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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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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0일 18시 26분 등록
아이는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가 2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이가 아버지의 사인(死因)을 물을때마다 친척들의 대답은 다르다. 아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재혼하였으나 실패했다. 새아버지는 종종 싸움을 하고, 술을 마시면 어머니에게 손지검을 하곤 했다. 한 두 번은 감옥을 드나들었기에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유배달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을 불렀다. 어머니는 배달하는 도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아이가 이제 겨우 소년이 되었을 때였다.

보상금 대부분은 법적으로 계부에게 돌아갔고, 소년은 외갓집에서 자랐다. 외삼촌과 외숙모의 집이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더없이 좋은 분이었다. 언제나 소년을 배려하기 위해 애쓰셨다. 하지만, 소년에게도 말못한 고민은 있었다. 누구에게 말하겠는가? 소년은 삼촌 숙모에게 기댈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소년은 그가 바라는 것을 잘 말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 청하지 않아도 소년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은 늘 그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선생님은 매달 용돈을 주었다. 선생님은 기독교인이었고, 자연스레 소년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소년은 선생님이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음에도 왜 자신을 도왔는지를 깨달았다. 하나님이 보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처음으로 기도할 때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선생님처럼 되게 해 주세요”

소년은 그렇게 되어갔다. 어느새 청년이 되었고, 그는 복지관에 강연을 다니고 있었다. 청년이 매주 만난 사람들은 그처럼 부모 없이 자란 젊은이거나, 장애인, 생활보호 대상자들이었다. 아무도 그들을 교육하러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일은 떠밀리고, 밀려서 청년에게 온 것이었다. 수강생들은 국가에서 돈을 받으려면 복지관의 수업을 의무로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실패했거나, 실패하도록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자존감은 ‘없음(無)’ 그 자체였다. 그런 그들이 청년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그의 진심을 이해해주기 시작했다. 첫 강의를 하던 날 그는 그의 달란트를 써야할 곳을 찾은 기쁨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어둡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청년의 강의는 항상 가장 그가 아이였던, 가장 어두운 시절로부터 출발했다. 그는 사람들이 ‘저 강사 대단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였다. 그들 스스로가 ‘나는 어쩌면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했다.

청년의 수입은 밝게 사는 사람들로부터 왔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잘 준비된 사람들이었고, 명쾌한 그의 강의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것은 청년이 계속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가진 사람들에게서 얻고, 없는 사람들에게 지식으로 나누어주어 사회적인 지식을 재분배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이는 그를 홍길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청년은 매주 그 구석진 곳을 찾아갔다. 서너명의 사람을 위해 갔다. 3시간 강의에 9만원을 벌러 갔다. 청년은 돈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 일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은 늘 자신의 기쁨과 섞여 있었다.

청년을 또한 기쁘게 한 것이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웃음. 청년 때문에 행복해 하는 한 여자의 웃음이었다. 그것이 청년이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녀의 웃음을 볼 때 그는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자기로 인해 사랑하는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그는 그녀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는 섬기기 위해 그녀를 만났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보냈다. 남편은 아내를 섬겼고, 아내는 아이들을 섬겼다. 그는 어렸을 적 잃어버린 가정을 되찾았다. 청년의 아이들은 언제든 원하는 것을 말하며 자라났다. 그리고 그의 죽음 전까지 그들 누구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힘을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 경영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중의 자기계발서는 지나치게 심리학에 기대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이비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그런 거품들을 걷어내는 책을 썼다. 비과학적이고 비성경적인 것들은 모두 걸러지고, 핵심만 남았다. 변화는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었다. 이러한 접근이 사람들을 단순히 선동하는 것을 넘어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내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눅진하게 흘렀다. 그는 강의를 했고, 글을 썼으며, 사람을 사랑하며 살았다.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이었다. 그는 삶에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길이 주어지면 걸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이면 달렸다. 아내를 사랑하고 섬겼으며, 좋은 가정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어두운 사람들에게 빛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 밖의 것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삶에서 많은 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중년이 되었을 때, 그는 명강사로 칭송받지 못했다. 베스트 셀러 작가도 되지 못했다. 돈을 많이 벌지도, 세계여행을 다니지도 못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의 이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기뻤다. ‘아무도 모르는’ 아름다운 느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생을 음지에서 힘들어하는 이들과 함께 살았다. 깊이를 아는, 존경받는 작가들은 모두 그를 존경했다. 그는 세계를 여행한 것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이제 그를 아는 몇몇 청년들은 그를 닮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청년시절을 회고한다. 어렸을 적 그는 밤마다 기도했다.
“아버지, 오늘밤이 지나면 아버지 곁에 있게 해 주세요. 오늘 밤에 제가 평온히 숨을 거두게 해 주세요”
허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에게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파했지만 삶을 사랑했다. 삶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여행지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허나 그는 그 짦은 여행이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것임을 알게 되었다. 순간과 장면에 잠시 눈을 돌리면 경이로움이 터져나오는 시간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말하고 싶다. 하마터면 그는 잊고 지냈을 것이라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을날 새벽의 향기를 그는 잊고 지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을 것이다. 그는 크리스마스처럼 굉장한 일이나, 저녁 식사처럼 작은 일들이 다가올 때 마음이 설레는 것을 잊고 지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봄에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울음소리를 잊었을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마시는 물 한잔과 샤워를 할 때의 기분을 잊어 버렸을 것이다. 샤워를 하면서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 비누를 온몸에 묻히면 피부로 느껴지는 그 상쾌한 기분을.
그는 사랑과 우정, 희망 같은 것들을 모조리 잊어 버렸을 것이다. 지나다니는 차소리를 듣는 일과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을 잊어 버렸을 것이다.

하마터면 그는 잊고 지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과거의 아픔을 애써 잊으려고 했다면,
만약 그의 절망을 무의식 깊은 곳에 던져버려두었다면. 그는 기쁨마저 잊고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끌어 안았다. 아픔은 그의 일부가 되었다. 혼자 남겨진 상황을 받아들였고, 새아버지를 용서했다. 고통과 상처, 힘들었고 아픈 모든 것을 기억하면서, 그는 더불어 아름다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흐린 날이 햇빛나는 날을 더욱 빛나게 하듯, 아픔들은 아름다움에 더욱 특별한 액센트를 주고 있었다.

그것이 삶이다. 삶에는 고통과 아름다움, 절망과 희망,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움과 사랑, 희망, 행복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들에 마음을 기대고, 그것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그리고 그 좋은 것들을 기억하기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IP *.218.20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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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2.11 17:40:30 *.72.153.12
옹박 바보. 희석이 바보.
내가 사랑하는 것을 모르다니 바보들.
바보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이 난다.
아름다운 거 보믄 눈물나는데 왜 눈물은 나고 지랄이야. 렌즈가 뿌였잖아 우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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