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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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7일 10시 46분 등록
한주에 한권의 책과 씨름한지 38주가 지났다. 한주에 책 한권을 읽고 칼럼을 쓰는 일련의 행사가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떤 주는 책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답답한 귀머거리의 심정을 느꼈고, 할말은 머릿속에서 뱅뱅 맴도는데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벙어리의 신세가 되기도 하였다. 연말이 되고 서서히 연구원 생활이 습관이 되었으면 하는데, 아직도 요원하다. 대략 두 주일에 하루정도의 방황은 용납되었지만 이틀이상은 곤란했다.

힘이 들지만 연구원 생활을 해나가는 가장 기분 좋은 일은 늘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제때 배우지 못한 후회, 좋은글을 쓰지 못한다는 자책감, 나의 부족함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길 위에서 열심히 달린다는 느낌, 그러한 것이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변화의 순간이었다. 가끔 길 위를 걷다가 비행기를 타는 일탈도 맛보았고, 내가 말을 달리면서 초원위에 길을 만들기도 하였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해야할 관점이 바뀌게 되었다. 어쩌면 공무원으로 승진을 하고 집을 사고, 정년에 퇴직을 하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좀더 치열하게 나를 찾고 이끌어가는 무한함 힘을 얻은 느낌이었다.

내 자신의 변화 말고도 연구원 생활은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 중 한 가지는 든든한 열두 명의 형제들을 얻었다는 것이다. 변경연의 특징답게 각기 다른 개성과 톡톡 튀는 사람들의 만남이다. 다양한 경험, 성격나이에서부터 성별, 직업에 이르기까지 같은 사람이 없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늘 신선했고 치열했다. 남해의 바닷가에서 몽골의 초원까지 다양한 배경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갔다. 책읽기와 칼럼으로 좀 더 이해하게 되었으며, 연구원 수업에서 그 사람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 평생을 만나도 열정과 기쁨을 줄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진 이들과의 수많은 추억은 늘 즐겁게 한다. 사람에 대해 얻은 것이 더 있다. 바로 사부들이다. 구본형 사부님은 2005년 11월 강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외로운 파견 생활 내내 할 일과 해야 할 일을 주셨고, 초아 선생님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셨다. 한 분은 암흑에서 빛과 같은 존재로 다가왔고, 한 분은 험한 바닷가의 등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늘 배움에 갈증을 느꼈던 나에게 두 분의 존재는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이것도 연구원으로 얻은 커다란 수확임에 틀림없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연구원이 되지 않았다고 가정을 해본다. 물론 책도 열심히 보고 사부님의 열렬한 팬으로 나만의 꿈을 계획하고 찾았을 것이다. 근 40년을 살아오면서 절박하게 느낀 것은 하루아침에 떠오른 생각이나 아이디어로는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2년에서 3년 정도는 투자해야만 조그만 일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8권의 책이 나의 인생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뭔가 쌓여져 간다는 것. 뭔가를 쌓아가는 방법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본다.
나만의 책을 낸다는 것. 내 책을 통해서 세상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가슴을 뛰게 한다. 나를 드러내는 두려움과 나를 드러내는 자랑스러움이 마음을 뒤 덮는다. 사부님이 말씀하신대로 책을 내는 것이 출산에 비유하신 것만 보더라도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눈에 밟히는 것이 가족들이었다. 갑자기 줄어진 외출회수와 책 읽고 걸핏하면 도서관을 가고 밤늦게 컴퓨터 앞에 타자를 치는 모습, 그리고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서 예민해지는 나의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온 가족이 모두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해로 정하였다.

연구원 생활은 1년 내내 수많은 질문 속에 있게 하였다. 풀지 못하는 문제가 더 많이 있었다. 내년에는 좀더 많은 질문과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부분은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직도 하루 두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70%에 머물고 있다. 지나온 1년이 연구원의 감각을 익히는 단계였다. 내년에는 그동안 배운 감각을 모두 동원하여 책을 내는데 활용할 계획이다.
IP *.99.2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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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2.27 10:54:36 *.75.15.205
그대는 틀림없는 소전입니다. 그리고 그 밭에 씨 뿌리고 땀 흘린 만큼의 보물을 캐내게 될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누구보다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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