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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0일 15시 09분 등록

[목요편지] 첫사랑 

 


잊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어설픈 사랑, 그것이 첫사랑입니다. 가슴에 고향이 있는 사람은 어디에 살아도 외롭지 않듯이, 첫눈이 올 때 첫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합니다.

첫사랑은 영혼이 메마르지 않게 하는 옹달샘입니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웠던 시간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해서 운전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가슴에 사랑이 있다고 해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도 배워야 할 기술입니다. 그런데 운전기술이 없어 자동차를 타보지도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던 사람이 세월이 지나 그 차를 추억하는 것이 바로 첫사랑이 아닐까요. 그 후 그 사람이 그 때보다 더 좋은 차를 손에 넣었지만 유독 그때의 차를 동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왕자에 나오는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는 말처럼 우리가 첫사랑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첫사랑에게 마음을 주고, 마음을 설레면서 보낸 젊은 날의 시간을 잊지 못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첫사랑에 대한 회상은 피천득의 인연에 잘 나옵니다. 7살 유학 당시 동경의 하숙집 딸 아사코는 유난히도 그를 따랐습니다. 헤어질 때 아사코는 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아쉬워했지요. 그 후 10년이 지난 후 두 번째 만남은 약간 서먹했지만 아사코는 목련꽃같이 청순하고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10여년이 흐른 후의 만남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시든 백합같이 초라한 아사코의 모습과 악수도 없이 절만 몇 번씩 하고 헤어진 마지막 만남은 아니 만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여자동기들에게 느낀 감정은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설펐고 철이 들어 이성에 대해 감정을 느낀 것은 입대하기 한 달 전에 친척 형이 소개를 시켜준 여성이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었는데 동양적인 얼굴에 차분하고 목소리가 작았습니다.  

 

나는 입대를 앞둔 시점이라 외롭고 시간이 많을 때라 자주 만났습니다. 두 번째 만날 때가 하필이면 나의 생일이었습니다. 내가 그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별다른 할 이야기도 없어 생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축하의 말을 한 후 잠시 실례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선물을 사왔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성으로부터 마음을 받아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아 라디오를 들으면서 좋은 노래를 녹음하여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녹음한 노래의 제목도 모르고 주었는데 다음 만날 때 그녀는 곡목을 적어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몇 번 만나지도 못하고 한 달이 금세 지나고 나는 입대를 하였습니다.

 

훈련소에서는 편지를 하지 않다가 훈련을 마치고 연락을 하자 바로 면회를 왔습니다. 이야기 중에 그녀는 나의 본()을 물었습니다. 내가 의성 김이라고 하자 그녀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나는 그녀와 본이 같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김씨는 워낙 많아서 그 전에는 본을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요즘은 법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동성동본끼리 결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사귄다고 다 결혼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의 만남이 맺지 못할 것임을 알고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한 동안 연락하지 않다가 첫 휴가를 나와서 한 번 만났습니다. 우리는 동성동본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느낌은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더 뜨거워지기에는 너무 높은 산이 막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넘지도 못 할 산을 넘느라 두 사람이 더 상처를 남기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때도 겨울이었습니다. 어깨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첫사랑을 만나는 것은 가슴 속의 비밀창고를 열어보는 것입니다. 비밀의 창고는 열어보기 전까지는 비밀과 기대로 가득 차있지만 그것을 여는 순간 그것은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소중하게 감춰둔 비밀이 빛바랜 흑백사진과 같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허망함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첫사랑에 대한 우스개가 이런 상황을 절묘하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첫사랑이 못 살면 가슴이 아프고, 잘 살면 배가 아프다. 그리고 같이 살자고 하면 머리가 아프다.”

 

비밀은 묻어두고 있을 때 가치가 있듯이 첫사랑의 추억도 가슴 속에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첫눈이 올 때처럼 아름답던 첫사랑의 추억도 그것이 현실이 되면 눈이 녹았을 때처럼 질퍽질퍽하게 된다면 비록 가슴이 시리고 아련하게 느껴지더라도 가슴 속에 묻어두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가슴 속의 고향이 달래주듯이 세상살이가 힘들고 외롭게 느껴질 때 가슴 속에 묻어둔 첫사랑의 추억이 달래준다면 얼마나 좋은 것인가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는 어린왕자의 여우의 말처럼 현실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가끔은 그것 때문이 아프더라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달국 드림



 

1. [출간소식] 『(구본형선생님께 배운) 진짜공부』 수희향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이자 <1인회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수희향 대표의 신간 『(구본형 선생님께 배운) 진짜공부』가 출간되었습니다. 10년차 1인지식기업가의 길에 들어선 저자가 2008년 처음 변경연과 스승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면서 시작된 ‘진짜공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구본형 선생님의 철학을 바탕으로 설계된 스터디 코스를 통과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적인 길을 열어간 제자 수희향이 이야기하는 진짜공부가 무엇인지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 권합니다.

2. [팟캐스트] 『파산수업』 정재엽 작가편
이번 변경연 팟캐스트의 주인공은 『파산수업』의 정재엽 작가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금수저였던 그가, 파산을 통해 몸으로 체득하게 된 삶의 지혜들. 비록 그것들이 그 이전에는 결코 겪어보지 못했던, 상상하지도 못했던 아픔과 고통, 괴로움과 함께 찾아왔지만 그는 시련을 이겨내고 그 아픔을 자신의 성장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귀 기울여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3. [출간] 『음식의 가치』(서은경 등저)
변화경영연구소 9기 서은경 연구원이 음식에 관련된 인터뷰집 『음식의 가치』를 출간했습니다. 서은경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요리 문화를 선도하는 음식 명인 10명의 강연과 인터뷰를 멋지게 재구성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음식이 가진 가치를 고민하다 보면, 동시에 나는 어떤 음식을 먹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될 겁니다. 음식에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4. [출간] 『우리 아이 작은 습관』(이범용 지음)
변화경영연구소 꿈벗 16기 이범용님께서 『습관홈트』에 이어서 『우리아이 작은습관』으로 두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대한민국 1호 습관 조력자 이범용 소장이 딸과 함께 ‘아이 습관 만들기’ 800일의 기록을 책이 담았다고 합니다. 아이와 함께 좋은 습관 만들기를 실천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일독뿐 아니라 별도 진행되는 <아이 습관 만들기> 워크샵도 관심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bhgoo.com/2011/849364


 

 

 

IP *.103.21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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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17:03:00 *.244.89.194
멋진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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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08:48:00 *.111.4.164

노래가 생각납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동성동본 때문에 예전에는 아주 아주 슬픈일들이 많이 일어났었죠.

달국 선생님께서 그런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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