하루 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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