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7년 12월 28일 21시 51분 등록
여기까지 나를 표현해도 되나? 더럭 겁이 날 때.

======================================================

내 글쓰기의 소재는 거의 다 나의 과거에서 찾은 것들이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어디까지 나의 이야기를 써도 되나 겁이 나기도 한다. 혹은 일부는 감춰두고 일부만을 쓰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는 그냥 쓴다. 쓰고나서 공개하지 않는다. 그것 말고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을 때는 그렇게 썼다. 머리 속에 맴도는 그것을 풀어내지 않고는 다른 것으로 옮겨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 표현할까 겁이나는 이야기를 피해가지 못하였다. 쓰고 나서 그 글을 칼럼으로 제출하지는 못하였다. 다시 시간을 내어서 다른 소재를 잡아서 글을 써야 했다. 혹은 먼저 썼던 소재와 다른 소재를 하나 더 잡고 있는 소재를 연결해서 가볍게 돌아가기도 했다. 몇개의 글은 그렇게 썼다. 쓸가말까를 고민하며 첫번재로 풀어낸 것보다는 두번째로 쓴 것이 너 낳은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쓴 사람의 정서라는 자기검열을 가뿐하게 통과했다.

글이란 것이 꼭 타인에게 공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만은 없는 상황에 종종 부딪히게 된다. 교묘하게 쓰고 싶은 것과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꼬여있어서 둘을 분리해 낼 수가 없을 때이다. 이런 경우가 어디까지 표현하는가하는 고민이 생길 것이다.

내 경우의 고민은 내가 쓴 것을 가족들이 읽을까 두려워서 였다. 그래서 표현할 때 어디까지 표현해야 하나 겁이 난 것이다. 그러나 내 가족들은 내가 쓴 글을 읽지 않는다. 일부러 읽어보라고 들이밀지 않은 한 내가 쓴 글을 읽은 일은 없을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는 가족들이어서 내가 쓴 글이 모아져 있는 사이트를 알려준다 해도 일부러 찾아보지 않을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니 나는 내가 쓴 글을 통해서 가족들이 혹시나 가슴이 아플수도 있겠다라는 약간 헛된 생각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글의 소재가 되는 나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족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렵다. 나의 고민은 많은 부분이 나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그 아픔은 가족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께서 우실까봐 두렵고, 아버지께서 가슴 아파할까 두렵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읽고 다시 써서 고민을 풀어내고, 아픔을 덜어냈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것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결국에는 쓰게 될 것이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를 '어떤 책을 쓸 것인가'를 스스로 질문했을 때, 나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는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글로 써서 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연구원 수련과정 초기에는 절대로 쓸수 없을 거란 마음이 지배적이었었는데 한해 동안 달라진 것이다. 과거의 아픔,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내게 주는 의미, 변화를 겪고 있는 현재, 그리고 나의 꿈인 미래를 쓸 것이다. 가볍게 혹은 무겁게 줄타기를 하듯 내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몇 번의 노출을 하다보니, 꼭 다 드러내야만 맛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표현해야만 무슨 내용인지 전달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 있을 법한 이야기로, 혹은 바랬지만 이루지지 않았던 것을 이루어진 것으로 바꾸어서 글로 써서 바람을 표현하는 것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았다. 그렇게 숨은 뜻까지 전달하는 살짝 가려진 노출을 시도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게 지금의 심정이다. 소설같은 글쓰기, 혹은 우화로 비유해서 쓰기, 혹은 뭔가를 교묘히 섞어서 딴 이야기 하듯이 쓰기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쓰는 글이 얼마나 드러내야 하나를 고민하게 한다면, 글을 쓰는 목적을 한번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려고 쓰는 글인지,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글인지, 혹은 그때의 심정만을 기술하려고 하는 것인지, 혹은 그 것을 통해서 다른 것을 이끌어내고자 하느 것인지. 그것에 따라 얼마나 드러낼지 다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 수 없다면 우선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 경우에는 그것으로 글을 쓰는 시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IP *.72.153.1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1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7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51
5201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200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81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90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8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800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6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