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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1일 10시 08분 등록
세렝게테. -이은남의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그 따뜻한 베품을 위하여

지붕 없는 지프차를 타고 끝없는 평원을 달린다. 한 무리의 누떼가 초원을 누비고 있다.
땅이 하늘이고 하늘은 곧 땅이 된다. 내 의식은 존재의 근원을 향해 끝없이 달린다.

거침없이 달리는 톰슨가젤의 무리위로 Martain의 모습이 크로즈업 된다.
아련한 그리움을 그득 담고 있던 그의 미소가 되 살아 난다. 한 잔의 기네스를 들고 끝없는 침묵의 숲으로 빠져들던 그가 가진 낭만의 숲도 되살아난다. 그리고 우리가 거닐었던 야생의 초원도 모두 살아 꿈틀 거린다.
지프차를 운전하고 있는 마리꾸에게 좀 더 속도를 내어 주기를 요구했다. 다소 무리인 줄은 알지만 내 의식 속에 숨어서 끝없이 나를 혼란 속으로 끌어들이는 Martain를 덜어내고자 함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를 나의 삶에서 걷어 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우리라는 것을, 좀 더 내가 솔직해지자면 나는 그를 내 의식 한가운데 가두어 두고 끝없이 그리워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곳 탄자니아를 다시 찾은 것이 5년 만이다.
서울 생활에서 나의 마음 일부는 세렝케티, 저 생명이 펄떡거리는 초원을 향하고 있었지만 탄자니아 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에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도 수잔의 칭얼거림에 가까운 탄자니아 방문의 요구가 없었더라면 이 곳 여행길에 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거의 한 달에 가까운 끈질긴 수잔의 요구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물론 방문 요구의 형식적 요건은 나의 책 때문이다. 벌 써 탄자니아에서만 38,000천부가 팔려 나갔다는 것과 탄자니아어 신문사와 영자 신문사에서의 인터뷰 요청이 거절할 수준을 넘어 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내가 그토록 완강하게 세렝게테 방문을 거절한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내가 마틴을 가슴깊이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잇는 그녀다. 수잔이 이 곳 출판사와 신문사의 인터뷰를 핑계 삼아 나를 굳이 이곳으로 다시 불러들인 이유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내 삶 속에 깊숙이 살아 숨 쉬며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마틴을 이 곳의 대초원에서 다시 불러내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내가 그를 마음껏 그리워하도록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시장기가 돈다. 새벽 장관을 보고자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몸도 지친다. 눈치 빠른 수잔이 잠시 휴식을 취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토미와 주리가 지프차에서 먼저 뛰어내린다. 내가 이 곳 탄자니아를 떠날 때 아장거리며 걷던 수잔의 두 아들들은 벌 써 7살과 8살이 되었다.
수잔의 남편 마리꾸가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뒤따라 내린다. 하늘이 초원과 맞닿아 있다.
커다란 바오바브 나무아래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내가 수잔과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을 맺은 것은 벌써 15년 전이다. 하루저녁 맥주 한잔 값에 불과했던 3만원이 지금의 수잔과 나, 그리고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내가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보내주는 돈은 그녀의 희망과 꿈을 싹트게 했다. 그 싹은 매 마른 땅에서도 잘 자랐으며 그 희망의 싹은 과분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수잔이 나에 대해 쓴 글이 탄자니아 신문에 ‘희망이라는 꽃’이라는 타이틀로 등장하여 탄자니아를 울리고 나를 울렸던 것이다. 그 후 나와 탄자니아의 인연은 계속되어 작은 꿈의 집, ‘야생의 집’을 열기까지 된 것이다. 그 곳에는 소수민족인 마오리족의 아이들 80여명이 청록빛 희망을 싹틔우고 있는 것이다. 운영을 맡고 있는 수잔과 마리꾸의 헌신이 ‘야생의 집’을 공동체의 새로운 모델로 부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음을 덧붙인다.

멀리 초원 한복판에 초식 동물들이 뛰노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 얼마나 보고 싶었던 모습인가? 살아 숨 쉬는 생명력, 그리고 자유, 저 녀석들은 내가 갈구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 ‘그래, 마음껏 달려라. 뛰고 요동쳐라. 그것이 너희들이 할 일이니라.’
나도 어느 새 한 마리의 얼룩말이 되어 끝없는 초원을 달린다. 가슴이 후련하다. 저 멀리 동방의 하늘 한가운데 한 무리의 독수리 떼가 날고 있다.

밤새 뒤척인 탓인지 머리가 개운치 않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밖을 나선다. 서울에 있는 남편과 딸 유나가 잠깐 생각났지만 나의 의식에서 몰아낸다. 여기서는 철저한 내가 되고 싶음이다. 남편의 동행을 극구 뿌리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초원의 여명은 땅에서 부터 시작이다. 멀리 동쪽 끝 초원은 붉게 타오르고 있다. 마틴을 불러본다.
‘마틴’

오전 10시 무렵이 되자 ‘야생의 집’은 열기로 가득 찼다. 수잔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렇게 취재진이 많이 모인 사실 자체가 탄자니아의 기사화 꺼리란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마에 땀이 흐른다. 공식 기자회견까지는 10분이 남았다.

모인 사람들은 대략 300여명 정도 되어 보인다. 외신기자들도 상당수 참석했다. 가슴이 벅차올라 잠시 먼 곳을 응시한 나는 천천히 인사의 말을 읽어나갔다. 마치 한편의 시를 읽어내려 가는 기분으로 나는 내 자신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나의 인사가 끝나자 먼저 세렝게티 국립공원 관리소장격인 뚜하마가 마이크를 잡는다.

먼저 다시 만나 뵙게 됨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은남씨는 우리에게 있어서 두 가지 큰 의미를 가지고 계신분입니다. 첫째는 우리 야생의 공원, 세렝게티의 온전한 보전을 위해 세계적 차원에서 활동해 주시고 후원해 주심이며, 두 번째로는 5년 전에 우리 국립공원에서 보낸 일 년 동안의 아름다운 추억을 책으로 펴내신 점입니다. ‘세렝게테에서의 일년’ 이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바로 이 분입니다.

박수가 끝나자 기자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묻다.
세렝게테 국립공원과 인연을 맞게 된 동기하며 탄자니아 어린이들을 20년 넘게 돌보고 있는 사연 까지 질문은 끝이 없다. 그러나 질문의 촛 점은 언제나 책 이야기다. 그리고 그 속에 등장하는 마틴과 나의 사랑에 대한 물음은 놓치지 않는다.
제일 끈질기게 물어 늘어지는 기자는 언젠가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만났던 제이슨이다. 그는 나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기에 무례한 방법으로 나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기자 특유의 목소리는 숨겨두고 대신 은근함으로 다가온다.
5년 만에 이 곳 탄자니아를 다시 찾은 기분을 잠시 이야기 해 주십시오.



제이슨의 말이 끝나자 온 기자들의 시선이 나의 입술로 모아졌다. 나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첫마디는 어떤 말일까? 그러나 사실 나도 모른다. 무슨 말이 나올지.
‘그리움이 봇물처럼 밀려옵니다. 온갖 것에 대한......’
나의 이 첫마디가 끝나자 장내는 잠시 술렁거리고 때를 놓치지 않는 기자들의 질문이 꼬리를 문다.
책 속 마틴이 바로 그 그리움의 대상인가요? 아니면 서울에 있는 남편인가요?
당신의 책 ‘세렝게티 에서의 일 년’ 이 전 세계 남녀의 가슴을 울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틴은 실제 인물이지요? 아직도 마틴을 그리워하고 있나요? 당신은 결혼도 하였으며 17살 된 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남자와의 아름다운 영혼의 사랑, 물론 좋습니다만 도덕적, 양심적으로 죄의식 같은 것은 없는지요?
5년 전, 이 광활한 초원을 가슴속에 안고 돌연 귀국한 사연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사랑 이야기 저도 그 속의 마틴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 번 출판된 책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음 기부 처는 어디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고 나는 그 에 대해 미소로만 답하고 있었다. 이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더욱 흥분과 또 다른 기대감에 휩싸이게 했음은 물론이다.

황혼이 서서히 찾아올 무렵 나는 한 장의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나팔소리가 들린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것임을 당신은 알고 계시지요.

한 알의 사과가 내 손안에 만져 진다는 것 또한
축복이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시지요.

황혼 녘, 서쪽 하늘이 묽게 물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저 또한 나에게 쏟아지는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영혼을 사랑하는 일 또한 축복이며 은총입니다.
초원의 야생들에서부터 내 사랑 마틴까지

살아 있는 이 지상의 모든 것들,
살아있음이 황홀함이요 축복입니다.

축복으로 태어나지 아니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에겐 그대가 나에게 황홀이고 내가 그대에게 또한 황홀입니다.

아! 살아있음이 축복 아닌 것이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살아있음이 축복이라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했다.

‘세렝게티에서의 일년’ 저자 이은남 그녀는 세계 모든 사람들의 안식처다. 그녀가 온 지구인을 다시 깨어나게 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축복이어라.







IP *.114.5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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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12.14 12:27:34 *.48.43.19
소설 속의 나의 남자들..제이미, 테리우스, 마틴….
흠 내년엔 좀 국제적으로 헤집고 다녀야겠습니다. 탄자니아, 환상적입니다. 누구의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주인공은 껍데기의 은남, 혼을 담은 글을 쓴 작가는 우제님. 지난번 제가 썼던 종윤의 글을 두고 종윤꺼니 내꺼니 하고 쑥덕이던 말들이 떠오르는 군요. 하하..
잘 읽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를 너무 멋지게 표현해 주셔서 감동입니다. 아프리카로 당장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내년에 다녀오게 되면 글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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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12.17 04:01:31 *.86.177.103
나도 함께 따라갈래요. 마틴 넘보지 아니할께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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