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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30일 21시 06분 등록
당신의 숲에는 뭐가 살고 있나요?

1) 침대 요괴
숲에는 무시무시한 요괴가 산다. 침대를 가지고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신의 침대에 눕혀서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 밖으로 나오는 부분을 잘라버린다. 반대로 침대보다도 작으면 몸을 쭉 늘려서 침대 크기에 맞춘다. 이 요괴는 그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자르거나 늘려서 죽인다.

2) 마주치는 손뼉
자주 오지도 않는 전화가 울린다. 아침에 전화번호는 건넨 같이 일하는 언니의 전화이다. 급한일이 있으면 전화하겠다고 전화번호를 서로 건냈다. 요근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무슨 일인가 계속 일어나는 데, 딱 꼬집어서 해결이 안나더니, 드디어 일터에서 한바탕 했다. 전화를 할만도 했다. 전화를 건 언니와 나는 어쩌면 같은 곳에 위치한 사람일 것이다.
‘정화야, 너하고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니?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소리를 들어야하니?’
전화를 한 언니는 속상한 마음을 내게 풀어 놓는다. 나를 돕다가 같이 일하는 다른 언니에게 뭔말인가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 큰소리는 내게 쏟아졌었다. 나는 조금 일찍 퇴근했는데, 그 후에도 한바탕 했다는 것이다.

둘이 한조로 청소를 해야하는 곳을 몇 일간 혼자서 청소를 했다. 힘들어서 매니저에게 얘기를 했지만 이미 매니저의 통제를 벗어난 후였다. 나와 한조로 묶인 사람은 매니저의 지시도 무시했고, 알면서도 일부러 같이 일하지 않았다. 일터와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퇴근을 하는데, 내가 둘이 해야할 일 혼자 하다가 다 하지 못하면 그 일은 고스란히 전화를 건 언니의 몫으로 돌아가던 터였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언니가 내 일을 돕다가 싸움이 난 것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일터 사람들은 뭔일이냐고 묻는다.
이일을 겪으면서 첫 번째의 반응은 억울하다였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정말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말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다. 부딪히는 사람은 셋인데, 그 중에 둘에서만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넷 중에서 하나는 돌아가면서 이사람저사람과 부딪히고, 그 중에 하나는 늘 맞서서 싸우고, 그 중에 하나는 큰소리를 들어가며 얼굴이 벌개졌다가가는 잠잠히 있고, 그 중에 하나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이 지낸다. 그러니까 소리를 내지 않는 손바닥도 있으니,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와서 마주쳐서 소리났어라고 억울하다고 소호해도 그게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전화를 건 언니는 그 일로 골치도 지끈거리고, 자신의 이미지만 나빠지고 하니, 같이 일하다가는 계속 싸울 것 같아서 그만둔다고 했단다. 감정적인 일은 이렇게 진행이 되었다.

3) 요괴가 사는 숲
침대요괴는 안 만나는 게 최선이다. 만나면 그 다음은 죽음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 이 요괴를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사는 숲을 안다면 알고도 그 숲으로 들어서지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침대요괴가 사는 숲은 인간이 사는 숲과 연결되어 있고, 침대요괴가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단지 저기 어디쯤에 살고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때로는 그 요괴는 자신이 사는 숲을 벗어나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거나, 혹은 모습을 바꾸어서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와 있다.

4) 침대요괴가 된다.
침대 요괴는 오직 자신의 침대가 유일한 기준이고, 완벽한 기준이다.
“내 침대는 완벽해. 당신의 키가 잘못된 거야. 당신의 키를 내 침대에 맞춰.”

나는 그런 침대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요괴가 아닌 인간이다.

정말 그럴까? 나는 인간이고, 그것은 요괴이다라고 말하는 나는 정말 침대요괴가 아닌가? 일터에서의 큰소리가 오가는 장면을 생각하는 이 순간, 이분법적으로 나는 옳고 타인은 그르다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갈라놓고 있다. 점잖을 빼며 ‘당신이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은 절대로 직접적으로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넌지시 암시를 줄 뿐이다. 행동으로 ‘네가 뭘했는지 봐. 분명히 네가 잘못했지?’라고 내비칠 뿐이다. '당신 때문에 기분이 나빠.'라고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옳고 타인이 그르다고 끊임없이 독기를 내뿜어 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자주 만들고, 또한 겪게 되는가.

요근래 몇 주는 일터에서 작은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 맞지 않는다고 잡아 늘리려고 애썼다. 그러느라 에너지를 소진했다. 상대는 내 팔다리가 너무 길쭉하다고 톱질을 해대는 통에 아파서 힘겨웠다.

5) 침대 요괴 따위는 없다.
2주 정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있다. 하고 싶은 것 하나 마음 속에 가득 차올라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잠을 잊은 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것은 잠시 열병을 알게 하고는 일상으로 스르르 녹았다. 예전에 겪었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와서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때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게 중요한 거니?’라고. 그것에 답하고 나면 시원해진다.

아 그때는 내가 잘못했던 거구나, 이제는 잘 해야지라는 상투적인 반성문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

내 안에 침대 요괴 따위는 없다.

내가 사는 숲에는 침대 요괴 따위는 없다.
숲의 주인이며, 숲을 가꾸는 사람인 나는 숲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다.
이 숲은 새가 지저귀고, 꽃향기가 있다. 햇살이 따사롭고, 부드러운 미풍이 불고 있다. 더불어 산책할 만한 숲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 숲을 사랑한다. 이 숲에서 뭔가를 이루고, 사람사는 소리가 나게 하고 싶다. 뭔 일이가를 하고 싶게 만들고 싶다.

숲에서 만나는 이는 숲의 아름다움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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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글쓰기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주는 책인 『동방견문록』과 연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해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내 삶속으로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것 대신 머리 속에서 맴도는 것은 스스로 당당해지는 법(리더십)과 창조활동의 모순(‘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나니’)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들과 관련한 여러 가지 소재가 역시 뒤섞였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잡아내질 못했다. ‘글은 쓰는 이를 닮아있다’는 것이 내 견해인데,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가 현재의 내 모습인 모양이다.
이렇게 정리하지 못하고, 못쓰는 것이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출발점인 듯하다.

위의 글을 쓸 때는 『동방견문록』과 연결하지 못해서, 글쓰기 주제와 연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글은 두개의 과녁 모두 멀리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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