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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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 주유소 할아버지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유소 할아버지’입니다. 우리 아파트 단지를 빠르게 걷는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으십니다. 출근시간에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어? 지금이 늦은 시간인가?’하면서 시계를 한번 더 보게 될 정도입니다. 일정한 시간에 정확하게 산보를 하는 모습은 늘 한결 같습니다. 오늘처럼 비가오는 날이면, 지하 주차장을 걸으십니다. 한번은 지하 주차장에서 제가 자동차를 빼다가 순간적으로 산보를 하는 모습을 못 알아보고 부딪힐뻔 한 적도 있습니다.
주유소 할아버지께서 이 별명을 얻게 되신 이유는 저희 아파트의 '전설'로 전해 내려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에 한 정유회사에 근무를 하셨는데, 회사에서는 매출액이 매우 부진한 한 주유소 경영을 맡겼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꼼꼼하게 일을 하셨고, 매출액이 하루아침에 큰 폭으로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매년 꾸준하게 상승하게 되어 결국에는 7년 만에 전국에서 임대가격 대비 가장 큰 수익을 내는 주유소로 성장시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의 성실함에 동네주민들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 주유소에 들러서 할아버지 얼굴을 보면서 기름을 넣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 주유소를 잊지 못하는 동네주민들은 그 할아버지를 ‘주유소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할아버지 혼자 산보를 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약 2미터 정도 뒤에 할머니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가끔씩 출근길에 마주치면 할머니께서는 마치 소녀와 같은 미소로 늘 저희 가족을 대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아이고.. 반가워라. 아이고.. 행복해라. 아이고.. 축복합니다.”
라며 저희 아이들에게 천 원, 이 천 원, 때로는 주머니에 있는 박하사탕도 건네주셨습니다. 매번 무언가를 건네주시는 할머니가 부담스러워, 산책을 함께 하시는 모습이 포착이 되면, 저쪽으로 빙- 둘러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그간 몇 차례 수술을 하시고,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가신 적도 있으셔서, 그 죽음이 그리 갑작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동네 주민에게 건네주시는 그 따스함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장례식장에 어린 아이들과 함께 찾아갔을 때, 우리 아이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를 모아 부조금에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한 달 정도 할아버지께서 산책하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동네주민들은 아마도 외로워서 더 이상 산책을 하지 않으신가보다, 라고 수군거렸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다시 혼자 씩씩하게 산책을 하십니다. 늘 2미터 뒤에서 걷으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모이는 듯하지만요.
오늘 아침에도 출근을 하는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지하 주자장에서 열심히 걷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성실함은 저로 하여금 가슴 숙연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오늘, 내 하루는 저 주유소 할아버지만큼 성실했는지, 오늘 만나게 될 나의 하루는 어떤 자세로 만들어야 하는지, 혹시나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불성실함을 만들어가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더불어 성실함의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할아버지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주유소 할아버지! 내일도 출근길에 뵐께요!
정재엽 드림. (j.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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