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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6일 23시 30분 등록

“내가 너의 눈을 그렇게 했다.”
“알고 있었어라우.”
“그럼 용서도 했냐?”

임권택의 <서편제>의 일부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몇 편을 보았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이 영화를 가장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내게는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보았더라면 좋았을 영화라고 지금도 아쉬워한다. 내게 장구를 가르쳐 주던 선배와 비디오방에서 함께 보았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내내 울었다. 왜 그렇게 우냐고 뭔일 있냐고 선배가 물었는데, 내 대답은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자연이 숨막히게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보리밭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춘향가의 한대목이 좋았다. 이몽룡이 춘향을 보고 이리저리 어르는 소리가 눈에 밟혀 아름다웠다. 유봉이 소리에 묻혀 가난을 달고 다니는 것에 눈물이 났다. 가난이 지긋지긋한 송화의 동생이 감정이 살아있는 피가 솟는 사람이어서 좋았다. 송화와 동생의 이별 장면을 지켜보는 외로운 나무 한그루가 좋았다. 동생을 생각하는 송화가 애뜻해서 눈물이 났다. 소리를 향한 유봉의 정(情)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유봉의 사철가에 담긴 사계절의 자연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계절만큼이나 쉬이 변해버린 유봉의 늙음에 눈물이 났다. 장돌뱅이의 기침섞인 텁텁한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아비의 친구 혁필화(革筆畵)를 그리는 아저씨의 기원이 담긴 소나무에 앉은 학 그림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눈이 멀어 혁필화를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마음으로 보아 가슴에 품는 송화가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송화가 소리로 맞이하는 바다가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음악이 눈물 나게 했다. 송화와 동생 동호가 만나 아무말도 묻지 않고 서로의 인생에 대해 소리로만 위로하는 것에 눈물이 났다. 송화가 동호의 북장난에 풀어 놓는 소리가 심청가의 심봉사와 심청이의 재회, 눈뜨는 장면이어서 눈물이 났다.

‘아이구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 로 시작되는 심청의 애통함은 유봉의 물음에 대한 송화의 답이다.

임권택 감독은 그 전에도 유명한 감독이었지만, 이 영화로 인해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감독,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되었다. 내 경우도 서편제를 만나기 전에는 이 감독이 무슨 영화를 만들었는지 몰랐었다. 그 이후로 이 감독의 영화는 영화관에서 제대로 보고 싶다고 전환되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장면 하나 하나가 잔잔한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윽하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 사람이 있다. 이상향을 그린 그림 속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 내가 본 임권택 감독의 영화 중에는 <서편제>, <취화선>, <춘향뎐>이 그렇다. 그림 속에서나 만난 듯한 이상화된 자연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주위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예술 작품 속에 선명하게 구현된다(장파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p.369 ‘9장 창착론’의 첫 부분>에서)고 한다. 작품에는 작가의 심미관이 집중적으로 구현된다. 영화 <서편제>는 작가 이청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가 하도 유명해서 영화를 못보았으니 소설을 보았던 것 같다. 그 후에 비디오 나온 영화를 보았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는 영화와는 맛이 다르다. 잔잔한 아름다움이었다. 송화의 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듯이 삶이 덤덤히 흐른다.
이청준의 원작 소설에서 그 씨앗을 가져왔으나, 그것을 가지고 와서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했을 때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이는 감독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기도 한다. 감독이 의도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처음부터 끝까지 울린 눈물영화로 <서편제>가 내게 다가왔던 것처럼.

서편제를 보면서 아름다워서 울기도 했지만, 뭔일이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뭔일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잘 생각나지 않은 이유는 글쎄.... 송화의 심청가와 같다.

심봉사가 눈을 뜰 때, 나도 같이 눈을 떳다고 하면 억측일까. 심청의 효성에 심봉사는 눈을 떳을 뿐 아니라, 같이 잔치에 참여한 다른 모든 봉사들도 눈을 떴다. 잔치 자리에 참석 하지 않은 이들도 눈을 떳다(영화에서는 이 대목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나도 그 잔치자리에서 개평으로 눈을 떳다. 울다가 눈을 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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