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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0일 09시 07분 등록
일요일, 여자는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그 옆에 있는 시장에 들른다. 여자는 김치꺼리를 한단 사들고 집으로 향한다. 여자는 매 주 이렇게 김치를 담근다. 냉장고 안에는 지난주에 담은 김치가 있다. 가끔은 지난주에 남은 김치가 남아있기도 하다. 여자는 김치를 담느라 다른 반찬을 준비하지 못했다. 아이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김치를 담그는 날은 속이 아프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는 김치 담그는 날은 속이 아픈 날이다. 그러나, 김치 담그는 날은 특별한 날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일주일만에 집에 온다. 남자의 밥상에는 남자가 좋아하는 새김치가 있다. 다음날, 남자는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선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잘 자녀오시라고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잠이 든다.

여자는 새벽 시계 소리에 잠을 깬다. 새벽 4시 반, 아침밥을 짓는다. 새벽 5시 남자가 일어나 세수를 한다. 여자는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딸각딸각, 그릇이 식탁 바닥에 놓여지는 소리에 아이가 잠을 깬다. 부스스 일어난 아이는 식탁에 같이 앉는다. 아침에 새로 지은 밥과 아침에 끓여낸 따끈한 국으로 셋은 둘러 앉아 아침을 먹는다. 5시 반. 남자는 집을 나선다. 멀리 일터까지 가려면 일찍 나서야 한다. 7시까지 기계를 워밍업시켜 준비해 두려면 서둘러야 한다. 문을 나서는 남자에게 여자는 조심히 다녀오라고 인사를 한다. 아이도 같이 인사를 한다.

아이도 하는 일이 생겼다. 아이는 아이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선다. 8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어릴 적 들여놓은 이른 아침을 먹는 버릇 때문인지, 일찍 눈을 뜬다. 아침 일찍 밥을 먹는다. 아침을 먹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아이에게 아침밥은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번 혹은 2주에 한번 집에 들른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새로 김치를 담근다. 어머니는 아이가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묻는다. 아이는 먹고 싶은 것이 없다. 밖에 있을 때는 먹어도 배가 고프지만, 집에 있으면 허기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어머니는 밖에 있으면 배가 고프다는 말에 아이가 안쓰럽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다음날 김치통을 하나 챙겨 들려 보낸다.

아이는 일에 바쁘다. 바빠서 먹는 것을 소흘히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이는 친구들에게 가끔 고기먹자고 조른다. 정말로 고기가 먹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안으면서 고기먹자는 말을 종종한다. 혼자 먹는 밥에는 뭔가가 빠져있다. 아이는 밥을 먹어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그래서 종종 폭식을 한다. 먹고 나서 돌아서면 배가 고픈 아이는 계속 먹어댄다.

아이는 일이 바뀌었다. 아이의 일터는 식당이다. 주방에서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기계의 소음을 이기기 위해 큰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음식 볶는 소리, 칼질하는 소리, 그릇 딸각거리는 소리, 설거지 기계 돌아가는 소리. 아이는 큰 소리들에 묻혀 일을 한다. 일터가 식당이라고 풍족히 먹는다. 그리고, 사람의 소리와 같이 밥을 먹는다.

아이의 집에서 전화가 왔다. 퇴근 길에 삼겹살을 사가지고 가다가 생각나서 전화를 한다며, 밥은 잘 먹고 지내는지 묻는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참지 말고 사먹으라고 일러둔다. 아이의 어머니는 집에 언제 내려오냐고 묻는다. 그리고 얼마전에 김장도 했다고 한다. 집에 들르면 싸보낼라고 하는데, 집에 오지 않으니 택배로 부치겠다고 한다. 아이는 여전히 혼자서 밥을 먹지만 이전처럼 배가 고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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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2.21 14:39:06 *.70.72.121
정화야, 너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다. 그 나이면 애 둘은 들처업고 다니거나 적어도 유치원에 보낼 나이다.
명년에는 좋은 사람 만나서 새벽밥 지어 먹여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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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2.22 10:23:19 *.72.153.12
써니 언니, 나 올해 훌쩍 자라서 이제는 얼라 아니다.

먹을 때는 이상하게 원초적(?)이 되더라... 히히히.
언니도 좋은 인연 많이 맹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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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대송
2010.05.31 12:12:19 *.251.231.187
안녕하세요.
한정화선생님 여기 이글(밥이란)좀 복사 좀 해가도 되겠습니까?
제 블로그에 깔려고요^^:
야후서 송대송 치면 오실 수 있습니다.
그럼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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