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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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두 아들을 키우느라 쩔쩔맨다. 그러다보니 잘하는 게 별로 없는 나를 그래도 엄마라고 툭하면 부른다.
그럼 끙~ 하고 일어나 딸집에 가서 집안일도 도와주고, 아주 드물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외손자들을 이리저리 어르며 놀다가 온다.
그리곤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올 때는 대체로 만원버스를 만나게 된다.
직장을 다녀오는 젊은이들로 꽉 차서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내 어린 시절 중학교 다닐 때의 콩나물 시루 같았던 버스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이 얘기를 하니 딸은 잘됐다는 듯이 퇴근시간을 피해서 좀 더 있다 가라고 한다.
나도 한창 귀여운 외손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그러마 하다보면 시간이 늦어진다.
내가 문을 들어서면 10개월의 한창 예쁜 아가가 온 얼굴에 티없이 함박 웃으며 내게 막 기어온다. 그리곤 두 팔을 벌려 내 품에 안긴다. 그럼 그 아가를 안을 때의 가슴이 터질듯한 충만한 기쁨은 어느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세 돌이 안 된 큰 녀석은 이 기쁨이 좀 덜하다. 일찍 말을 시작한 큰손자는 벌써 사랑한다는 말을 이해한다. 끌어안으면서 ‘할머니 사랑해요?’ 물어보면 천연덕스럽게 ‘안 사랑해요’한다. 내가 뒤돌아서 우는 시늉을 하면 ‘아니 사랑해요’ 하며 놀릴 줄도 안다.
내가 그렇게 저를 끌어안고 온몸과 맘을 다해 사랑했건만 세 돌도 안 되어 ‘안 사랑해요’란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애기가 하는 말에 그렇게 마음이 아픈 줄 몰랐다. 그럼 바로 남편은 그래서 나는 친손자가 좋다니까 하고 거든다
딸은 내가 애를 내 무릎에 엎드리게 한 후 궁디팡팡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딸네를 다니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모든 사람들은 아가였다. 나도 아가였다. 그러다 다시 아가를 본다. 순수와 티없는 관계를 본다.
이런 일을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어제 다녀갔는데 이틀도 못 참고 또 전화가 왔다.
‘엄마 언제 와?’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또 가?’ 해버린 것이다.
날 닮은 딸은 바로 화를 냈다. ‘알았어요. 오늘 오시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안와도 돼’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다시 전화를 거니 안 받는다. 아가가 보고 싶어 페이스톡 해도 안 받는다.
그러더니 전화는 기분 나빠서 안 받았고 이제 아가를 재우니 페이스톡 못하겠다고 카톡이 왔다.
나도 ‘엄마는 말도 못하나?’ 하면서 나도 네 전화 안 받는다는 유치한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카톡을 잊고 받았더니 아무 일 없는 듯 평상시 말투다.
웬일이니? 어제는 그 난리치더니? 했더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에베소서 4:26)’ 라고 했잖아요 한다. 성경말씀으로 분나던 자기 마음을 이겨냈다는 말에 나도 기쁘고 뿌듯했다.
그러면서도 바로 ‘네가 분낸 게 옳은 일이냐?’ 라고 말하려다가 꾹 삼켰다.
이런 뿌듯함도 잠시, 바로 다음 날 우리 동네의 결혼식장에 왔다며 집에 들르겠다고 한다.
밥하기도 싫고 외식도 싫어하는 묘한 상태에 있는 내게 딸이 애기 둘을 데리고 집에 왔다.
젖이나 먹이고 간다는 딸이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도 안 가는 것이다.
만나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을 떠올리며 빨리 가라고, 남편이 기다리지 않냐고 해도 밍기적거리기만 한다.
서로 일하기 싫어하는 두 사람 사이를 감지했는지 그렇게도 입이 짧은 큰손자가 한마디 한다.
‘할머니, 뭐 맛있는 것 좀 주세요’
애들때문에 웃고 우는 하루는 즐겁다. 그러면서도 혹시 이 글을 며느리가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본다.
며느리는 제 친정엄마를 불렀겠지. 엄마한텐 막 하면서 시모껜 아무 소리 못하는 딸처럼 며느리도 그러겠지.
삶은 이런 것이다. 글을 다 썼으니 또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