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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일 15시 45분 등록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나의 경우는 쓰기보다 읽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한마디로 못 읽어서 못 쓴다. 참 답답한 노릇이지만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리라고 본다. 아마 어학을 잘못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내 이야기에 금새 수긍이 갈만 하리라.

내 어머니는 왜정시대라 불리던 일제 때 소학교를 나오셨다. 보국대다 뭐다해서 남자들은 징용가고 여자들은 위안부로 끌려가던 시대에, 몸에 맞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왜식 이름으로 억지 창씨개명創氏改名하여 불리며, 일인들의 치하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말쌀당하여 쓰지 못하고 일어를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셨다. 따로 우리말을 익힐 새도 없이 우리말을 사용하다 걸리면 잡혀간다는 공포에 떨며, 우선 왜인들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른들께서 정해주는 혼처를 따라 서둘러 결혼에 임하시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 집안과 인연을 맺어 삶을 시작한 것이 회혼례回婚禮를 넘어 명년明年이 되면 어언 나이 80에 이르신다.

어머니는 당시 소학교 때 배우신 짧은 일본글과 듣는 대로만 받아드리며 체계 없이 사용해오던 지방 사투리를 섞어 가며, 거의 주먹구구식 대강의 언어구사를 하며 살아오셨다. 쓰기보다 말하고 기억하기를 주로 하면서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썼다하면 받침이 어려운 한글을 기피하고, 대신 머리를 사용하여 외우고 암기하는 기억력으로 일관하며 생활에 임해온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시니 10여 년 전, 연세가 거의 70에 이르자 집안일 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시며, 그때부터 주로 복지관 등을 이용해서 한글을 정확히 깨우치기에 약 4년간을 줄곧 한글공부에 임하시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부터 다시 읽고 쓰기를 반복하시어 기억에만 의존할 수 없고, 또 평생에 답답해하던 한恨을 풀어 하나하나 또박또박 한글을 바로 쓰고 읽어가며, 새로운 가짐으로 학습하여 익히게 되시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엔가는 이국의 천리만리千里萬里 떨어져 사는 손자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쓰시고는 맞춤법이 잘 맞는지를 물어오셨는데, 그 문장이 마치 시詩를 쓰신 것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때에 알았다. 저토록 문장력文章力이 있으셨는데, 세상과 살림살이에 찌들고 절어서 그동안 마음 편히 연필 한번 제대로 잡으실 겨를 없이, 의욕은 있으나 깊은 속마음을 글로써 표현도 못하시고 살아오셨구나. 조금 더 일찍 배우고 익히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저 노인당에 가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나 늙었네 하고는 종일 담배나 피워 옷에 배이게 하고, 화투나 치며 하루를 소일하는 것이 당신께선 못마땅하다며, 결코 그리 늙어가지 않겠다던 다짐을 옹골차게 실행에 옮기어 스스로를 장하고 빛나게 이끄신 보람을 보시었다.

젊어서는 언제나 은행에 가시면 입출금 종이를 넉넉히 집어 와가지고 집에서 찬찬히 써가지고 가야만 마음 놓여 하시던 것을, 이제는 노인이라 청원경찰 등의 안내자들이 도와주려고 해도, 혼자서 씩씩하게 잘 써내시니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하여 그리 좋을 수가 없다고 하시며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도 내게 새로운 가짐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런 어머니의 젊어서의 모습과도 같이 요즘에 내가 어머니의 그 답답한 심정을 많이 느껴서 일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대충 살아갈 때야, 뭐 그리 쓸모가 있나 그런 것(어학) 잘하지 못해도 사는데 큰 지장 없다고 하기도 하겠지만, 젊어 부지런히 공부하여 익히지 않은 관계로 영어만 보면 도망부터가고, 컴퓨터도 워드나 겨우 다루는 지금의 내가 바로 21세기형 문맹文盲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실 맞는 말이다. 컴퓨터야 점점 좋은 기술이 나오니 몇 가지 조작 기술만 익히면 된다손 치더라도, 어학실력의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아 너무 묘연杳然하니 더욱 그럴법하다. 생각 같아선 한 3년에서 5년 어디 외국에라도 나가서 살다가 올까, 외국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날에는 불같이 솟구치지만 돌아와서는 늘 그냥 흐지부지하여 타령에 그치고야 마니 말이다.

이번에 읽는 과제 장파의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은 한글의 우리말 번역임에도 왜 이리 어렵게 느껴지는가 모르겠다. 꽤나 심도 있는 깊이감에 우선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 이만한 글이라면 찬찬히 읽고 흡수할 절대적 시간의 부족이라는 느낌이 다소 들기도 하긴 한다. 그러나 이 난해함은 번역의 문제나 시간의 절대부족이라기보다 동ㆍ서양의 맥을 이루는 역사적 문화사조와 미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비축된 의식이나 사전지식의 부족으로 인함이라고 느껴진다. 전체를 꿰뚫는 해박한 안목과 지식의 부족 탓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경心境이다.

연구원 과정을 하며 적어도 자신의 책 한권을 내보겠다고 하면서, 일부분에 걸친 편협하고 한정된 독서와 언어 구사력에 머물러 있던 지난 시간들의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자꾸만 부끄러운 소회所懷에 젖어드는 것을 숨길수가 없다.

지난한 인생의 고달픔 가운데에서도 애써 굽은 허리를 이끌고 만학의 꿈을 이루시어 스스로가 찾고 즐기는 어머니의 늦은 공부는 아름다운 삶과 배움의 희열 그 자체를 체득케 한다. 매운 겨울바람 이기고 약동하는 봄의 새싹들같이 나름 화사한 책읽기와 쓰기로 노년의 새로운 인생의 도전과 지평을 넓히며 흐뭇한 광경 자아냄은 또한 얼마나 신선한 자극이더냐.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늙은 나목裸木의 흰 머리카락으로 뿜어내는 열정熱情 가득함은 당신 정신의 웅혼雄渾한 통찰洞察과 투지鬪志로서, 역사의 어두운 그늘까지도 말끔히 씻어내고자 함인 양, 창아淸雅한 아름다운 일상으로 거듭 치환置換시켜나가는, 이 땅 이 겨레의 아지랑이 꿈 꽃처럼 쉼 없이 피어나는 자기 구원自己救援과 해탈解脫의 변증법辨證法적 풍류風流와 운치韻致가 감도는 내 어머니 당신께 배우고 익히는 또 하나의 ‘흰 그늘의 미학’ 이 아닐까한다. 하여 오늘도 부족함을 무릅쓰고 느린 걸음으로 어우러져 노모와 함께 책 읽는 소리, 밤늦도록 서로에 대한 무언의 격려와 뿌듯함으로 책장 넘기는 소리, 우리 집 담장을 넘어가누나.
IP *.7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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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12.04 06:27:02 *.208.192.171
"연구원 과정을 하며 적어도 자신의 책 한권을 내보겠다고 하면서, 일부분에 걸친 편협하고 한정된 독서와 언어 구사력에 머물러 있던 지난 시간들의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자꾸만 부끄러운 소회所懷에 젖어드는 것을 숨길수가 없다."

연구원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그 부끄러움.
그게 나중에 균형잡힌 우리를 만들겠죠 누나.

어머니의 문장력이 누나에게로 물려졌나 보네요.
그나저나 왠지 석봉과 어머니의 장면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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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12.04 14:11:42 *.75.15.205
푸하하. 그렇게까지야 뭐...
그런데 내가 어머니에 대한 글을 자주 올려서 약간 마마걸 같긴 하지만 사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쓸 게 아주 많은 거 같아.

사부님을 모시기 전까지 나의 절대적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거니와 한편으로는 닮고 싶어 했고 한편으로는 도망치고 싶어했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범주를 넘지 못해서 내가 사부님을 엄마 삼는 심정이 아니었겠니. 스승의 날 편지(우리가 세검정 바이더 웨이 편의점에 모여 한 줄씩 썼더랬지 왜? 생각나냐? )에 "새엄마~" 하고 내가 그렇게 썼던 적도 있었어. 아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셨을 테지만.ㅋㅋ

내가 나아지는 것을 원하시고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만 이 나이를 살면서 보니까 부모님시대를 부모님만큼 살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고 당신들께서 가꾸고 지켜온 삶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네.

언젠가의 글에서 보니까 옹박이 너는 벌써 이 말을 이해 하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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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12.05 13:15:35 *.244.218.10
참 따뜻하다...차분하고... 왠지 모를 숙연함도...
...언니 글 많이 정돈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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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2007.12.05 15:42:55 *.75.15.205
언제나 묵묵히 일하는 호정아, 곰이라고 해서 미안, 넌 소다.ㅋㅋㅋ
너야 말로 많이 좋아. 나는 솔직히 부끄럽지...

늘 생각이 많고 의욕은 솟는데 뒷심이 약해. 비체계적이라서 초점을 잃고 말아버릴 때가 많아. 지금도 2틀 째 내기?에 빠져서 리뷰의 남은 부분을 채우지 않고 놀고 먹고 있네. ㅋ 이러지 말아야 하는 데...

종윤이 항상 하는 말, "누나는 댓글만 안 달아도 연구원 잘 할 수 있을 텐데..." 맞는 말이지. 주여! 오늘도 주체하지 못하는 이 넘침을 어찌하면 좋겠사옵나이까. (<멈추거라... 어당팔 사제에게 일렀노라.> 아, 네에...)ㅋ

호정아, 나는 말야. 너의 그 적벽강에서 쓴 시가 매우 삼삼해. 그게 자꾸만 네 얼굴처럼 떠 오른단다. 왜 그럴까?????

너, 그 말 아직도 유효하냐? "우리 재수 해야 돼" 하던 그 말.ㅋㅋㅋ
너는 확실히 좋아졌어. 원래의 모습이 나타난 거라고 생각해.

나는 부족함을 많이 느껴. 얼마만큼 내가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 지가 내 글의 관건이 될 거라는 걸 알아.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는데 알면서 갈팡질팡 해야 하는 현실과의 조율이 늘 나를 헛갈리게 한단다.

이게 바로 욕심이고, 정갈하지 못하고 들뜸이 많아서 그렇겠지...

우리가 이렇게 모여 꾸역꾸역 한 고비 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며 수료를 얼마 안 남기고 가는 게 참 다행이고 좋다. 너도 그렇지?

옹박이와 호정이 너희들의 숨은 수고가 늘 많아. 고마워~~~ 사랑해~~~ 우리 모임 수업에서 재미나게 만나자. ^-^*

최영훈과 요한선배의 아낌 없는 장소 협찬 후원에도 늘 감사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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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10.10 22:22:34 *.36.210.116

<다시 써보기>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며 느낀 점이지만 나의 경우는 쓰기보다 읽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한마디로 못 읽어서 못 쓴다.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어학을 잘 못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내 이야기가 금세 수긍이 갈 만하리라.

내 어머니는 왜정시대라 불리던 일제 때 소학교를 나오셨다. 보국대다 뭐다해서 남자들은 징용가고 여자들은 위안부로 끌려가던 시대에 유년의 시절을 보냈다. 몸에 맞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왜식 이름으로 억지 창씨개명創氏改名 당하여 불리며, 일인들의 치하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말쌀당한 채 학교에 가서도 일어를 사용하고 배워야 했다. 따로 우리말을 익힐 새도 없이 우리말을 사용하다 걸리면 잡혀간다는 공포에 떨며,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고 일본 선생에게서 일본글과 문화를 강제 당했다. 그러다 우선 정신대 등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른들께서 정해주는 혼처를 따라 서둘러 결혼에 임하시었다. 그렇게 우리 정씨 집안과 인연을 맺어 삶을 시작한 것이 회혼례回婚禮를 넘기고 지금까지 팔순의 노부부로 살아가신다.

어머니는 당시 소학교 때 배우신 짧은 일본글과 지방 사투리 대화법 정도를 기반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해 오셨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어머니의 언어체계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배우게 된 일본글은 강제된 문화를 익히는 것이었기에 반감이 들었을 뿐, 필요성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에 임하지 않으셨단다. 그렇다보니 어머니는 일본글도 아니고 한글도 아닌 두 언어가 뒤죽박죽 된 형태의 언어구사력을 취하며 생활해 오셨다. 한글은 주먹구구식으로 익혀서 늘 자신이 없고, 결혼과 더불어 해방 후에는 일본글이나 말을 사용치 않다보니 자연 잊어버렸다. 그래서 평소 쓰기보다 말하고 기억하기를 주로 하면서 평생을 살아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써야 할 때면 받침이 어려운 한글을 기피하고, 대신 머리를 이용하여 외우고 암기하는 기억력으로 일관하신 것이다.

그러다가 연세가 들면서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니 다급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0여 년 전 연세가 거의 70에 이르러서야 집안일 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신 것을 계기로 복지관 등을 이용해서 다시 한글 공부에 적극 매달렸다. 약 4년간을 줄곧 한글공부에 매진하신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부터 다시 읽고 쓰기를 반복하시며 꾸준히 반복학습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기억에만 의존할 수 없고, 또 평생에 답답해하던 한恨을 풀어, 마침내 하나하나 또박또박 한글을 바로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이국의 천리만리千里萬里 떨어져 사는 손자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쓰시고는 맞춤법이 잘 맞는지를 물어오셨다. 처음 쓰신 글이라며 쑥스러운 듯 내어놓으셨지만 그 문장은 마치 시詩를 쓰신 것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때에 알았다. 저토록 문장력文章力이 있으셨는데, 세상과 살림살이에 찌들어서 그동안 마음 편히 연필 한번 제대로 잡으실 겨를 없이 지내셨구나. 그 열정과 의욕은 넘치도록 강렬했으나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어 표현도 못하시고 글로써 옮겨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으니 오죽이나 답답하였을까. 조금만 더 일찍 배우고 익히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저 노인당에나 가서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정도의 뒷방 늙은이로는 절대 살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하시더니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스스로를 장하고 빛나게 이끄신 기쁨과 보람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

젊어서는 언제나 은행에 가시면 입출금 종이를 넉넉히 가지고 오시어 집에서 찬찬히 써가지고 가야만 마음 놓여 하시던 것을, -서비스의 발달과 노인이라고 청원경찰 등의 안내자들이 도와주려고 해도,- 이제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써낼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하여 그리 좋을 수가 없다고 하시며 흐뭇해하시는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도 내게 새로운 가짐으로 다가온다.

이런 어머니의 젊어서의 모습과도 같이 요즘에 내가 어머니의 그 답답한 심정을 많이 느껴서 일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대충 살아갈 때야, 뭐 그리 쓸모가 있나 어학 따윌 잘하지 못해도 사는데 큰 지장 없다고 체념하고 자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 때에 부지런히 공부하여 익히지 않은 관계로 영어만 보면 도망부터가고, 컴퓨터도 워드나 겨우 다루는 지금의 내가 바로 21세기형 문맹文盲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실이 그렇다. 컴퓨터야 점점 좋은 기술로 발전되니 몇 가지 조작 기술만 익히면 된다손 치더라도, 어학실력의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아 묘연杳然하다. 그러니 앞으로 더욱 곤란에 처할 확률이 높다. 생각 같아선 한 3년에서 5년 어디 외국에라도 나가서 살다가 올까, 외국여행이라도 다녀오는 날에는 불같이 솟구치지만 돌아와서는 늘 그냥 흐지부지하여 타령에 그치고야 마니 어머니와 같은 고충이 내게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이제라도 지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야 하리라.

이번에 읽는 과제 장파의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은 한글의 우리말 번역임에도 상당히 어렵게 읽혔다. 꽤나 심도 있는 깊이감에 우선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다. 이만한 글이라면 찬찬히 읽고 흡수할 절대적 시간의 부족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난해함은 번역의 문제나 시간의 절대부족이라기보다 동ㆍ서양의 맥을 이루는 역사적 문화사조와 미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체계와 사전지식의 부족에 기인함이라고 생각된다. 전체를 꿰뚫는 해박한 안목과 지식의 부족 탓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경心境이다.

연구원 과정을 하며 적어도 자신의 책 한권을 내보겠다고 하면서, 일부분에 걸친 편협하고 한정된 독서와 언어 구사력에 머물러 있던 지난 시간들의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자꾸만 부끄러운 소회所懷에 젖어드는 것을 숨길수가 없다.

지난한 인생의 고달픔 가운데에서도 애써 굽은 허리를 이끌고 만학의 꿈을 이루시는 어머니의 열정에 새삼 숙연해진다. 스스로가 찾고 즐기는 어머니의 늦은 공부는 아름다운 삶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뛰어넘어 희열까지 체득케 한다. 매운 겨울바람 이기고 약동하는 봄의 새싹들같이 화사한 책읽기와 쓰기로 노년의 새로운 일상을 열어가는 모습이 감격스럽다. 또한 노익장을 과시하며 인생에의 도전과 지평을 넓혀가는 모습은 얼마나 흐뭇하고 신선한 광경인가.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늙은 나목裸木과도 같이 흰 머리카락으로 뿜어내는 열정熱情 가득함은 당신 정신의 웅혼雄渾한 통찰洞察과 투지鬪志로서, 역사의 어두운 그늘까지도 말끔히 씻어내고자 하는 장렬함이다. 또한 창아淸雅한 아름다운 일상으로 거듭 치환置換시켜나가는 강인함이다. 이 땅 이 겨레의 아지랑이 꿈 꽃처럼 쉼 없이 피어나는 자기 구원自己救援과 해탈解脫의 변증법辨證法적 풍류風流와 운치韻致가 감도는 내 어머니 당신께 배우고 익히는 또 하나의 ‘흰 그늘의 미학’ 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부족함을 무릅쓰고 느린 걸음으로 어우러져 노모와 함께 책 읽는 소리, 밤늦도록 서로에 대한 무언의 격려와 뿌듯함을 간직하며 책장 넘기는 소리, 우리 집 담장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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