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소현
  • 조회 수 2267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8년 1월 3일 12시 11분 등록
지난주 ‘얼추 시스터즈’의 공연이 있었다. ‘얼추시스터즈’가 무엇인가 싶을 것이다. ‘얼추시스터즈’는 동북여성민우회에 소모임으로 결성된 스윙여성커플댄스 동호회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비혼과 기혼이 어우러져 있는 얼추시스터즈는 ‘스윙시스터즈’ 이후로 탄생한 2호 여성커플댄스 동호회 이다. 올해 5월부터 시작한 강습이 7개월 만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솔직히 그녀들은 춤을 못 춘다. 한달에 끝낼 강습을 7개월 동안 무한 반복 했다는 것만 보아도 그녀들의 춤 실력은 언급할 필요가 없다. 춤의 동작도 얼추~~ 비슷하다 하여 ‘얼추 시스터즈’라는 이름을 지었다. 자칭 몸치 8명이 모여 시작된 모임은 ‘스텝, 스텝, 락스텝’을 시작으로 7개월의 꾸준한 강습을 통해 멋진 몸의 빛을 만들어 내었다.

서로의 등을 맞대고 음악을 기다리는 그녀들. 주위의 시선이 8명의 그녀들로 향해 있다. 쥐죽은 듯한 침묵 속에서 내 심장 소리만이 들려왔다. 두 손에는 땀이 마를 겨를이 없다. 나만큼 그녀들도 긴장하고 있겠지. 나의 초초함 만큼이나 날이 선 손톱 끝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리듬에 맞추어 그녀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녀들의 투명한 몸에서 손끝 발끝의 선을 따라 빛이 흘러나왔다. 다양한 움직임의 빛이 흘러나올수록 빛을 따라 수정처럼 울리는 종소리가 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그 빛의 소리는 관객의 몸 위에 천개의 손바닥을 올려놓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손길을 따라 모든 감각이 열리고, 모든 세포가 웃었다. 우리는 어느새 모두 일어나 ‘얼추 시스터즈’의 춤의 세계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내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빛깔이 걸음마 스텝도 힘들어했던 그녀들이 맞던가. 사부로서 심연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기쁨에 눈가에 눈물이 살짝 모습을 나타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녀들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에 대해서 나는 오래 동안 생각했다. 그녀 자신들은 믿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들이 빛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강습을 시작할 때부터 믿어왔다. 그녀들의 빛의 길에 확신이 있었다. 그 빛이 화사한 맛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의 가슴속으로부터 작고 소박한 진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빛이라는 것을. 5년 전, 나에게 불쑥 찾아온 행운의 별똥별처럼 말이다.

5년 전, 내가 ‘스윙시스터즈’를 만나게 된 것은 여성주의 강의 공간이었다. 그때 나는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후 기존의 운동방식이 아닌, 가장 나답고 행복한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마침 찾아간 한 강의장에서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동호회 소개를 하러 나온 그녀는 까만 안경을 둘러쓴 범생이로 보이는 평범한 친구였다. 어디를 봐도 춤을 출 수 있는 자태와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춤동호회 홍보를 위해 사람들 앞에 나선 것이다.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페미니스트 댄스 공간, 여성들끼리의 놀이 문화 공간, 춤이라면 특별한 끼나 출중한 개인기를 가진 사람만의 전유물이란 생각에, 배우고 즐기고 싶어도 편하게 다가갈 수 없는 분들 모두 오세요.”

가장 <나>일 수 있는 공간이라니.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첫 낱말에 반해버렸다. 단 한 번도 춤을 가까이 해본적도 춤을 춘적도 없는 나였다. 그런 내가 그녀를 쫓아가 가입절차를 묻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동호회 가입을 했다. 다음날 초대받지도 않은채 나는 그녀들의 엠티를 무작정 따라 나섰다. 내향적인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연구원 지원할 때처럼 도깨비에 홀렸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녀들은 가는 차안에서 스윙음악을 들었다. 장을 보러 마트에 들어가서도 스텝을 밟았으며, 담배를 피우는 쉬는 시간에도 스텝을 밟았다. 엠티장소에 도착해 짐을 풀기도 전에 음악을 틀고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술도 뒤로하고 밤이 새도록 스텝을 밟고 또 밟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기 전에도 스텝을 밟았다. 솔직히 그녀들의 춤은 전문적이지도 않았으며, 멋있지도 않았다. 그녀들은 젊고 예쁘지도 않았고, 섹시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투명한 몸을 통해 흘러나오는 미소의 빛은 너무나 아름다워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남녀커플댄스의 이미지만을 알아왔던 내게, 여성들끼리 춤을 추는 스윙시스터즈는 정말 신선했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꼭두각시 춤으로 시작하여 중, 고교 시절 서클에서 이웃 남학교 아이들과 배웠던 포크댄스, 대학 1, 2학년 때 자주 갔던 디스코텍, 클럽에 이르기까지, 내게 춤이란 반드시 남자아이들 앞에서 쑥스럽고 다소곳하게 이끌려 가는 새침한 팔로워나, 섹시하게 몸을 흔들어대야 하는 섹시녀의 이미지로 추억된다. 남성이 춤을 이끌고(lead), 여성이 이를 따라가는(follow) 형식의 커플댄스는 남성성, 여성성을 관습적으로 재현하고, 몸에 체화하는 예술적 코드였다. 하지만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커플댄스란 젊고 여성스러운 섹시한 몸을 가진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나이를 초월하여 나같이 작은 키와 통통한 몸으로도 가장 나답게 멋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형태의 커플댄스 동호회는 처음이라 여러 가지 흥미롭게 생각해 볼 문제들이 많았다. 먼저 우리를 가르쳐 줄 강사를 구하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우리 동호회의 취지에 맞게 가능하면 여성 강사들에게 배우고 싶었고, 다행히 다른 커플댄스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던 친구의 도움으로 여자 강사 두 명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수업을 할 때의 호칭도 문제였다. 다른 동호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쓰이는, ‘남자역할’과 ‘여자역할’이라는 용어를 강사들에게 리더(leader), 팔로어(follower)의 명칭으로 불러줄 것을 요청하였다. 강사들은 약간의 불편함과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는 호소를 하였지만, 우리의 설득으로 차츰 리더(leader), 팔로어(follower)의 용어가 더욱 자연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우리 동호회 회원들이 다른 동호회의 레슨에 참여하면서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외부 동호회들 또한 남자역할, 여자역할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고, 레슨 공고 시 남자/여자로 회원모집을 하던 방식에서 리더/팔로어로 회원모집을 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갔다.

남성과 여성의 만남을 자연화 하는 사회 문화에서 ‘커플’은 남성과 여성의 특정한 관계 맺음을 대변했다. 이런 구조 안에서 처음 스윙시스터즈는 이성커플댄스 동호회들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다. 여성들끼리 커플댄스를 추는 집단은 그 존재만으로도, 기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이상한 집단으로 여겨졌다. 가끔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리더를 하세요?” 나에게는 “왜 여자에요?”라는 말만큼이나 황당한 질문이지만, 남성이 리더를 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상상력을 갖지 못한 세계라면 정말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윙빠에 가면 동물원 원숭이가 되야 했다. 리더/팔로어 모두를 여자들이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거나 의아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레즈비언 동호회라고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동안 이런 호기심에 찬 시선에 대해서 일일이 우리 동호회를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로지 자신에 집중했다. 내가 선택한 리더로서 팔로워로서, 혹은 두 가지 포지션을 모두 아우르며, 내 자신의 몸의 느낌과 변화, 자유를 만끽했다. 우리가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오로지 나답게 춤추고 즐기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윙빠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외부동호회에서 춤을 청하는 여자 팔로워들이 많아졌고, 남자도 팔로워를, 여자도 리더를 열심히 연습하는 풍경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스윙시스터즈 존재의 힘에서 온 영향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변화들과 함께 커플댄스를 통한 가장 중요한 경험이 있다. 나는 단연코 커플댄스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커플댄스는 인생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커플댄스는 너의 프레임과 나의 프레임을 반드시 유지해야만 서로의 텐션으로 상생의 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쪽의 텐션이 너무 약해도, 강해도, 그 균형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조건 음악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리더일 때와 팔로워일 때를 선명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어떤 포지션이든 그 역할에 온전히 집중할 때, 상생의 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과 춤을 추며,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수용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워나갔다. 그만큼 몸으로 대화하는 그녀들과의 만남은 인생의 깊이를 더해갔다.

나는 스윙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인생을 가르치며, 스윙의 공간에서 새로운 꿈의 길을 발견했다. 그곳은 여성과 남성이 자유롭게 리더와 팔로워를 병행한다. 각자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포지션으로 춤을 추는 싸인이 풍성하다. 리더는 과도하게 남성성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춤을 즐기며, 팔로워 역시 과도하게 여성성을 들어내기 위하여 화려한 몸매와 트위스트를 보여주지 않고도 편안하게 춤을 즐긴다. 자신의 역할 안에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붙잡고 리더 또는 팔로워로 재미있게 춤을 즐길 수 있는 ‘젠더의 혼란스러움이 있는’ 세계이다.

가장 자기다운 움직임으로 자유와 선택이 있는 스윙의 세계, 자기 내면의 다양성과 외면의 다양성이 어우러져 춤추는 세계, 춤이 곧 인생이 되고 인생이 곧 춤이 되는 세계, 나는 그런 세계를 꿈꾼다. 그 세계로 가기위한 꿈의 길 위에서 만난 얼추시스터즈와 또 앞으로 만날 수많은 시스터즈, 브라더즈들을 떠올리며 2007년의 마지막 새벽 그들에게 한마디 살짝 건네본다.

"Shall We Dance?"

IP *.129.192.206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7.12.31 16:17:45 *.209.54.231
새해에는 텐션과 상생을 이해하는,
때로 리더와 팔로워가 되고,
다른 장면에서는 그 역할을 바꾸는
많은 동지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네요.
소라씨도, 나도. ^^
프로필 이미지
소현
2008.01.01 15:01:27 *.73.2.97
언젠가 노래방에서 명석님의 춤을 보고
그 파워풀한 에너지에 압도당해 홀딱 반했던 기억이 나요.^^

언젠가는 춤으로 자신을 풀어내리라 이야기하셨었죠?
요즘도 많이 춤추듯 변화하며 사시나요?
올한해 화끈하게 춤판을 벌려보시는거 어떠시와요?
상상만해도 에너지가 팍팍 솟아오릅니다.^0^
프로필 이미지
여해
2008.01.03 10:10:07 *.212.167.58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소라의 춤을 보며 깨닫게 된다.

자기다움에 다가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하며,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참으로 별스럽게고, 모순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소라의 용기있는 선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프로필 이미지
소현
2008.01.03 12:25:03 *.236.47.54
여해 오라버니, ^^

지구별여행은 자기다움과 자기애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는 비행기를 타고, 누구는 기차를 타고, 또 누군가는 걸어서 여행길을 가겠죠. 저는 춤의 길목에서 자기다움을 만나고 있을 뿐입랍니다. ^^

춤을 추다보면 희노애락의 통합의 순간들을 맞이하곤 해요.
그것은 지구별에서의 자기다움, 그리고 그 자기다움을 넘어선 영적인 자기다움으로의 귀환이기도 합니다.

여해오라버니는 어느 길목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계신지 궁금해지네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92 [칼럼033] 한 해의 끝에서 주위를 돌아보다. [8] 香山 신종윤 2008.01.03 2514
» Shall We Dance? [4] 소현 2008.01.03 2267
4690 (37) 은빛 파도의 기억 [2] 時田 김도윤 2008.01.03 2129
4689 [39] 새해 첫날 산행 [2] 교정 한정화 2008.01.03 2051
4688 [40] 그녀는 한 해 동안 어떻게 글쓰기를 하였나? [6] 써니 2008.01.04 2536
4687 [칼럼39]혁신에 대한 작은 변명 [1] 소전최영훈 2008.01.05 2345
4686 (39) 할 일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 [11] 박승오 2008.01.07 2990
4685 [40] 기원을 담은 그림 [3] 교정 한정화 2008.01.10 3074
4684 [41] 눈오는 날, 스승을 경매에 부치다 [7] 써니 2008.01.12 3177
4683 [칼럼40]어두운 기억의 저편 素田 최영훈 2008.01.14 2622
4682 정면으로 대담하게 걸어 들어가다 [2] 호정 2008.01.14 2222
4681 내 인생의 사인 소현 2008.01.14 2589
4680 (37) 날라리의 고민 [2] 香仁 이은남 2008.01.14 2264
4679 (38) 고양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2] 香仁 이은남 2008.01.14 2396
4678 [42] 후유증, 문자, 한사발의 커피 [4] 써니 2008.01.16 2871
4677 [칼럼035] 어느 출근길 香山 신종윤 2008.01.17 2239
4676 [칼럼41]영혼이 있는 공무원 [2] 素田최영훈 2008.01.20 2350
4675 춤추는 영혼의 노래 素賢소현 2008.01.21 2423
4674 [42] 눈이 많이 온 날 [3] 교정 한정화 2008.01.21 2497
4673 (39) 부활을 꿈꾸는 여전사 [10] 香仁 이은남 2008.01.22 2806