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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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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7일 19시 26분 등록

지난 일요일, 돌아오는 3월에 결혼을 앞둔 행복한 예비 신랑, 신부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교회를 다녀왔다. 언제나 그랬지만 교회에 들어서면 성스럽고 묘한 기쁜 느낌이 참 좋다. 그 따뜻하면서도 선선한 공기를 ‘후욱’ 들이쉬고는 자리에 앉는다.

눈을 감는다. 어둡고 나만 홀로 남겨진다. 낮은 목소리로 되뇌인다. 나는 잘 살았는가? 나는 이제 내 세상 어디쯤 와 있는가? 올 한해 일어났던 일들이 하나둘 스치고 지나간다. 감사할 일들이 많다. 잃은 것도 제법 있다.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강의를 시작했고, 대신 영업은 잘하지 못했다. 사랑을 했고, 사랑을 그만두었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도 있었고, 자연스레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혼의 울림이 있는 만남도 있었다. 사부를 더 존경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이유없는 슬픔에 힘들기도 했고, 지나간 옛사랑에 가슴을 움켜쥐기도 했다. 허나 꿈을 다시 썼고, 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른건 몰라도 내게 2007년은 어느 해 보다도 역동적인 한해였다 말할 수 있다. 그 역동의 가운데에는 1년간의 연구원 생활이 있었다. 연구원 과정을 하며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잃었는가? 개인적인 것들이 많아 이 글이 다음 4기 연구원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다.

세속적인 야망이 없어졌다. 빨리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서 멀어지고, 세속적인 ‘성공’을 조금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삶에 인문학적 가치들이 더해져, 보다 풍성하고 균형잡힌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부작용인지 그런 이유로 때로는 이유없이 너무 게을러지기도 했다. 회사에서 날라리로 낙인찍히기도 했고, 그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리저리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무엇보다도 아직 돈에 대해서 ‘어설픈 초월’ 주의를 부르짖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배움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기계발 서적을 벗어나 역사와 철학, 문학등의 인문학 책들에 눈을 돌리면서 다양함이 주는 ‘깊음’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인문학은 세상에서 가장 무용한 학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무용함의 맛이 깊어야 맛있어진다’ 는 사부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 관계에서 다양성의 중요함에 대해 일깨워준 일등공신은 누가뭐래도 써니누나다. 그녀의 넘침에 때로 당황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그녀를 통해 활력을 얻는 사람들을 보며 머리보단 마음으로, 올곧음보다는 풍성함으로 사람을 대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진실로 우리는 다르다. 오직 다를 뿐이다.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특히 어느 두껍고 어려운 책을 앞에 두어도 한판 붙어볼 용기가 생겼다. 예전에는 첫 눈싸움에서 기가 눌리면 한판 붙기도 전에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았던 것에 반해, 이제는 다짜고짜 선빵부터 날릴 수 있게 된 것. 나중에야 쥐어 터지건 어쩌건 말이다.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허나 네 시간 정도만 있으면 퀄리티야 어떻든 컬럼 한 편은 뚝딱 해내고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연구원을 지원하는 동기를 ‘내 재능을 시험햅고 싶어서’라고 썼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릴수가 없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글쓰는 재주가 있나? 사부님처럼 살 수 있을까? 그런 재능이 나에게도 있는가? 조금 더 냉정히 고민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잃은것도 많다. 우선 친구들이 하나둘 연락이 뜸하기 시작했다. 술자리라면 두손을 내저으며 ‘다음에’ 로 미루던 탓이다. 잘빠졌던 S라인(?) 몸매도 잃어버렸다. 엉덩이는 펑퍼짐해졌고, 옆구리는 삐죽삐죽 넘치고 있다. 숙제 기한에 맞추려고 밤을 새던 날 먹은 야식과 운동부족 때문이다. 새에 처음으로 몸무게에 대한 고민을 한다. 연애를 못하는건 연구원 탓이 아니다. 하지만 여자를 꼬시기 위한 세련된 말빨이나, 멋있는 옷과 헤어스타일은 시간 부족으로 부족했다. 망할!!

허나, 잃은 것 보다는 얻은 것이 훨씬 많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얻은게 무척 좋다. 마음에 든다. 게다가 이 모든것들을 뒤로하고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이 있다면 바로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아버지는 올해 어색함을 무릅쓰고 꿈벗 모임에 오셨다.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으신 당신의 노력을 아들은 안다. 홈페이지에서 아들이 쓰는 모든 글을 읽으셨다. 가끔 댓글도 달아 주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먼저 하시는 일이 컴퓨터를 켜서 bhgoo.com이라고 치는 일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께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다. 내년쯤에는 가능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를 마음깊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 깊은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눈을 뜬다. 약간 어지럽다. 차츰 또렷이 예배당의 선과 면이 눈에 들어온다. 눈가가 촉촉하다. 감사하다. 어디를 보며 감사해야 할지 모르지만 감사하다. 잘 살았다. 아프기도 했지만 잘 살았다. 행복하다.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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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표
2007.12.28 09:49:30 *.232.95.40
내년에는 머리 뒤로 오로라가 생기겠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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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2.29 08:59:40 *.72.153.12
기분 좋은 변화~ 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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