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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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그라운드 제로
2001년 이후 처음 그 땅을 밟았습니다.
그간 몇 번이나 뉴욕을 갔음에도 유독 그 장소만은 외면했습니다. TV에서도 그 장소만 보면 그저 다른 채널을 돌리곤 했습니다.
2001년 9월11일 아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전날, 친구네 집에서 조별 발표과제 때문에 밤을 새우고 아침에 식사를 하려는데, 방 창문 사이로 쌍둥이 빌딩 두 채 중 한 채 위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방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한 대가 바로 내 눈앞에서 빌딩에 부딪히는게 아니겠어요? 순간, 연기가 일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해 버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곳에서 친구 집이 있던 22가와 23가 사이까지 회색 연기가 날아들었습니다.
학교는 폐쇄되었고, 일주일 동안 폐교 조치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속적으로 제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지만, 2-3일은 전화가 불통이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밤마다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들은 친구 중에는 친척을 읽은 학생도 있었고, 그날 인턴으로 근무하던 선배와 동료를 잃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첫 학기 때 멘토와 멘티를 연결해 주는데,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내 멘토가 쌍둥이 빌딩에 근무했다는 것을 저는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Todd Francis. 바로 저의 멘토 이름입니다.
그날부터 저는 뉴욕을 떠나는 날까지 밤마다 이상한 꿈에 시달렸습니다. 누군가 저를 따라오거나 제가 모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꿈이었습니다. 출장 중 다운타운에 갈 일이 있어서 함께 동행했던 사장님께서 이곳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이제껏 트라우마였던 그곳을 방문한다 생각하니 아침부터 소화도 안되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거래처 미팅을 끝내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그곳을 걸어갔습니다. 그 곳은 두 개의 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폭포가 설치되어 있어서 풀 외곽에서 안쪽으로 물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이 폭포는 테러로 인해 흘린 유가족들의 눈물인 것 같았습니다.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폭포의 외곽에는 당시 희생자들과 순직한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다 새겨져있었던 것입니다. 옆에 있던 한 분은 마치 유가족인 듯, 이름에 하얀 장미를 꽂고 지나가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새겨진 이름을 찬찬히 보니 우리나라 이름도 눈이 들어왔습니다. 굳이 Todd Francis라는 이름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을 달리하던 그의 눈물도 이미 저 폭포수 어딘가에 함께 빨려 들어간 듯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근처에 위치한 트리니티 교회에 들러보니 당시 구조 활동을 지원했고 순직한 소방관들의 유품 등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였습니다.
뉴욕 출장의 마지막 날,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의 멘토인 Todd와 비슷하게 생긴 인물이 제게 다정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의 부인 Rattifa는 하얀 백합 속에서 웃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그라운드 제로. 이제 저는 서울에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저의 멘토였던 Todd Francis의 넋을 이렇게 기립니다. 그분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뉴욕 출장의 마지막 밤입니다.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