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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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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일 01시 08분 등록

문을 열었다.

‘소리가 없다. 이상하다.’

퇴근을 하고 돌아왔는데 평소같으면 기지개를 한껏 켜고는 ‘미야옹~’ 하면서 슬렁슬렁 걸어오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한결아~ 한결아~’ 하고 다정히 몇 번을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덜컥 겁이 난다. 항상 문을 열면 밖으로 뛰쳐나갈 듯한 태세를 하고 기다리던 한결이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놀란 마음에 복도로 튀어나갔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샅샅히 뒤져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아도 휑한 가을바람만 지나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아이의 어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길냥이였다. 길에서 살다, 길에서 아이를 낳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로 떠난 탓에, 태어난지 며칠만에 핏덩이는 버려졌다. 구슬픈 울음 소리를 행인이 들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구조된 아이는 다행히 근처의 동물병원에 맡겨졌고 그 곳에서 몇 명의 무책임한 사람의 손을 거쳐 나에게 넘겨졌다.

아이가 처음 오던 때를 나는 잊지 못한다. 작고 여윈 몸에 꼬리는 누가 밟았는지 흉하게 꺾여있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에 지친듯한 눈망울… 그 애처러운 모습을 나는 평생 기억할 것이다. 데려오던 날, 바닥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침대 아래의 구멍으로 쏙 들어가버리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사료로 달래고, 으름장을 놓아도 나오지 않아 몇 일을 그렇게 그냥 지냈다. 이틀이 지나서야 녀석은 밖으로 나왔고, 나는 그 구멍을 책으로 막아버렸다. 그래도 녀석은 어둡고 칙칙한 공간을 벗어나지 않았다. 밥 먹을때만 잠시, 그리고는 다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던 아이가 한달 반 만에 내 방을 완전히 점령하고, ‘문지기’가 되었다. 문 앞에 웅크리고 지키고 있다가 내가 문을 열면 들어가고 싶어 바둥거린다. 화장실이건, 싱크대이건, 심지어는 책상 서랍을 열면 쑝 하고 점프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고, 겂도 없이 냉장고나 전자렌지에도 들어간다. 어디든 돌아다녀야 하는 자유로운 길냥이의 천성이다. 처음에는 ‘삐리릭~’ 하는 현관문 여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던 아이가, 이제는 현관문을 앞에 두고 언제든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듯 잔뜩 웅크리고 있고 있는 것이다.

아뿔사.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출근길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주했던 오늘 아침, 계단에서 구두 끈을 묶느라 잠시 열어둔 사이에 소리없이 빠져나간것일까? 그 아이가 다시 길로 나갔단 말인가. 소름이 돋는다. 한참을 찾아다니다 평소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져가면 좋겠다 싶어 방으로 들어왔다. 그것이라면 녀석은 환장하며 달려 올 것이었다.

“야옹… 으으으응… ”

방안 어디선가 한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막힌 곳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다. ‘문이구나. 문 안으로 들어갔구나.’ 다급한 마음에 화장실부터, 싱크대, 서랍장을 차례로 열었다. 없다. 순간, 섬짓하는 느낌이 들어 냉장고를 열었다. 없었다.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옷장을 열었을 때.

“한결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속상하다. 터져나오는 한마디.

“한결아 미안해, 형이 미안해. 깜박했어.. 정말 미안해”

기억해냈다. 오늘 아침 양복을 꺼내려고 옷장 문을 여는 순간 어김없이 개어져 있는 옷감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녀석을 곯려주려고 문을 닫아놓았던 것이다. 평소처럼 잠시 닫아 두었다가 열어준다는 것을, 시계를 보고 뛰쳐나가느라 바보천치 같은 형이 깜박했던 것이다. 아이는 10시간을 컴컴한 옷장안에서 옷들과 뒹굴며 지낸 듯 하다. 옷장안이 초토화되었다.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허나 의외로 아이의 걸음은 당당하다. 한나절 잘 놀았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유유히 밥을 먹는다. 마치 옷장의 정복자라도 된 냥, 평소보다 엉덩이를 씰룩대며 우쭐대는 걸음걸이란.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이 난다는데 ‘풋’ 하고 이런, 실웃음이 터졌다.

녀석은 바보멍청이다. 예쁜 사기그릇에 먹으라고 떠 놓은 물은 먹지 않고, 늦가을이라 창문에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을 핥아 먹는다. 때로는 내가 샤워하고 나오면 문 앞에 섰다가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있는 물을 할짝할짝 핥아댄다. (정말 못말린다.) 한창 자고 일어나면 크게 기지개 한 번 펴고는 온 집안을 ‘날라다니기’ 시작한다. 검은 옷에 한뭉치 털을 묻혀 놓는가 하면, 행거에 걸려있는 실크 양복도 다닥다닥 구멍을 내 놓는다. (뚜껑 열린다.) 높은 곳을 좋아하여 바닥에서 책상으로, 책상에서 책장위로 뛰어다니다가 유리로 된 물건들을 떨어뜨려 깨먹기 일쑤다. (어휴..) 몇 번을 꾸중해도 그칠 줄을 모르니 참 대책없는 말썽꾸러기 녀석이다.

허나 대단한 존경심을 가지고 한결이를 대하기도 한다. 비록 다섯평 남짓의 작고 살림도 없는 공간에서 아이는 작디작은 물건 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방바닥에 떨어진 동전 하나, 귤 껍질 한조각, 면봉 하나에도 앞발을 요리조리 놀려가며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른다. 오늘은 방 바닥에 작은 귤 10개를 흐트러놓았더니 이리저리 치고 달리며 한참을 가지고 논다. 다리 네 개가 따로 놀며 춤추는 것처럼 겅중댄다. 그리고는 아주 귀엽게 볼을 부비며 ‘골골골~’하고 만족감을 표현한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한다. 이 조그만 아이처럼 매일을 처음 사는 듯 사는 것, 모든 헌 것을 새 것처럼 다르게 보는 것, 사소한 일상의 주어짐을 일생일대 최고의 선물처럼 감사하며 행복해 하는 것 – 이것이 행복의 비결은 아닐까? 아이는 지금도 방안 구석구석을 고르게 관찰하며 발길질을 해댄다.

길냥이인 한결이처럼 마르코 폴로 또한 대단한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탐험가이자 무역상이었던 ‘길사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못말리는 핏줄이었다. 그런 그가 쿠빌라이 칸의 명으로 세계 각지의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그 지역의 기이한 이야기와 신기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열 일곱의 나이에 탐험을 떠났고, 25년간 돌아본 뒤에서야 모험은 끝이 났다. 그리고 결국 그의 삶에 충만한 호기심은 ‘동방견문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했다. 유럽 밖의 세상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13세기의 유럽인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넘어 터무니없음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라고 했으며 더구나 입만 열면 ‘수백만의~’ 운운하는 그에게 ‘백만선생(milione)’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마르코 폴로가 임종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조차, 그의 임종을 보기 위해 온 친구들은 그에게 이제라도 ‘동방견문록’에서 했던 엄청난 거짓들에 대해 참회하라고 권했다. 친구들조차도 그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아직 내가 본 것의 절반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25년, 자기 생의 3분의 1이 모두 '거짓'으로 인정받는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허나 그의 업적은 살아남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탐험을 위해 여러 책을 읽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읽었던 것이 라틴어로 번역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었다. 그는 책의 빈 여백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가며 탐험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지역을 직접 화인하기 위해 탐험을 떠났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가 갔던 곳은 ‘동방견문록’에도 나오지 않는 신대륙이었지만,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에도 콜럼버스는 그 땅이 인도라고 믿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역시 길사람 마르코 폴로의 영향을 받았다. 아랍을 통해 들여오던 향료의 값이 비싼 시절, 그는 동방견문록을 읽고 아시아와 인도 지역으로 향료를 찾아 떠났다. 결국 그는 인도를 다른 지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올 수 있는 직항로를 개척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왕성한 호기심은 그를 선구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선구자는 또 다른 선구자들을 낳았다. 세상은 그렇게 뻗어 나갔다. 최초가 된다는 것. 파이오니어(Pioneer)가 된다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가진다. 최초는 또 다른 최초를 만들며, 그러한 고리는 결국 모두가 최초의 경험을 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작은 호기심이 결국 인류를 바꿔놓는다. 충만하게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할 지도 모른다. 그저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것 뿐이다.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피식 웃음이 난다. 이런 나의 생각을 녀석은 알까? 한결이는 저쪽 침대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나를 몇십분째 ‘관찰’ 중이다.

한결이의 호기심은 어떤 것을 최초로 하게 할까? 아이는 어떤 고양이로 성장할까?
안타깝게도 녀석은 이제 집냥이가 되어 탐험을 떠날 수 없다. 처음으로 했다하여 박수쳐줄 동료 길냥이도 없다. 한낯 좁은 인생일 것이다.

하지만 한결아, 걱정 말아라.
너의 좌충우돌 탐험기는 형이 꼭 기억하고 있을 테니.
형이 알아줄 테니, 너는 더 깊숙히 그리고 더 멀리 가라.

생에 놓인 모든 문을 열고 구석구석 핥아라.
노랗고 반짝이는 눈에 태양이 비추는 모든 것을 담아라.
핑크 빛의 작은 코에 사계절의 향기를 담고,
쫑긋 세운 귀로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말랑말랑 젤리 같은 너의 발바닥으로 춤추듯 인생을 살아라.

형이 함께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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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2007.12.01 12:59:43 *.48.43.19
한결아, 반갑다. 화면에서 너를 보니 나도 영화를 찍고 싶구나. 너보다 한 십 이년을 더 살았으니 내가 너의 삼촌뻘은 족히 될 듯싶다. 우리 주인은 어떻게 나이 계산을 했는지 요즘 날더러 자꾸 오빠라고 부르고 있어 깜짝깜짝 놀란단다.
너란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에 들었다. 니네 아빠인지 형아인지는 너한테 잘해주냐? 우리 언제 한번 만나서 인간들의 실상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보자꾸나. 인간들은 대화하면서 꼭 술도 마시고 그러는 데 우리도 그거 한번 마시면서 이야기할까? 너의 주인을 길들이는 데 유용한 팁을 내 너에게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수해주마. 언젠가 우리가 찐하게 뭉칠 그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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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12.02 11:02:16 *.209.45.129
살아보니<!> 인생에서 '학습인'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엄청 크던데,
승오가 고양이의 '장난'과 마르코폴로를 연결시키는 '학습인'의 자세는 기가 막히네.
따분해보여서 읽지않고 있던 '동방견문록'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승오의 감성과 지성과 승부근성이 언제고 일내겠다는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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